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세상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가장 기대가 적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저절로 찾아온다."
                                              
       ㅡ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p350, 칠십네 번째 이야기 중




뉴욕의 워런 가 58번지에는 전설적인 편집자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미스터리 서점이 있다. 괴짜인 그는 미국의 유명 추리 소설 작가들에게 한 가지 요청을 넣는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을 써달라. 우리 미스터리 서점을 배경으로 하거나 어쨌든 한 장면에라도 우리 서점을 넣어서 이야기를 써줬으면 좋겠다. 대신에 인쇄는 없다!" 대형 서점들 사이에 햄버거처럼 끼여서 경영난에 허덕허덕 거기다 이제는 전자책과의 전쟁까지 치루어야 하는데 인쇄는 무슨. 무보수로 삥 뜯긴 호구 작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그렇게 소책자로 만들어져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미스터리 서점에서 팔리는 책의 부록으로 딸려 나간다. 그런 세월이 어언 17년, 어느 새 소책자의 인기가 괄목하여 본책을 넘어서기에 이르고 이로써 긴 긴 세월 미스터리 서점 고객들의 독점 소유였던 단편들이 정발되어 한국의 독자들과도 만나게 되었다. 제목은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나는 이제껏 배우 윤여정씨의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한다"는 어록에 매우 공감하는 바였지만 우정과 친애의 잉여로운 갈취 속에서도 이렇게 빛나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나보다. 현실에 실존하는 장소 뉴욕의 미스터리 서점을 무대로 여전히 살아 있는 실존 인물 서점 주인 오토가 주조연으로 활약하는 17개의 미스터리와의 만남은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절정을 이루며 내게 큰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1. 금광 발견, 로또 터지는 대박 흐뭇한 미스터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데 소설 주인공이 로또에 당첨되면 독자는 배가 부르다? 
희귀 서적을 모으는 편집자 오토이기에 유명 작가의 친필 미출간본이나 초판본에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이런 희귀본은 당연히 돈이 된다. 달러 냄새 풀풀 풍기는 돈 되는 책 이야기.

급료 대신 추천서와 스티븐 킹의 신간 스릴러를 받기로 한 빨강머리 소녀의 품에 날아든 20만 달러의 희귀본 데인 가의 저주와 한정판 콜렉션을 유산으로 받게 된 오토의 쩐내나는 이야기 <후회하게 될 거예요>, 로마 시대 청동 주화를 훔쳤으나 어쩌다 보니 오토와 친구들의 도박판에 끼여든 양상군자 도트문더의 <아낌없이 주리라>, 재능없는 작가에게 찾아온 50만 달러 짜리 계약의 기회. 그런데 이 금광의 원작자는 누구? 반전의 미학 <모작 살인 사건>, 홈즈의 미출간본이 나타났다. 대박이냐 쪽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긴 겨울의 한잠>. 평생 법이라곤 모르고 살았던 우리 할머니가 유명 작가의 친필 원고를 훔쳤다고요? 근데 그 원고 내가 대문 앞에 내다 버렸는데요? 쓰레기 차 파쇄기 속 사라질 운명에 처한 원고를 향해 달려가는 렉시와 오토 그리고 서점가 사람들의 이야기 <이름이 뭐길래> 

되는 놈은 헌책방 지나가다 책 한 권을 사와도 헤밍웨이 사인본이 떡 하니 나타나는 요지경한 세상 속 어디 눈 먼 책 좀 없나? 어쩐지 헌책방을 뒤져보고 싶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2. 그까짓 사랑, 그래도 사랑 로맨스 미스터리!

크리스마스 이브 밤이다. 멀쩡한 커플들은 책 읽을 시간 따윈 없다. 오늘내일 전국의 모텔들 예약까지 꽉 찼을거다 (예전엔 이런 걸로 기사도 났었다. 지금이라고 다를쏘냐.) 나 같은 솔로나 되니까 방콕해서 이런 미스터리 집도 붙들어 읽고 그런거지. 미스터리 서점의 주고객은 틀림없이 솔로였을거야. 암. 그런데 이게 뭐야? 때리고 부수고 토막 내고 피 흘리고 유혈낭자, 폭력난무, 화끈하게 스트레스 좀 박살내려 했더니 그까짓 사랑, 그래도 사랑, 결국 또 사랑이냐!!! 오토 펜즐러 솔로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알콩달콩, 배 아파 쓰러지는 로맨스 미스터리.

오렌지 색깔의 숏컷 헤어, 삐삐 롱스타킹을 신고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란 녹색 눈을 깜빡깜빡 뜨고 있는 미스터리 서점의 손님 매들린 앞에 닥친 위기. 요정은 가슴이 크면 안된다는 금지 조항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장 산타 요정으로 손색이 없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판매원 로저가 달려 간다. 만난지 20분 밖에 안됐지만 당신을 위해 목숨도 걸겠어요. 순정 미스터리 <콜드 리딩>. 내가 지난 밤에 한 일을 알고 싶다. 오토가 반한 연회업체 사장 진, 사라진 희귀본과 6인의 용의자. 오토의 뜨거웠던 밤과 반전의 삼각관계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 너도 도둑, 나도 도둑, 내 마음을 훔친 도둑들. 편집자 오토의 뚜쟁이 변신 <동박 박사의 간계>. '인간은 시시각각 죽고 벌레들이 그들을 먹어치운다. 그러나 사랑 때문은 아니다(p243)' 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하지만 어쨌든 크리스마스 아침 내 침대 위엔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양이 요정 스피릿>    

책을 읽는데 자꾸만 손이 시리다. 마음도 시리지만 이브 밤이 정말 춥다. 훌쩍훌쩍. JGJP 오빠의 마음이 식은 것 같아 강제로 2에서 4까지 온도를 올려 본다. 까짓 닝겐들, JGJP 오빠 품이 최고야!   

 

 

3. 스크루지 영감의 세 가지 악몽 같은 환상적인 미스터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듬뿍 느낄 수 있는 환상 특급 같은 이야기들. 목이 부러지고 칼에 찔리고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는 미스터리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는 숨길 수가 없다. 용서와 화해, 용기와 희망, 우정과 우애, 생의 깨달음.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빌게 되는  본격 코지 미스터리.


죽은 친우의 작품을 좇는 범죄자들을 피하기 위한 노인의 지혜 <계획과 변주>. "꼬마야, 기억해. 우리 모두는 머지않아 산타가 죽는 것을 경험한단다. 그래서 난 그걸 오래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어(p186)."  살해 당한 유년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 셜록 홈즈 책갈피에 묻은 피의 흔적 <녹슨 책갈피 도난 사건>. 자신의 죽음을 코 앞에 두고도 친구의 인생에 미스터리를 선물하고자 하는 중년의 우정 <요정들의 선물>. 알 수 없는 인연과 결말 속 폭소와 연민 <내 목표는 신성하니>, <크리스천 킬러>.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의 당신에게 동포애를 느낀다 <칠십네 번째 이야기>. 무엇을 읽느냐 보다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고통의 그림자 속에서 사는 모든 사람, 도시, 그리고 우주... 나, 너, 우리 보라고 쓴 이야기 같았던 베로니카의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 마지막으로 낭만과 배신의 향연, 미스터리 역자다운 <옮긴이 후기>까지. 대박, 진짜 최고인데!


크리스마스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나홀로 집에와 맥컬리 컬킨, 러브 액츄얼리와 머라이어 캐리,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스크루지의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솔로들의 밤을 책임지는 치킨과 맥주. 내년 크리스마스에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여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뉴욕 58번지 미스터리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금 이 순간에도 시끌벅적 왁자하게 파티를 열고 있을 것 같은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작가들의 환상적인 밤, 그리고 추리를 말이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p244) 라곤 하지만 연인과 친구와 함께 하지 못하는 특별한 밤 꼭 필요한 특별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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