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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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변변찮음은 훌륭함과는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부분이므로 사대가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변변찮음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그런 면을 다루는 이야기는 앞으로도 쇠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 (절망독서 중)

절망독서의 작가 가시라기 히로키 작가는 인간의 변변찮음을 그리는 독서가 인간을 절망으로부터 구원한다고 말합니다. 무리하여 애써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 훌륭하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의 정도를 넘어서 구제할 길이 없는 인간들이 등장해 구제할 길이 없는 행동을 하는 것만 보아도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바보 같고, 황당무계한 사람들의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위안을 줄 수 있을까 의아해졌지만 곧 그 증거 같은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가 김근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리" 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소설 "우리의 남극 탐험기"를 말입니다.

주인공 "나"는 대한민국 삼포세대의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대입에 실패하고, 임용고시에 실패하고, 취업에도 실패하고 32살이 될 때까지 변변한 직업도 없이 편의점 알바생을 하며 근근이 먹고 삽니다. 한 때 야구선수를 꿈꾸었으나 재능도 없었고, 재능이 없으니 노력할 마음도 품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 문학상도 수상했지만 노력을 좀 해볼까 하고 공을 들였더니 외려 재미없는 작가로 찍혀 나무가 아깝다는 소리나 듣고 삽니다. 요즘 각 가정마다 백수 한 명 없는 집이 없다 보니 무특징이 특징이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면 지극히 심심한 인물입니다. 어니스트 섀클턴 박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박사는 나와는 좀 다릅니다. 생후 두 달 만에 시각장애인이 된 그는 동성애자이며, 17세에 경제학 박사를 딴 천재이며,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 경이라는 20세기 초 위대한 탐험가의 유령을 보는 사람입니다. 주인공다운 행적으로 유령 섀클턴 경이 때가 되었으니 남극으로 떠나라! 하니 옛썰!! 하며 박사는 나를 데리고 남극으로 갑니다. 나와 섀클턴 박사가 어떻게 만나고 통했는지는 묻지 마십쇼. 판타지라 설명하기 곤란합니다. 두서도 없고, 계획도 없고, 결말은 생각이나 해봤을까 싶은 이들의 모험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무색하게 예견된 고난들로 차곡차곡 무너집니다. 추위, 장비부실, 체력저하, 굶주림, 부상, 산사태, 조난. 판타지 같은 초반 전개를 벗어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터져 당혹스런 가운데 드디어 그들이 나타납니다. 표지 속 스파이럴 하는 곰과 날으는 펭귄! 이들도 당당한 조연의 일원입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데 곰이 쑥을 먹고 인간이 되는 신화의 후손다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가가 독자 배꼽을 잡습니다. 하기야 마션의 마크 트와니는 화성에 감자를 심었고, 씁니다 우주일지의 맥 매커천은 똥으로 육포를 만들었으며, 인터스텔라의 쿠퍼는 아예 차원 이동까지 해버리는데 말하는 곰이나 펭귄 정도면 양호하지요. 소설 뭐 있습니까. 개연성 그 까짓, 판타지에서 찾으면 재미없는 거 아시죠?

무엇보다 독특한 건 이들의 목표가 "실패"에 있다는 겁니다. "이길 수 있다면 싸울 필요도 없지만 이길 수 없다면 싸워야 한다.", "성공할 수 있다면 도전할 필요도 없지만 성공할 수 없다면 도전해야 한다." "남극탐험이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므로 나는 도전한다." 이런 괴랄한 명언을 가슴에 새긴 이들 앞에 닥치는 위기는 대체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조차 헷갈립니다. 위기는 위기이되 위기가 아닙니다. 실패라는 성공을 위한 발판인 겁니다. 실패를 성공시키기 위해 이 정도 고난은 당연한 겁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계속 실패해 나가야 하니까요. 뭐라는 거야!! 하면서 책을 집어던질 법도 한 헛소리지만 저는 이 괴랄함이 맘에 들었습니다. 시시껄렁한 말장난임이 분명한데 의미를 찾는 제 모습이 우스웠구요. 시시한 스토리임에도 재미있었습니다. 병맛 넘치는데 멋져요. 근사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절망독서의 가시라기 히로키 작가의 말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변변찮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그런 변변찮은 면을, 구제불능인 면을, 처치가 곤란한 면을 사랑스러워하기 때문" 이라구요. 여기 어처구니 없는 바보들의 이야기가 꼭 그렇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몇 번이나 고민해야 했을만큼 얼토당토 않은 판타지 소설의 엉터리 주인공들을 보고 있자면 어쩐 일인지 화가 나거나 실망스럽기 보단 그냥 좋습니다. 말마따나 사랑스러워요. 길 잃은 북극곰,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날으는 펭귄떼, 유령 탐험가와 함께 하는 일탈들.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남극의 평원을 눈썰매로 가로지르는 맹인과 내내 무기력하기만 했던 나의 환호성. 주인공인 나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제 삶에도 그와 같은 일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극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제 인생에도 모험을 떠날 일이 생긴다면 그 때의 목표는 성공이 아닌 실패로 하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지금의 실패가 내가 목표한 성공이라고, 그런 후기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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