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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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 부러뜨리는 남자의 주변 ★★★★

오가사와라 미노루 : "너 덩치는 큰데 완전히 쓰레기네."라는 평을 곧장 듣고 다니는 남자 오가사와라. 멸치 쭉쩡이 같은 놈들 앞에서도 기가 약해 주눅 들고 마는 속칭 찐따이다. 자신감도 없고 매사 의욕상실. 상대가 어떻게 굴어도 싫다라고 거절하지 못하는 남자라 직장 동료의 떠밀림에 사채빚까지 떠안고 말았다. 물론 그의 인생 시작 어디쯤에선 큰 덩치로 상대를 제압하며 용기백배한 시절도 있기는 했지만은 그 결과로 단체 이지메를 당한 후론 인생이 탄탄하게 내리막길, 사채까지 있는 이상 어디를 보아도 답이 없다. 그런 그가 의문의 남자 "오야부"로 오인받아 오야부의 대행역할을 하게 된다. "날 닮은 너는 빚이 있는 건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니 내가 해결해 줬다."(p62)

나카지마 쇼 : 오가사와라와 비슷한 인생 패턴을 밟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는 하는 인물 고등학생 나카지마. 이른 바 힘있는 친구에게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이지메의 대상이 되고 만다. 친구와 선배들에게 돈도 뺏기고 폭력도 당하는 그의 앞에 나타난 의문의 덩치 큰 남자. "괜찮아, 괜찮아. 지켜보기만 할 거야. 네가 죽을 것 같으면 도와주겠지만, 그때까지는 가만히 보기만 할게." (p34) 

와카바야시 부부 : 목 부러뜨리는 남자에 의한 살인 사건. 아내 에미는옆집 총각이 마구 의심스럽다. 몽타주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남편 준이치는 그럴 리가 있냐며 아내를 타박하지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러다 어느 날 옆집 남자의 뒤를 밟게 되는데. 평범한 부부의 평화로운 삶에 대한 축원. "분명 평화롭게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p78)

그리하여 대망의 목 부러뜨리는 남자 오야부 료 : "아, 시공간 왜곡 현상을 믿니?"(p35) 여러 인연에 코를 갈래갈래 묶어 해피엔딩을 이끌어 내는 남자 오야부. 그리고 그의 난데없는 죽음과 그의 곁에 흐르는 의문의 음악. 그는 왜, 어째서 죽게 된 걸까? 그의 영혼이 정말 또다른 시간 속을 흐르고 있는 걸까? 두 번을 읽어도 아리송하다.

 
2. 누명 이야기 ★★★★


마루오카 나오키 : 아들이 죽었다. 그는 아내와 이별을 했고 직장을 관둬야 했고 아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도 떠나와야 했다. 아들과 연관되어 있는 무엇과도 안녕, 모든 삶이 무너져내린 것이다. 그런데 아들을 치여 죽인 여자는 여전히 자신히 살던 그 맨션에서 새로이 남자친구를 사귀고 더욱이 운전까지 하며 잘 살고 있는 듯 하다. 그 속은 알 수 없지만 겉보기로는 그렇다. 용서할 수 없다. 용서가 안된다. 별안간의  충동 속 벌어진 살인 사건.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의문의 형사.

오야부 료 :  단편 1의 목부러뜨리는 그 남자. "시공간 왜곡 현상을 믿니?"(p35) 라는 질문이 나온 이유가 단편 2. 누명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어릴 적 오야부와 캐치볼을 해주기로 약속했던 남자. 우연히 만난 남자아이에게 캐치볼을 가르쳐주기로 했던 마루오카. "조금 기대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봐."(p35). 그는 정말 타임워프 중인걸까? 


3. 나의 배 ★

"우연히 같은 이름인지, 아니면 잇츠 어 스몰 월드인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당신은 평생 이 남자의," 구로사와는 침대를 가리켰다. "'나의 배'"에 타고 있었던 셈이야."

-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P163, 현대문학

와카바야시 에미 : 이웃을 살인범으로 의심하면서도 어쩐지 명랑하던 준이치의 아내 에미에게는 한 가지 숙원이 있다. 50년 전, 겨우 나흘을 만났던 남자의 행방을 알고자 하는 것. 이제 일흔을 넘어가는 에미에게는 인생에 별 달콤한 기억이 없다. 첫사랑은 60년도 더 된 옛날에 단 하루 만났던 남자애이고, 그 이후 별다른 연애조차 없이 선으로 만난 남편 준이치와 결혼해 의리로 살아왔기에 고작해야 나흘, 입맞춤 한 본 해본 적 없는 남자와의 기억조차 너무나 소중하다.

와카바야시 준이치 : 암이 악화되어 병상에 누워 있다. 의식이 없음.

구로사와 : 에미의 의뢰를 맡은 탐정이자 도둑. 에미의 과거를 쫓다 터무니없이 달달한, 놀랍도록 아기자기한 인연의 이야기를 밝혀 낸다.

에미의 인생 속 운명같은 인연. 운명은 운명인데 뭔가 엄청나게 현실적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허구적이기도 해서 뭔가 뻥 같은 느낌의 이 인연이 재미있다, 그러니까 소설이란 게 원래 작가의 뻥인데 뻥 중의 뻥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표현을 못하겠다. 50년 전의 나흘, 60년 전의 하루, 그리고 침대 위 의식을 잃은 남편 준이치의 모습까지. 시종일관 담담한 문체가 오히려 낭만을 부각시키는 단편 로.맨.스. 였다.   


4. 사람답게 ★★★★★

"하지만 하느님은 있어요. 옆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뿐이죠. 마음이 내키면 상자를 들여다보고, 그때 알아차리면 도와주기도 하고요."
"나쁜 놈에게는 벌을 주지."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까? 신은 우리를 항상 지켜보는 게 아닙니다. 그 점은 실망스럽지만, 다만 보고 있을 때는 규칙을 적용해 주는 거예요. 규칙을 위반하거나, 불공평하고 부조리하게 편중되어 있으면 그걸 수정해 주지요. 악인에게는 천벌을, 착한 사람에게는."
"바나나를."

ㅡ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p 216-217, 현대문학

여자 : 제부의 불륜 현장을 잡아달라고 구로사와에게 의뢰한다. 병든 시아버지와 시노모를 모시는 편리한 도구로 이용 당하다 쓸모가 없어지자마자 버림받게 된 여동생의 처지를 가엾게 여긴다. "죄의식이랄까, 죄책감이 없는 걸까? 그래도 사람 맞느냐고 묻고 싶어."(p173)

: 학원에서 폭력적인 이지메를 당하는 중. 세상에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 것만 같다 생각했던 그의 앞에 나타난 기기묘묘한 여자와 현상들. "법률을 초월하는 것.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없죠" (p188)
 
구보타 : 사슴벌레를 키우는 전업작가. 영역 개념이 확실한 사슴벌레를 사육하고 통제하며 인생 묘미를 깨닫는다.

구로사와 : 여자에게 불륜커플의 사진을 찍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온천을 찾았다 발이 묶이게 되어 구보타의 집에서 묶는다. 구보타와의 개똥철학에 불만을 품기도 했지만 불륜커플을 쫓다 그들의 사망을 목격하고선 그럴싸한 타당성을 느낀다.

자신의 폭행하던 학생이 빛처럼 사라졌다 머리가 다쳐오고, 박스 속 사슴벌레를 보며 느끼게 되는 신의 손길들. 뭐래? 하는 반감 반, 그럴싸한데 하는 동의 반. 읽는 동안은 좀 엉뚱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겨서 은근히 놓치기도 하지만 글쎄, 여기는 소설 속이니까. 적어도 이 허구의 이야기 안에서는 놓치는 것이 없는, 작품 전반에 걸쳐져 있는 작가의 촘촘한 그물과 천망회회의 소회가 마음에 들었다.


5. 월요일에서 벗어나 ★★

구키야마 : 됴코의 제작 프로덕션 소속. 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재미를 위해서라면 악의없는 방송 조작도 할 수 있는 류의 인성.

구로사와 : 어느 날 구키야마의 집에 걸리게 된 의문의 그림 한 점. 구키야마는 그것이 유명 작가의 그림으로 자신의 집에 걸린 연유를 알 수 없으니 구로사와의 도둑질 능력으로 그 그림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협박)한다.

책 속 인물들은 속 좋게 인상이 나쁘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구키야마 이 남자 정말 별로인데 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던 것 같다. 나의 배에 등장한 구로사와의 등장에 기대가 컸지만 구키야마 때문에 이 얘기가 좀 많이 싫었다. 생각하기 싫은데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 있어서. 구로사와가 제대로 한 방 먹이는 장면이 나왔으면 좋았을걸. 이야기가 가다가 만 느낌이지만 글쎄 그게 작가님의 스타일인 듯. 이제 두 권 (기억나지 않는 러시라이프를 제외하고) 읽었다고 뭔가 작가님의 스타일이 조금 잡히는 것 같다. 측근 이야기가 뒤를 따라 그래, 언젠가는 이라고 의미심장하게 상상할 여지가 있는 건 좋았다. 구키야마에게 협박 당하는 찜찜한 월요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오만은 프로도 실수하게 만들지만 그 실수가 구로사와에게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6. 측근 이야기

모두가 시선을, 그에게 던지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얼굴이었다. 이천 명이 넘는 사람들, 똑같이 표정 없는 얼굴의 사람들이 말없이 고발하듯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사진 중앙의 그는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ㅡ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p301, 현대문학

얀베 세이베 : 무사 시대 백성의 입장에 섰던 관료이나 결국 정적의 손에 아들과 함께 살해 당한다. 그의 사후 그의 정적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사건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그의 혼을 달래기 위해 신사가 세워진다.

구보타 : 사슴 벌레를 키우는 전업작가. 싫어하는 대학동창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 심령사진 등의 찜찜한 경험을 하게 된다. 구로사와에게 그의 불륜사진을 찍어달라고 의뢰. 큰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륜이 탄로나는 정도의 불운은 겪게 해주고 싶다.

: 잘 생기고 돈 많고 성격 나쁜 이른 바 금수저의 전형같은 남자. 구보타의 동창.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받아 젊은 나이에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현재 불륜 중이다. 얀베 세이베를 닮은 부하 이소베의 사후 주위 인물들이 연이어 사망 중이다. 미스터 시선의 대상. 

구로사와 : 구보타에게 동창의 불륜 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촌스러워도 좋다. 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현실의 대변처럼 그저 그렇게 악인이 잘 사는 이야기는 싫어, 딱 싫다. 그런 점에서 측근 이야기는 최고. 더는 연하장을 보내오지도, 근황 연락을 해 오지도 않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단편 4. 사랍답게와 연결해 제일 좋았다.

7. 미팅 이야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를 떠오르게 하는 미팅 이야기. 작은 밤의 음악이 여기 목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속에서도 흐르고 있었다. 사망한 오야부 곁을 흐르던 음악, 나의 배 속 구로사와가 얘기하다 만 놀랍도록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던 그 밤, 헤어졌던 연인들이 이어지고, 특별한 인생을 사는 남자가 경험하게 되는 평범한 이들의 미팅. 처음엔 이거 뭐지? 좀 지루하겠는데 했지만 읭? 이 남자 오야부야 뭐야? 잠깐 의구심도 가졌지만 결말에 들어가기에 딱 적합한 단편이었다. 목부남의 대미를 장식해주는 참 예쁜 이야기.
  

놀랍다,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라고 감탄할만한 작가는 아닌데 소소하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탄탄한 팬층의 작가에 대한 믿음, 지지가 이해가 된달까. 사람과 인생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도 마음에 들고, 성긴 머리로도 절반쯤 쫓아갈 수 있게끔 깔아주는 복선들도 재미나다. 인물들의 성격이 지나치게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점도 좋다. 나의 배 속 에미가 마구 감격하며 울고 불고 내지는 회환에 빠지는 장면 등이 등장했으면 이렇게 인상적이진 않았을 것 같아서. 기쁜 건지 실망스러운 건지 모르겠다는 에미의 말이 마음에 폭 와닿았다. 잇츠 어 스몰 월드라 그의 세계에 펼쳐진 권선징악의 그물에 빠져나갈 구멍이 많지 않다는 점도 좋은 포인트이고. 등장한 인물들을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예감까지 더해지니 남은 책들에 대한 기대가 한층 커진다. 와카바야시 부부를 또한번 만날 수 있을까? 정신과의사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는? 읽지 못한 작품들,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는 게 무엇보다 좋은 일인 것 같다. 구팬들은 이런 기대감 년에 한번쯤 밖에 못느끼겠지? 신팬의 행복이다.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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