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미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혹 부리나케 읽혀서 불티인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부리나케가 불이 나게의 변어잖아요. 그 정도로 술술, 순식간에 읽힙니다. 시어머니, 시누이, 며느리 간의 알력, 견제, 시비 같은 가정 불화가 제가 딱 싫어하는 소재이다 보니 뿔뚝뿔뚝 돋아나는 신경질을 눌러야했다는 것만 빼면 역자의 철야책,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당당한 소개가 부끄럽지 않은 소설이었어요.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는데 이해가 가더군요. 사랑과 전쟁 + 적과의 동침에 스릴러가 섞인 느낌인데 더럽게 재수없는 일에 자꾸만 휘말리고 휘둘리는 것이 조용한 가족도 생각나고요. 시작은 막장이 아니었으나 막장으로 흘러갈 삘이 보이고 끝에 가니 또 막장은 아니었던 훈훈한(?) 가족 스릴러라고 해야할까요. 하여튼 세상의 많고 많은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진짜 미친 또라이 하나랑 엮인 일가가 제대로 큰 코 다치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시작은, 그러니까, 재판장으로 가기 직전 마음의 준비를 하는 판사 이사오의 사형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소개로 포문을 열었어요. 한 범죄가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 범죄는 마무리 됐고, 그 집행만 남은 시점. 그 판결에 초점이 가있는게 좀 신선했습니다. "범죄자를 엄하게 벌하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사람을 심판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재판관은 양형을 1년 더하고 뺄 때도 끊임없이 번민을 거듭한다"고 이사오는 생각합니다. 판사라도 누군가에게 형을 내리는 일은 불편한 일이겠지요. 하물며 그게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형일 때에는 말할 것도 없을테구요. "살인자든 누구든 더 이상 사람을 심판하는 일 따윌 할 수 없다. 나도 사람을 죽인 거야."라고 말하며 은퇴를 한 선배 판사를 눈 앞에서 목격했던 탓인지 본래 성향 탓인지 여러 심정 부담과 검사측의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이사오는 일가족 살인사건의 피고인 다케우치 신고에게 사형이 아닌 무죄를 선고합니다. 그 직후엔 선배와 마찬가지로 은퇴를 해버리구요. 그런데 그게 좀 비겁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사오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사형을 결해야 할만큼 유죄가 기정사실화 된 사건을 목전에 두고 나가버린 거라서요. 판결을 두려워하는 판사라는 건 충분히 공감가지만 이사오에게서는 책임을 회피한다는 느낌이 더 크게 들어서 좀 싫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사오의 이런 비겁함은 가정 내에서도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치매에 걸린 모친, 그 모친의 병환을 이유로 은퇴한 주제에 어머니 입에 죽 한 사발 떠먹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럼 그 고생을 누가 하고 있냐. 피 한 방울 안섞인 그의 아내 히로에와 며느리 유키에의 희생이 자의, 타의 속에서 마음껏 쥐어짜지고 있었습니다. 이사오의 누나는 딸이랍시고 일주일에 한 번 드나들면서 히로에를 좀 먹고, 이사오의 아들은 무능력한 프리터에 마찬가지로 집안 일에는 아주 놈팡이가 따로 없어 할머니쪽은 쳐다도 안보구요. 아내가 힘든 걸 알면서도, 하물며 아내가 아파서 병원을 가는 상황인데도, 자기 엄마 배변을 못도와줘서 어쩌지 하다가 히로에를 쓰러지게 만드는 남편이라니 한심하잖아요. 히로에와 유키에가 참고 사니 막 치고 박고 싸우는 가족은 아니지만 잠재적 불안 요소가 여기저기에 널린 상황이지요. 그런 일가족 앞에 이사오로부터 무죄 판결을 끌어냈던 그 남자, 다케우치 신고가 등장합니다. 해외중개업을 한데다 본래 물려받은 돈도 많고, 돈도 잘 쓰고, 어딘지 고상하고 세련되서 옷도 잘 입고, 이사오와 다르게 다정다감한데다 감성지수도 높아 히로에의 마음에 절묘하게 공감하는 그런 남자가 서서히 이사오 가족을 침투해 옵니다. 그 때부터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 유키미의 딸 마토카는 어쩐 일인지 난폭해져 밤에 안싸던 오줌도 막 싸구요. 할머니는 죽 먹다 돌아가시고, 유키미의 과거가 흩뿌려지고, 오해를 사고, 누가 집을 나가고 어쩌고. 뭐가 원인이다 딱 꼬집을 순 없지만 자꾸만 찝찝하게 변모해 가는 일상과 가족간의 오해와 의심, 갈등의 상황들이 사실 굉장히 익숙하고 뻔했습니다. 근데 그 뻔한 상황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도 뭔가 뻔한 것 같은데 쫀쫀한 긴장감으로 제 마음에 불티를 던져요. 이사오와 오감발달 며느리 유키미의 마음에도 그 불티가 날아가구요. 이 불티가 그저 불티로 잔잔히 사그라들지 불티가 확 번져 일가를 송투리 채 불 태울지. 이사오가 좀 빨리빨리 움직여서 불티를 털어주면 좋겠는데 이 영감님 왜 이렇게 느긋한지 좀 화가 나긴 하더군요. 그렇지만 결말은 꽤 후련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결말이라 불뚝성이 순식간에 가라 앉았어요. 아주 칭찬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처음부터 범인은 확정되어 있고 이놈이 어떤 식으로 불을 지르고 다니고 가족은 언제쯤 그 발화지점을 찾아낼 것인지가 관건인 책이다 보니 정답이 딱 정해져 있는 유형의 스릴러를 싫어하신다면 좀 심심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어지간한 취향에는 별 네 개쯤은 다들 찍어줄 것 같아요. 두 남자 이사오와 아들 도시로가 약간 폭탄이긴 하지만요. 아들 도시로가 진짜 찌질 극치거든요. 유키미가 유산한 애가 자기 애가 맞냐며 추궁하고, 유키미 전남친 하고 다툰 채 유키미만 남겨놓고 신고의 차를 타고 멀어질 때는 책 속으로 뛰어들어가 뒷통수 한 대 때려주고 싶었어요. 으이구 찌질아 찌질아. 너는 임마 맞아도 싸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지만 혼꾸녕 난 게 하나도 안불쌍하더라. 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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