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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아쓰야와 고헤이, 쇼타는 좀도둑입니다. 그들이 어디의 누구를 털고서 도주 중인지는 이야기의 초입에선 알 수가 없어요. 도둑질 그 후, 정확히는 도주 중 차가 퍼진 관계로 나미야 잡화점으로 숨어들면서 이 얘기가 시작되니까요. 배는 고프고 폐가 속 잠자리는 불편하고 세 친구가 수런거리는 와중에 우편함에서 의문의 편지 한 통을 발견해요. [저는 국가대표 운동선수구요. 불치병에 걸려 아픈 남자친구를 간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제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걸 꼭 보고 싶다고 합니다.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요약하자면 대충 이 정도가 되겠네요.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나미야 잡화점은 폐가란 말이지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요. 누가 다녀간 흔적도 없구요. 본래 그 자리에 있던 편지라기엔 편지가 너무나 깨끗합니다. 장난이라기엔 누굴 놀리기 위한 장난인지도 모르겠고 이거 영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그런 와중에 좀도둑 치고는 좀 순진해 보이는 고헤이와 쇼타가 그 편지에 답장을 써서 우유상자에 넣어둡니다. 그러자 그 답장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다시 국대의 그녀로부터 답장이 오지요. 답장은 잘 받았지만 말처럼 결정이 쉽지 않다 뭐 그런 내용이에요. 그러면 어쩌라는 거냐, 자기 맘대로 할거면 상담은 왜 하는거냐 내용에 열도 좀 받으면서 무섭기도 무서워 좀도둑들은 벌벌 떱니다. 두 눈 부릅뜨고 감시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거든요. 편지가 저 홀로 나타난 겁니다. 거기다 아무래도 이 편지는 과거로부터 도착한 것 같거든요. 잡화점의 시간도 이상합니다.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내든 문을 열고 나가면 잡화점 밖은 여전히 그 시간, 여전한 그 달이, 그 자리에 콕 찍혀 있습니다. 사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문 안으로 들어와버린 것 같아요. 그리고 연이어 도착하는 또다른 편지들, 또다른 답장, 여러 사연들. 꼭 도깨비에 홀린 것 같더라구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가 생의 기쁨인 나미야 할아버지, 정답이 없는 인생에 확신을 가지고 싶은 고민 많은 사람들, 좀도둑이지만 근본적으로 착한 고달픈 백수 삼인방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진지하고 아름답고 얼렁뚱땅한 편지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교차하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요. 젊은 나미야와 화광원 설립자의 슬픈 첫사랑, 야반도주 때 부모와 헤어진 아들의 자책과 염원, 가수가 되진 못했지만 영원불멸의 곡을 남긴 생선가게 장남,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오해를 풀고 삶을 사랑하게 된 어느 가수의 매니저, 나미야 잡화점의 편지로 부자가 된 고아 등등등. 재미난 건 뭐냐면요. 알고 봤더니 이 사람들이 아주 남남은 아니더라는 거에요. 영 딴판인 사람들의 고민 토막극 같은 느낌이었는데 사실은 이들 모두가 거대한 인연으로 엮여져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우연처럼 잡화점으로 흘러들어간 좀도둑까지도요. 물론 이 같은 구성이 경악할만큼 놀랍다거나 출판사가 홍보하는 것처럼 치밀한 짜임새에 짜릿한 쾌감까지 느꼈다 이건 좀 오버인 것 같지만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결국 한 거미가 짜놓은 그물 속에 오종종 매달린 같은 먹이더라, 인연이라는 먹이... 라는 건 좀 유쾌했습니다. 그랬구나, 마리아님이 보고 계셨구나 같은 느낌이랄까요. 전 뭐 이런 억지 인연도 나쁘지 않아요. 사실 꽤 좋아하는 편이라 아주 괜찮았습니다.
시공간을 거슬러, 모든 인연들이 퍼즐처럼 하나로 꿰여져 반짝반짝하게 맞춰질 때에는 익숙하고 빤한 구성이라도 아 재미있네 하며 웃으실 수 있을 거에요. 이거 좀 감동적이잖아 하고 눈시울을 붉힐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12년도부터 쭉 빼놓지 않고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자리매김한 이유를 확실히 알 것 같은 책이었어요. 봄밤에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구요. 배경이 되는 9월 13일이면 초가을이라기에도 이른 늦여름의 밤인데 소설은 어쩜 이렇게 청명한 봄의 느낌일까요? 호젓하고 심심한 밤. 스릴러, 추리, 살인, 방화 등에 지쳐 어떤 책을 읽어볼까 고민 중이시라면 이 책 나미야 잡화점을 만나보시길 추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