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혹하는 글쓰기 (특별판)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ㅡ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ㅡ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ㅡ이 부분이 가장 쓸모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ㅡ허기증이랄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
ㅡ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p332
아니 뭔 놈의 글쓰기 책이 이다지도 재미있는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호러의 제왕, 공포소설의 대가라는 별칭에도 나는 그의 책보단 영화가 더 익숙한 사람이다. 미저리나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그린 마일 같은. 이 중에서 읽은 책은 그린 마일 밖에 없을 정도로 스티븐 킹에는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만난 듯이 읽는 내내 뿌듯하고 즐거웠는데 이게 다 이 책의 굉장한 재미 때문인 것 같다. 아마 스티븐 킹의 팬이라면 ㅡ물론 팬들은 알라딘 특별판 이전의 책으로 다들 읽으셨을 것 같지만ㅡ 한층 더 기꺼운 마음으로 읽게 되지 않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괜스레 팬들의 리뷰까지 궁금해진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크게 이력서와 연장통, 창작론, 인생론의 순서로 진행이 된다. 글쓰기 관련 책은 처음 읽어 봐서 보통 다 이런 구성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쩐지 그 스티븐 킹이라면 마냥 평범하게 짜놓은 순서는 아닐 것 같다. 작가의 꿈이 없어서인지 글쓰기 방식과 퇴고과정을 일러주는 <연장통>과 <창작론>을 읽을 때는 잠깐, 정말 잠깐 지루하긴 했는데 자서전 격인 <이력서>에 나열된 일대기와 교통사고에 대한 회고인 <인생론>은 아주 푹 빠져 읽었다. 온동네 전기를 나가게 만들어 경찰에 잡혀갈까 잔뜩 숨죽였던 말썽꾸러기 면모의 일화들이나 보모에게 당한 학대에도 유년을 방구 뿡뿡으로 희화화 하는 긍정성. 남편 없이도 당찬 어머니와 요즘으로 치면 영재 겪인 형과의 여러 일상들의 나열. 글을 쓰게 된 계기. 출판사나 잡지사에 투고했다 거절 당한 원고들. 벽에 못밖아 보관한 거절 메시지와 처음으로 받은 고료. 아내와의 만남. 세탁소에서 학교로 이어지는 직업 변화. 마약 및 알콜 중독.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1999년의 치명적인 교통사고와 회복까지. 책은 스티븐 킹 일생의 다양한 이야기들과 소설에 대한 가치관, 작가로서의 경험 등을 재치있게 풀어쓴다. 단순 독자인 나로서야 작가 지망생분들께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책인지 명료하게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고, 독자의 입장에서만 평을 하자면 앞으로 마주할 책들과 작가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상상하고 공감하게 할 유익함이 있었다. 글쓰기가 화석 캐기와 같다면 독자인 우리는 여러 종류의 화석을 선물 받고 구입하고 보관하는 중이라며 읽는 내내 즐거운 상상도 할 수 있었고 말이다.
이 책 한 권으로 글쓰기에 유혹 당하진 않았다. 그러기엔 글쓰기는 너무나 힘든 작업이다. 대신에 독서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폭이 넓어졌고 독서의 목적까지도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글쓰기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독서의 궁극적 목적도 마찬가지가 아닐런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유혹하는 글쓰기도 곁들여 궁금해지는 스티븐 킹의 책을 추천하며, 오늘도 절치부심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을 모든 작가들과 작가를 기다리는 모든 독자들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