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고선 머리에 의문문이 한가득이었다. 가족소설이라고 써있는데 뭐지? 에세이 같은데 뭐지? 소설인지 아닌지 에세이인지 아닌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살짝 헷갈린다. 세상 모든 가족 이야기가 소설과 닮아 가족이라는 이름이 꼭 소설의 다른 말인 것 같다는 작가의 말에도 혼란이 가중된다. 장르의 속성은 에세이지만 장르명은 소설이라고 하겠다는 건가 지금?? 그렇게 혼자 묻곤 나 좋을 대로 결정을 내려버렸다. 그래, 소설로 가자. 현실이면 부럽고 부러우면 지는거니까 이건 소설인거다! 하고 말이다. 

작가의 우리 집 이야기, 유쾌한 기호씨네에서 벌어지는 44가지 에피소드의 시작은 아내의 땡깡땡깡한 설거지 소리로 시작한다. 작가이자 직장인이며 가끔은 육아에 분투하는 아빠 기호씨는 별 이유도 없이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이유를 짐작해 보지만 찔리는 구석이 너무 많다. 허구헌 날 술 먹고 늦게 들어와, 육아 참여율 떨어져, 유치원생 아들애가 둘이고, 살림살이는 비좁고, 집에는 장롱도 없고, 뭣보다 약속했던 대학원 진학도 시켜주지 못했다. 한 며칠 견뎌보다 어느 날 술 마신 용기로 큰소리를 떵떵 쳐 본다. 당신 대학원 못가서 그래? 애들도 어리고 나 직장도 바쁘고 글도 써야 하고... 그래그래.. 뭐가 됐든 내년엔 진짜 내가 시간 좀 내볼테니까 당신 원대로 대학원 가자. 응? 하며 아내를 달래는데 정작 아내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 "나 두 달 째 생리가 없어." 그저 대학원을 못가 심술이 난 줄로만 알았더니 아뿔싸! 

그렇게 태어난 코코몽 공주님은 아빠가 무슨 말만 하면 얼쑤라는 추임새를 넣고 다음 추임새로는 쾌지나 칭칭나네를 배우고 있다. 사랑꾼 큰아들은 잠자리 기도 시간마다 하나님 서영이 옷 따뜻하게 입게 해주세요, 서영이 게임에서 이기게 해주세요, 우리 서영이 우리 서영이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 아버지는 서영이만 봐달라는 듯 기도를 드린다. 미술쟁이 (그러나 다섯살) 둘째 아들은 나무에 바나나를 칠해 장수풍뎅이를 불러 형제가 되는 것이 꿈이다. 예술쪽이 적성인지 돈 많이 드는 꿈만 꾸는데 기호씨는 A4 용지를 무더기로 사줄 용의가 있으니 우리 둘째 작가하면 안되겠냐 소박한 꿈을 꾸기도 한다. 주례님 말씀따나 낭만적 사실에 입각한 인간주의로 가정의 중심을 잡고 있는 기호씨의 아내는 현명하고 유쾌한 사람이라 그녀의 일화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고, 점점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는 내부지향적 남편 기호씨는 그런 아내의 품에서 계속 철이 들어가는 남자였다. 

핵가족 사회에 보기 드문 대단위 구성으로 엄마, 아빠, 큰아들, 작은아들, 막내딸 도합 다섯에 찬조 출연하는 부모님과 일가 친척까지 더하여 바람 잘 날 없이 재미나게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들이 책 속 한 가득히 펼쳐졌다. 생활밀착형 이야기라 한끗 잘못 틀면 청승 맞고 구질구질한 스토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을 어찌나 똥꼬발랄하게 풀어놓았는지 에세이를 싫어하는 나조차도 (아참, 이 책은 소설이었지!!) 웃음과 눈물, 감동과 재미가 뒤섞인 이 책에서 흠을 잡을 수가 없더라. 내 기준 완벽한 토탈패키지였달까. 씨익 입술 미소 잠깐에 흐흐흐, 흐흐흐흐, 미치겠다 왜 이래? 하며 헤프게 웃음도 흘리고 다시 흑, 뭐야, 왜 갑자기 울려? 하면서 찔끔찔끔 눈물 콕 찍게 되는 그런 일상들이 꼭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나 키울 때 우리 엄마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안쓰러운 우리 아빠 이야기 같기도 한.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묶여 육아라는 같은  목표로 나아갈 때 세상 모든 가족의 이야기는 그 구석구석까지 너무도 닮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가 보다. 감성 폭발하는 밤도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며 드물게 마음에 들어버린 에세이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에세이, 장르불명, 하여튼 뭐가 됐든 이기호의 책이 마음에 든다. 삼십 년을 쓰기로 했지만 4월 16일의 그 날 이후 차마 내 새끼들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길 자신이 없었다는 작가의 그 마음까지도.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금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하길."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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