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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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휴대폰 알람이 좁은 침대 발치에서 울리기 시작하자 터치 패드에서 야광 막대들로 이루어진 05:50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p8)

모든 것. 시몽 랭브르가 2월의 혹한 속 굽이치는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고, 어설픈 트럭에 친구들과 올라타 살얼음이 낀 도로를 가로 지르던 새벽, 그에게 닥친 그 모든 것, 죽음. 심장은 기계에 기대어 작동하지만 뇌는 죽어버린 비가역 코마 상태의 시몽 랭브르는 제 몸에 대한 의결권조차 없다. 심장, 콩팥, 위, 간 내 몸 속 장기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싶다거나, 나눠주고 싶다거나, 적어도 내 각막 정도는 눈꺼풀 아래 보존한 채 땅 밑에 묻히고 싶다는 최소한의 의사조차 전달할 수 없는 죽음으로 그는 세상과 단절되었다. 아들의 죽음을 채 인지하기도 전에 장기이식을 권유받는 시몽의 부모,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들의 다른 보호자들, 부모에게 어린 자녀의 죽음을 통고해야 하는 그러나 먹이를 주지 못하고 나온 새의 안부가 더 걱정되는 의사, 부모를 설득해 장기이식을 하게 만들어야 할 역할이 주어딘 코디, 남자친구의 전화를 기다리는 간호사, 시몽과의 간밤 다툼을 생각 중인 여자친구, 심장적출대기자, 장기이식을 이행할 상대병원의 젊은 의사, 젊은 의사의 희극인 연인, 심장의학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의사 아르팡, 아르팡의 어린 딸 등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시몽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그들의 관계는 연결되어 있는 듯 하지만 또 동시에 시몽과는 완전히 관련히 없는, 무가치한, 무의미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죽음은 본인만의 사건이었다"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처럼 시몽의 죽음은 오로지 본인과 그 부모만의 것으로 그 밖의 모든 세상이, 특히나 시몽이 몸 누인 소생의학과의 만 하루가 평범을 살아나가는 모습에서 죽음이 훨씬 더 고독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병동에 발 들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궤적 한켠을 켜켜히 시침질 하다 마지막으로 죽은 이의 몸을 꼼꼼히 홈질하여 맞붙인 옷이 저 혼자 외롭게 펄럭이는 것만 같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라는 한 실로 지어진 옷 따위 어떤 이는 손도 대지 않을테고, 어떤 이는 입었다가도 훌렁 벗어 버릴테지만, 시몽의 부모 숀과 마리안은 앞세운 자식에 대한 고통과 일상의 괴리 속에서 언제까지고 그 옷을 입은 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주는 비극성은 그와 비슷한 옷을 언젠가 나와 내 가족들 또한 분명히 입게 되고 말리라는 것, 형태는 다를지언정 몇 번은 분명히 겪고 말 비극의 하나라는 것. 시작하는 하루가 그와 같은 공포로 서글프고 두렵다.

뒷 표지 추천사로 단숨에 다 읽었다 말씀하신 아툴 가완디(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작가)께 존경을 표한다. 끊임없이 겻길로 새는 이야기와 장황한 묘사가 힘들어 고백컨데 초반 세 번쯤 읽기를 포기할까 고민했었다. 세 아이들의 서핑 장면, 바다로 나아가 파도를 타고, 사고를 당하기까지가 특히나 지루하다. 잠깐의 풍랑이라 생각하고 부디 끝 페이지까지 무사히 항해하시길 빌어본다. 언젠가 내게도 닥칠 일이라면 이렇게 소설로나마 한번쯤 죽음을, 남은 이들의 일상을 예견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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