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왔지만
다카기 나오코 지음, 고현진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어쩌다 보니 만화책을 두 권이나 읽게 된 4월입니다.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 속편에 이어 이번엔 어쿠스틱 싱글라이프로 유명한 다카기 나오코 작 "도쿄에 왔지만"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책이 뙇!! 너무너무 설레는 래핑본인 겁니다. 전 래핑 책은 뜯고 싶지가 않아요. 오랫 동안 새책의 상태로 유지하고픈 본능과 읽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손가락이 꿈틀꿈틀. 처음엔 본능이 승기를 잡아 일주일 정도를 더 래핑 상태로 묵히며 요모조모로 뜯어보려 했는데요. (표지만 봐도 재밌어요. 다카기 나오코 작가가 보이시나요?) 최근 묵직한 책으로 과식한 탓에 좀 산뜻하게 입맛을 돋우는 책을 만나고 싶더라구요. 노랑, 빨강의색감과 아기자기한 그림부터가 상큼한 "도쿄에 왔지만"이 아주 딱이었죠.

다카기 나오코는 아시다시피 일러스트레이터인데요. 처음에는 어느 회사에 취직해서 그 회사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일러들을 그렸던가봐요. 근데 그 일이 그녀의 적성엔 맞지 않았던 거죠. 이십대 초반이었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작은 체구와 반대되는 강단도 있었던지 1년 6개월만에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도쿄로 상경을 합니다. 도쿄는 사람도 너무 많구요. 길도 엄청 복잡하죠. 생활비는 비싸고, 방은 좁쌀만하고,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이 가족과 친구는 모두 고향에. 그래도 꿈을 향해 전진 또 전진하며 알바도 하고 은행 코너에 작품 전시도 해가며 됴쿄살이에 적응하는 잔잔한 에세이형 만화였어요. 에세이는 잘 못읽는 편인데 만화여서 그런가요. 술렁술렁 어찌나 잘 읽히던지. 만화라 글밥 자체도 적긴 했지만 단순한 그림체처럼 그녀의 이야기도 억지 감동이나 눈물 짜는 고생담 없이 담백한 느낌이라 더욱 좋았던 것 같아요. 비슷한 일상물인 마스다 미리의 작품과도 느낌이 좀 달랐는데요. '내 누나 속편'이 얼렁뚱땅한 유머로 웃음을 자아냈다면 '도쿄에 왔지만'은 지방에서 갓 상경한 아가씨의 쭈뼛쭈뼛하고 무섭고 설레고 또 어쩐지 부럽기도 한 그 느낌을 너무 잘 표현해서 피식 웃게 되더라구요. 저도 지하철도 없는 지방민인지라 서울도 아니고 혼자 부산 가서 처음 지하철 탔을 때의 긴장감은 여태 잊지도 못해요. 서울은 아직도 갈 때마다 긴장되구요.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막 울렁울렁 하더라구요. 이건 다른 관광지 갈 때도 마찬가지긴 하지만요. 배가 아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배가 막 부글부글할 정도로 긴장 백배. 그래서 고향 떠나 살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도쿄에 왔지만의 정서에는 마구 공감이 가더라구요. 타향살이 설움, 겪어본 적은 없지만 막 알 것 같은 그 느낌적 느낌 있잖아요. 특히나 좋았단 장면 하나를 꼽자면 아버지가 고향에서 올라와 다카기 나오코 작가와 며칠을 보내는 장면이었는데요. 티비선도 고쳐주고, 쌀도 10kg 사서 옮겨 주고, 대나무 발도 걸어주고 하는 그런 소소한 장면들이 열 페이지 백 페이지의 상세한 서술보다 더 감동적이고 예쁘더라구요. 이런게 청춘일상물, 만화 에세이의 묘미인가 했습니다.

도쿄는 복잡하지만 도쿄에 왔지만은 간결합니다. 두껍지도 않구요. 말씀드렸다시피 깔끔한 만화책으로 진땀 빼는 스토리도 아니랍니다. 심심한 날, 마음도 어지럽고, 이렇게 저렇게 머리 쓰기도 귀찮고, 묵직한 책은 부담스럽고, 소설도 싫고, 에세이는 좋지만 글밥 많은 책은 별로다 싶을 적에 가벼운 마음으로 쓰윽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초판 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특별 사은품 마그네틱 자석도 주거든요. 이 녀석도 아주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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