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들 창비청소년문학 76
김남중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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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막의 계획도시, 스파다인의 황무지에 어둠이 내렸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을 머리에 이고 다함의 소녀 지니와 렌막의 소년 소우의 눈이 가까워 진다. 소우의 눈 속에 가득한 별들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그 별들 사이로 유성우 하나가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을만큼, 소우의 눈동자를 보다 깜짝 놀란 지니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만큼.

소우가 지니의 머리에 손을 얹고 땅을 바라보게 했다.
"내가 유성 보는 법 알려 줄게."
"정말?"
지니는 착한 아이처럼 시키는 대로 고개를 숙였다.
"시간 날 때마다 하늘을 보는 거야. 땅을 보다가 고개를 들면서 하나, 둘, 셋!"
(아이들이 고개를 든 순간 새끼 손가락 같은 꼬마 유성이 마법처럼 떨어져 내린다.)


ㅡ 해방자, p126, 창비

신이 하늘에 대고 성냥을 켠 것 같다던 (p125) 유성에 대한 비유가 예쁘고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워 머릿속에 남은 장면이다. 그런 그들에게 도마치 지구의 은퇴자 대반 할아버지가 전하는 말이 절절했다. "인생은 짧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는 거야(p124)" 대반 할아버지와 그의 연인 술미 할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전수학교를 통해 렌막으로 기술이민을 왔던 그들은 렌막시티에서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복합예방접종을 맞으며 일찌기 성욕을 거세 당했다. 성욕이 일지 않는 몸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욕구가 사라지며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인간적인 면모 또한 손상 당했다. 주사를 맞지 않게 될 경우  후유증까지 커서 자칫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내해야 하므로 복합예방접종은 그 자체로 국가가 국민에게 휘두르는 효율적인 관리 도구가 되기도 한다. 국가에  의해 사랑할 권리를 철저하게 봉쇄 당한 시민들. 정부는 이성간의 접촉 예컨대 키스와 같은 것들을 정부에 신고해야 할 중범죄, 요양원에 격리 되어 치료 받아야 할 이상 증세 등으로 치부하는 법을 만들었고 결혼과 출산 또한 정부의 철저한 심사 속에서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허가받을 수 있는 자격증이 되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렌막의 정규시민이나 이등시민인 기술 이민자들은 좋은 일자리와 좋은 잠자리 좋은 식사를 배정 받을 수는 있어도 생식욕구만큼은 철저하게 지워진 채 일벌처럼 일하다 스파다인과 같은 은퇴인들의 도시로 내몰리게 된다. 그럼에도 어느 세상에서나 그러하듯이 이곳 렌막시티에도 반골 기질을 가진 인사들이 있다. 정부의 감시가 소홀한 틈에 또는 실수로 또는 자의로 복합예방접종을 맞지 않게 된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반정부단체 피닉스.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관계를 가져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달라! 그런 피닉스가 있는 스파다인으로 렌막의 정규 시민 소우와 다암의 불법 이민자 지니가 휩쓸리는 와중 정부와 피닉스 간의 대립은 점점 본격화 되고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군대가 전차를 타고 도시를 밀고 들어온다. 황폐화 된 도시 다암을 떠나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지니, 그러나 캥커루 클럽이라는 불법적인 술집을 운영하는 진다이에게 저당잡혀 버린 인생. 렌막의 정규 시민이지만 소심하고 나약한 소년 소우, 친구 킴의 도움으로 복합예방접종을 피했지만 "사랑"과 "욕구"라는 감정에 몰입되어 친구 킴에게 키스를 하는 범죄까지 저지르고 도망치듯 렌막을 빠져나온 불안정성. 복잡한 두 인연이 우연처럼 만나 풋풋한 사랑과 격렬한 투쟁, 샘 솟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뻤겠다고 말하는 지니보다 예쁜 게 있을까?
귀엽다고 말하면 귀엽고 슬프다고 말하면 슬플 것이다. (p126)

소우가 지니를 두고 예쁘다고 생각했듯이 내게는 책이 참 예뻤다.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씨의 작품인 표지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이 한결같이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지니와 소우, 다미 아빠와 킴, 술미 할머니와 대반 할아버지, 그리고 피닉스를 이루어가는 작은 새 같은 사람들까지. 정부의 탄압과 강제, 디스토피아 세계를 규정하고 있는 책이니만큼 폭력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세상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야기는 동화 같이 사랑스럽고 그 자체로 연애시같은 예쁜 장면들이 넘쳐났다. 얼마전 읽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렌막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두 아이들의 모험은 용감하고 씩씩한 형 요나탄이 다함의 소녀 지니로, 겁 많고 소심한 동생 칼이 렌막의 소년 소우로 환생한 듯이 친숙해서 렌막이라는 별세계를 구상하고 있어도 낯설지가 않았다. 생존권과 존엄권의 대립을 보여주는 듯한 배경과 장치들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어 한층 깊은 의미와 재미도 더해주었고 말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넘쳐나는 이 시대의 자발적 거세자 중 한 명인 나로서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안락한 삶과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 전자를 택하겠지만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창문 넘어 도망친 소년 다우의 열정엔 이해를 넘어 순간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미안해하지 마. 끝까지 사랑하면 되는 거야!(p192)"라고 외치며 젊은이들을 살려 보내려는 피닉스의 어른들, 갓난아이들의 미소에 울음을 터트리는 젊은 어머니들의 모성, 특히나 그들이 보여주는 투쟁은 역사와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서도 감동스러워 코가 시큰했다. 여자가 아닌 갓난아이를 보기 위해 캥거루 클럽(술집)을 찾는다는 렌막시티의 남자 다미 아빠, 소우와 지니의 앞에 펼쳐질 다채로운 인생을 알려주는 듯한 앵무새 등 뜻밖에도 웃음이 나는 아기자기한 대목들도 많고 디스토피아 문학치고는 가볍고 산뜻한 점이 참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어른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청소년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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