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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물검역소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4월
평점 :
2009년에 출간되었으니 꽤 오래된 소설인데 저는 존재조차 몰랐던 한국 작가 강지영님의 작품 신문물 검역소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한국 작가 책이라 몰랐을 거에요. 저 정말 한국책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일 년 통틀어 한국 작가 책을 채 한 권도 안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작가를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내 취향이 아니다라는, 정작 몇 권 읽어본 책도 없는 주제에, 고정관념으로 꽉 막힌 독서를 하던 시기가 길었으니까요. 그 때 적에 이 책을 추천 받았다면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을텐데 취향의 폭도 넓어지고 시야도 트여서 그런가요. 어라라, 이 책 정말 재밌습니다.
주인공 함복배는 과거날 오줌보를 못참아 자리를 뺏기는 수모를 겪고 시험을 옴팡 망쳐버립니다. 조선시대 시험은 선착순이라 늦게 들어온 사람은 시험지도 늦게 받고!! 문제도 늦게 확인하고!! 그만큼 문제 풀 시간도 줄어들고!! 심한 경우엔 문제를 아예 못봐서 시험을 치를 수 없는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더군요. 저 같은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는 과거시험은 꿈도 못꿨겠구나 싶어 책을 읽으면서 또 살살 배가 아파왔습니다. 감정이입이 심하면 이래요. 그깟 오줌 때문에 시험을 망친 함복배가 남 같지가 않더라구요. 함복배는 몰락한 양반가의 자손이라 과거 급제로 집안을 일으킬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말짱 황으로 어쩌다 보니 제주도에 신설된 신문물검역소에 대장(?)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너무 열악한 환경이라 이차저차 실망도 했지만은 임금님을 곁에서 뫼실 날을 꿈꾸며 본디 소임, 신문물검역에 힘을 쓰지요. 갓 대신 머리에 쓰는 불아자나 치질 치료 도구인 칫솔의 두 사용처, 비누를 만드는 것과 같은 해프닝도 웃겼지만 박연이라 이름 붙인 표류자 벨테브레와의 만남이나 행적이 의심스런 암행어사 송일영과의 대치, 혼인을 앞둔 처녀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사건, 어지자지의 기수영이나 기수영에게 원한을 가진 미호, 함복배의 연정의 대상인 연지 등과 같은 아가씨들과의 얽힘, 함복배의 수줍음, 고뇌, 질투, 엉터리 추리 등이 참말로 재미나더군요. 함복배 이 녀석은 주인공 주제에 왜 이렇게 자꾸 헛다리를 짚는지. 근데 그게 답답하지를 않아요. 보통 소설 속 주인공이 너무 멍청하게 느껴지면 막 갑갑하고 짜증나고 그렇잖아요. 근데 우리 주인공 코찔찔이 함복배는 그냥 귀엽고 막 귀엽고 계속 귀엽고 그래요. 또 등장인물(?) 중에 코끼리, 코선생이 있는데요. 조선시대 귀향 가 굶어 죽은 낙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는데 코끼리도 실제로 조선시대에 선물로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 놈이 살인사건을 일으켜 제주도로 귀향을 오는데 이 녀석과 얽힌 에피소드도 참 재미납니다. 얘가 뭘 자꾸 뿌수는데 그 뿌수는 얘기가 전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비누도 참외도 수박도 먹어 뿌시고, 움막도 깔아앉아 뿌시고, 함복배도 등허리에서 날려 뿌시고, 뿌시고 또 뿌시고 계속계속 뿌셔라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어 좀 슬펐어요. 코끼리와 대화가 된다면 그 부모의 성품과 생김을 묻겠다는 코 찔찔이 주인공 함복배의 정감있는 말이 책을 덮고도 계속 생각났을 정도로 코선생의 결말이 아쉬웠습니다. 이 녀석들 파트너쉽이 좋았는데 그래도 2탄은 없겠지요?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 책, 신문물검역소는 조선시대 후기를 배경으로 한 코믹 코지 미스터리입니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나 사라진 놉의 딸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하면 감이 딱 잡히실 거에요. 역사물이지만 가볍고 발랄하고 산뜻합니다. 사람이 죽어가도 전반적인 극의 분위기는 깨방정이에요. 의도치 않게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비글미 넘치는 주조연과 연쇄살인사건과의 만남, 그리고 은근한 로맨스와 꽉 막힌 해피엔딩까지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다 모여있는 책이라 크게 흠 잡을 구석도 없었구요. 조선명탐정과 달리 신문물검역소의 주인공 함복배의 빙구미와 찌질미 수위가 높기는 한데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보다 보면 귀엽습니다. 초기 설정인 벙어리는 당최 이해가 안가지만, 큰 떡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여주인공 연지와의 엇갈림을 위한 소재였다고 치면 별무매력, 그래도 그 부분이 아주 짧아서 상관없어요. 인기를 반증하듯 구판은 품절되고 개정판이 새로 나왔는데요. 표지의 미소년을 보고 박보검이 팟 하고 떠올랐어요.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날 것 같은데 어떻게 좋은 소식 좀 있으려나요. 책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2차, 3차 창작물들도 기대가 됩니다. 한국 장르소설을 좋아하시고 역사 변형물(?)을 사랑하시는 분들께 잘 맞을 것 같은 책. 저도 이쪽 장르와는 화합이 잘 되겠다 하는 확신을 얻게 된 책이라 가볍게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