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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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가 없어요. 그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했을 뿐이랍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 아리요시 사와코. 오로지 독자들의 흥미진진한 리뷰로 관심을 가지게 된 책이었던지라 드물게 작가 소개부터 꼼꼼히 읽었다. 박완서 작가님과 동갑내기 친구더라. 1931년생. 명문가 집안에 아버지를 따라 자카르타에서 유년을 보냈고 대학 졸업 후에도 다시 유학길에 올랐던 엘리트층이셨던 듯. 등단도 빨랐다, 25살. 아쿠타가와상 후보였다고 한다. 일본이라고 해도 여류작가가 흔했을 시대는 아닌 것 같은데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다 84년도에 심부전증으로 사망하셨다고. 작품의 여주인공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삶이지 않나 싶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옮긴이의 말을 소설을 읽듯 들여다봤다. 예의가 아닐 수 있지만 역시나 흥미진진하다.

본론인 책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이것도 참 재미있다. 작가님 연세와 작품이 쓰여진 1978년도, <주간 아사히> 연재에서 어딘지 칙칙한 시대극을 연상했으나(편견이다) 전후부터 시작해 1970년대까지 이어지는 도미노코지 기미코라는 여성의  삶은 배경적으로도 감성적으로 별 괴리감이 없이 아주 화려하고 풍성하고 세련됐다. 번역의 힘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이천년대라고 생각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의 느낌이었고 굉장히 흥미진진하고 흥미로운 구성의, 악녀 주다해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야왕이 떠오르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총 27개의 챕터, 도미노코지 기미코라는 여성과 관련한 27명의 사람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책이다. 부기학원을 같이 다녔던 남자, 소학교 동창, 디자이너, 집주인, 전전남편, 전전남편의 가족들, 전남편, 전남편의 가족들, 첫남자, 불륜남, 불륜남의 아내, 같은 아파트 주민, 집사, 의사, 간호사, 친엄마와 방송국 PD, 연하남, 큰 아들과 작은 아들, 그 외 불특정 다수 관련자들. 이들이 이 인터뷰에 응했던 이유가 있다.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다. 이십대 초반 젊은 나이에 빌딩주, 보석점, 레스토랑 사장, 방송인으로 승승장구 하던 그녀가 어느 날 붉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꽃 같은 자태로 자살을 한 것. 인터뷰어도 주인공인 도미노코지도 전면에 드러나는 법 없이 소설은 일관되게 그녀와 관계되었던 이들의 시각에 따른 증언으로만 엮어진다. 그런데 그 증언이 우습기 짝이 없다. 도미노코지 기미토라는 여성이 27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이도 아니었을텐데 누구는 고관대작의 자녀로 고생없이 자란 부잣집 고명딸이라 하고, 누구는 세상 이보다 정직하고 겸손하며 순결한 이가 없다 하는데, 또 누군가는 아주 빙그레 웃으며 뒷통수 치는 여자, 사기꾼에 창녀에 천박한 투기꾼이라 칭한다. 더 우스운 것은 그녀의 남편들과 애인들은 그녀가 사망하기 전까진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것. 때문에 아들들에게 호적을 내어준 이는 그들이 제 자식이 아니라 하고 숨은 애인들은 서로 나서 제 자식들이라 주장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익숙한 막장 스토리인데 도미노코지 본인이 아니라 타인의 의한 다채로운 증언들로 구성된 탓인지 이 여자 뭐지? 대체 뭐가 본 모습이지? 사람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사기극을 펼칠 수 있나?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죽었다는건데? 하는 호기심이 페이지 뒤로 계속계속 커져간다. 때문에 성급하게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는데 사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는 좀 기대가 있었다. 틀림없이 에필로그가 있을 거라고, 그녀가 진실로 어떤 여자였는지 그녀의 본성과 생각, 사기극의 본질을 엿볼 수 있는 챕터와 사망원인이 밝혀지는 장면있을 거라고 예상을 했었다. 기대는 허무하게 끝이나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뷰 내용 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책을 다 덮은 지금도 궁금해 미치겠다. 도대체, 왜, 어떻게해서 그녀는 죽게 된 걸까? 숨겨둔 연하 애인과의 하와이 결혼식을 앞두고 붉은 드레스까지 맞춘 상태로, 결혼식 후 또다른 애인과 미국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 상태로 어째서 모란꽃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빌딩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걸까? 그의 작은 아들의 말처럼 평생을 아름다움에 심취해 살았던 여자가 허공 중에 펼쳐진 보석같은 무지개에 홀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도미노코지가 매번 중얼이는 어라라 때문에 우아한 분위의 여성을 상상하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 귀족적인 어라라 어투라니, 아무리 봐도 어라라는 너무 푼수같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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