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재미없다."

"씁니다, 우주일지"의 작가 신동욱의 추천사 첫마디였다. 신동욱은 "아무리 힘이 들고 배고플지라도 유머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맥 매커천을 주인공으로 SF 소설을 쓴 양반이다. 그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일까. 우주 미아가 되어 자기 배설물로 육포를 만들어 먹던 지구 대재벌의 구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절망이라면 나도 못지 않은데 뭐야 이 책은, 재미없어.' 신동욱은 바빠서 추천사도 쓰지 않으려 했단다. 거절할 때 하더라도 읽어는 보자 했는데 세 시간 남짓, 본인 독서 인생 최고로 빠르게 읽은 책이 되었단다. 생각보다 큰 위로와 감동도 느낀 모양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역시나 재미는 없었다고 하는데 그 한 마디에 독자인 나는 외려 웃음이 나고 책에 호감이 갔다. 신동욱의 감상이 내게도 적용이 될런지가 궁금했다. 뭐가 됐든 결국 세 시간이면 답이 내려질 독서라니 잠도 오지 않는 밤, 펼쳐들기 만만하다는 기분을 준다. 출판사가 추천인을 제대로 뽑았다는 느낌이다.

"인간은 부정적인 것을 통해서도 성장한다."

그런데 사회는 오로지 긍정, 긍정만을 외치고 있다. 맑고, 밝고, 순수하고, 아름답고, 희망적인 것, 어리고 예쁜 것, 근사한 것들. 생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양면을 안고 있음에도 부정을 부정한 채 오로지 긍정으로만 사람과 사회와 작품을 대하려 한다. 작가 가시라기 히로키는 그것을 걱정한다.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런데 긍정만으로는 절망한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없다. 13년의 긴 투병생활로 체득한 사실이다. 다른 친구들이 취업 걱정, 연애 걱정을 할 적에 작가는 침상에 누워 본인에게 닥친 절망을 곱씹었다. 그 시절 문병 오는 사람들은 대게 완치한 사람의 투병일지나 희망과 행복이 가득한 소설 내지는 밝은 음악을 가져왔던가 본데 그 선물들은 일절 위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히로키의 마음 속 상대적 절망을 더 깊고 넓게 만들었다. 세상은 저토록이나 환한데 나만!! 왜 나만!! 굳이 투병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보았을 박탈감이요, 좌절감이라 끄덕끄덕 공감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의외의 안도와 위안을 가져다 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바로 절망독서다. 도스도예프스키, 카프카, 다자이 오사무 등이 쓴 인간의 피폐하고, 어둡고, 사악하고, 일그러지고, 슬픈 이야기가 가득한 소설들. 이 소설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에게 동질감을 주었고, 외로움을 덜 느끼게 했고, 긍정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부수어져버린 인생 안내판 앞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던 그의 앞에 현실에서는 접할 수 없는 소설 주인공들의 좌절과 고통이 그 자신의 나침반이 되고, 지도가 되고, 인생의 그림을 다시금 그려 안내하는 네비가 되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지금 현재 절망할 이유도 없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조차도 절망독서를 해야하는 것 또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 인생의 고비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닥쳐올지 알 수 없으니 당신 인생 앞길에 엎드려 버린 좌절이 무서워 주저 앉기 전에 보편적 절망과 비극으로 현실을 미리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힘이 없어 좌절 앞에 쓰러지기 전에 열심히 절망독서로 체력을 비축하라는 것이다. 작가의 추천 책에 어느 한 권 내가 읽은 책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작품 사이사이 잘 도려낸 문장들에 심취하며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하며 읽었다. 역시나 재미는 없었지만 내 인생 포기하고 싶은 어느 순간 또 어느 심심한 날 한켠에 그의 절망독서 목록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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