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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로소의 분홍 벽
에쿠니 가오리 지음, 아라이 료지 그림, 김난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그림책 몬테로소의 분홍 벽입니다. 직전에 벌거숭이들을 읽지 않았다면 에쿠니 가오리 책 나왔는데 뭐, 어쩌라고 하며 스윽 넘기고 말았을텐데 벌거숭이들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던 탓인지 신간 소식에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워낙에 벌거숭이들을 술술, 가볍고, 재미나게 잘 읽은 탓이겠지요.
에쿠니 가오리가 그린 고양이 하스카프는 연갈색의, 낙천적이고 게으른 성격의 가정집 고양이입니다. 당연히 도둑 고양이일거라 생각했던 예상을 벗어나 외려 꽤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는 고양이였어요. 집도 있고, 주인마님이나 가족들과의 사이도 좋고, 등 따시고 배부르니 게으름 부리며 늘어지기에도 딱 알맞은. 물론 나태하다고 입방정 떨며 괴롭히는 못된 이웃이나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구요. 그런데도 고양이 하스카프는 감은 눈 사이로 떠오르는 몬테로소의 분홍 벽을 잊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분홍벽의 꿈을 꾸기 위해 더 게을러지고 더 나태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못 말리게 아름다운 분홍색 벽, 꼭 감은 하스카프의 눈 위로 계속해서 떠오르는 환상 속의 별. 하스카프는 이 별을 찾아 떠나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지요.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겨두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용감한 고양이거든요.
하스카프는 주인마님께 이별을 고하고 꿈 속의 남자가 가르쳐 준 방향으로 몬테로소의 분홍 벽을 찾아나서지만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사자를 만나 유혹 당할까봐 겁도 나구요. 열기구가 잘못 된 방향으로 흘러가 몬테로소로의 여행이 더욱 길어지기도 하죠. 배고픔도 겪고,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강을 지나, 또 숲을 건너서, 다시 버스를 타기도 하는 등 긴 발걸음 끝에 드디어 몬테로소의 분홍 벽에 도착을 합니다. 그 벽 앞에서 고양이 하스카프는 행복했을까요? 아니면 꿈 속의 벽이 아니라 실망했을까요? 꿈 속의 벽이지만 편안하고 따뜻한 내 집, 맛잇는 집밥, 주인마님의 손길이 그립지는 않았을까요? 몬테로소의 분홍 벽 앞에서 고양이 하스카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할 수 없는 하스카프의 결말이 저는 아주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간결한 그림책인데 분홍 벽이 주는 이미지가 아주 또렷해서 책을 읽은 밤엔 제 감은 눈 속에서도 분홍 벽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건 고양이 하스카프의 별이잖아요. 어째서 제 별은 보이지 않는지, 잠들기 직전 조금 슬펐던 것도 같습니다. 고양이 하스카프와 분홍 벽은 사랑스럽고, 아라이 료지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고양이 하스카프에게 샘도 나더군요. 에쿠니 가오리의 질투를 부르는 고양이 하스카프와 함께 저는 행복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