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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무덤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2월
평점 :
Welcome to Poongdo!
풍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책을 덮고 리뷰를 쓰려 인터넷을 켰다가 네이버 창에 풍도라는 섬 이름을 검색해 봤다. 혹시나 남해의 외딴섬 그 조그만 낙도의 이름이 뜨지는 않을까.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송한 풍도의 초분 영상이 유투버에 올라와 있고, 갖가지 종류의 천으로 장식된 남해전자호에서 굿을 벌이는 무당의 사진과 미국인처럼 영어하는 섬의 아이들과 어른에 대한 기사가 올아와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거대한 돌미역이 펼쳐진 곽도 뒤편으로 소피아와 파출소장과 선장과 송기사와 이장, 수달과 남편 없는 아낙들, 아버지가 없고 또는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갯가에서 허리를 펴고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드는 영상이 올라와 있을 것도 같고 말이다. 그들의 순박한 미소와 어촌 뙤약볕에 까맣게 탄 살결이 보여주는 성실함으로 숨은 이면 따윈 생각지도 못한 채. 화면 저 멀리로 태국여자와 천자와 돼지와 이엉꾼과 철수가 뒤엉켜있는 중에 나뭇가지 위에선 올빼미 한 마리가 운다한들 그걸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이 오로지 풍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대한 찬양만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울리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없는 상상들을 해본다. 작가가 만들고 작가가 설정한 배경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쩌면 또 몰라 하는 기대감 속에 검색창 밑으로 올라온 풍도는 그러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 책 속의 풍도와는 다른 곳이었다. 다른 차원의 세상 대한민국 땅에는 없는 곳. 정유정의 종의 기원 속 군도신도시처럼 풍도 또한 가상의 섬이었지만 그 땅이 보여주는 폭력과 잔인함이 너무나 친숙해 현실인냥 착각하게 되는가 보다. 가고 싶진 않은데 궁금한 땅, 궁금한 섬 풍도, 풍도 속 사람들, 그리고 주인공 나.
"무당, 이엉꾼, 태국년, 이 연놈들은 예전에 문둥이들보다 더 흉악한 풍도의 적인 기라!"
ㅡ 올빼미 무덤, p252, 은행나무
관광객들이 밤에 숲속을 돌아다니다가 고양이들의 공격을 받아 아이가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그날부터 마을에서는 대대적인 고양이 소탕 작전이 이루어졌다.
(...)
"동네가 죄다 쥐판이라예. 고양이들을 모두 죽이고 나서부터 마을이 이래예."
ㅡ 올빼미 무덤, p21-22, 은행나무
섬의 분교장으로 부임한 나는 섬으로 가는 배의 선실에서 죽은 누나를 닮은 여인을 만난다. 그 여인의 인도로 섬 과부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던 무당이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고 이를 추적하는 와중 또다른 행방불명자 전 분교장 선생 양씨와 학생인 철수의 아버지, 문둥병에 걸린 듯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이엉꾼과 그가 키우는 개에게까지 얽히게 된다. 나는 도움을 얻기 위해 파출소장과 이장을 찾지만 외지인으로 섬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파출소장의 잦은 음주와 건실하지 못한 작태는 믿음을 주지 않고 마을의 존경받는 이장 또한 무언가 숨기는 듯 행동이 꺼림칙하다. 친절한 듯 속내를 알 수 없기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송기사도 마찬가지. 와중에도 그의 비문증 증세는 점점 심해져 눈과 시력은 안개가 끼인 듯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환상처럼 나타난 태국여자에게서 비치는 누나의 모습으로 인한 몽상과 혼동, 마을의 숨겨진 진실, 섬사람들의 욕망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져가는 중 나에게로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져만 간다.
살인과 실종의 장면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보면 미스터리 같기도 한 이 소설은 몽환적인 제목과는 달리 통송적인 줄거리와 구성으로 자칫 재미없는 소설로 마무리가 될 뻔도 했다. 뭍으로부터의 자금줄이 떨어지면 언제 무인도가 될지 모르는 낙도나 오래동안 씨족사회를 구성하고 살았던 집성촌, 동성동본끼리의 통정으로 인한 유전병에 대한 두려움, 관광객을 제외한 외지인에 대한 배척, 섬사람들의 존경의 대상 행대감과 그런 행대감이 벌인 한센인 몰살, 풍요롭던 역사 멸치파시와 유명 관광지로 돋움하여 잘 살고자 하는 섬사람들의 발버둥, 그러나 숨기려고 할 수록 비집고 나오는 문제들과 그 결과 발생하는 실종사건들에서 떠오르는 줄거리와 이미지는 영화 이끼나 김복남 살인 사건 등 여러 다양한 매체에서 소개되었던 격리된 사회의 문제점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는 탓에 통속적인 면모가 두드러졌다. 또한 화자인 나의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자 단순 욕정인지 근친애인지 구분 할 수 없는 속에서 몸을 섞고 또 섞기를 바라는 대상 태국여자(화자부터도 그녀를 태국여자 그 이상의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없다. 당신은 누굽니까?(p153)라는 잠시간의 물음도 그녀와 벌이는 육욕의 환상에 잊혀진다)와 무당과 붙어먹는 과부들, 그녀 또는 그녀들에 대한 화냥년과 갈보 라는 표현 등 이야기의 저 아랫바닥에서 오로지 성적인 면모로만 비추어지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내게는 썩 유쾌하게 다가오질 않았다. 하지만 나인 화자가 비문증으로 보고 겪는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야기들과 그에 대한 묘사만큼은 감칠맛이 있어 여러번 반복해 읽을만 했고 이야기의 호오와 별개로 지루함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의 장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초분이라고 하는 기묘한 무덤양식으로 인한 환상과 이야기의 끝에 다다라 등장한 거대한 쥐떼로 인해 내 손으로 넘어온 결말에 대한 자유 또한 마음에 들었다. 풍도 사람들의 기대와는 별개로 나는 그들의 끝이 머지 않았다고 상상하련다. 깃발나무 숲이 펄럭이며 돗대가 서고 바람 속으로 나아가는 섬 풍도호는 사람의 욕심처럼 자란 쥐떼들과 함께 어디쯤에선가 틀림없이 좌조되고 말 거라고. 그리고 그 위로 죽지 않은 올빼미 한 마리가 어둠 속에 큰 눈을 뜨고 창공을 훨훨 날으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쩐지 통쾌해져서 책에 대한 평가도 조금은 후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