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5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5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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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나는 한국사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중고등 시절 국사 상, 하를 마지막으로 한국 역사 인문서를 끝 페이지까지 읽어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부족함에 대한 자각은 있어서 시도는 해보는데 책을 드는 게 쉽지가 않았다. 무한도전에서 설민석 강사의 얘기를 들으며 양세형씨가 했던 필기가 어찌나 공감되던지. "나는 진짜 공부쪽으로는ㅠㅠ...졸리당, 힘내자, 배우자!" 무한공감, 무한인정!! 무한도전을 보고 또 여기저기 서점에서 2016년 최고의 책으로 설민석님의 "조선왕조실록"이 손꼽히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역사인문서적도 한번 봐보자 했지만 선뜻 손 가는 책이 없더라.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려니 나 같은 국사 인문 고자가 504의 장대한 페이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 또 읽다 덮어 버리면 어쩌나 겁도 났다. 그런 와중에 발견한 책이 바로 역사e. EBS역사채널을 서적화 한 편집본이었다. 역사채널이라면 스치듯 티비로 본 적도 있고 요약본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캡쳐 자료도 본 기억이 있었다. 짧고 간결하고 무엇보다 눈으로 쉽게 다가오는 자료와 해석. 이 책이다 싶었다.

"나는 (...) 경성의 여덟  성문 되는 우리 팔형제 중에 둘째 되는 돈의문이올시다. (...) 몇 백 년 내려오면서 나는 많이 먹어도 항상 간난아이 다려 새아기 새아기 하는 셈으로 새문 새문 하더니 지금은 이 새문이 아주 경성의 여러분과 인연이 지나서 오는 6일에는 경매가 되어간다 합니다. (...) 우리 끝에 동생 서소문은 지난 섣달에 헐려갔고 우리 맏형 동대문과 셋째 아우 남대문은 좌우편  성이 뭉그러져 몇 해 이래로 우리 형제와 연신이 전혀 끝겼는데 지금에 이 몸조차 항해를 잃게 되니 이전을 돌아보고 지금을 생각하매 감구지회를 어찌 금하오리까."

     ㅡ  역사e5, p63, 북하우스, <1915.03.04. 매일신보. 나는  서대문이올시다>


총 3부의 21가지 챕터 속에는 신기하고 재미난 동시에 미안하고 가슴 아픈 역사가 고루 담겨 있었는데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하신 우장춘 박사의 고국에 대한 헌신을 감성적으로 해석하며 눈물 빼기 보다는 객관적으로 살펴봐 주는 태도가 특히나 좋아 기억에 남는다. 여타의 소설들과 달리 확실히 객과적이었고, 한발짝 떨어져 역사를 바라 보고 견지하는 태도가 보였달지. 우리 역사, 우리 사람에 대한 무한 찬양이 아니라 사실의 전달에 힘쓰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참, 책에 나오듯 나도 씨없는 수박을 우장춘 박사의 공적으로 배운 세대라 그 사실에 한치 의심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씨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의 것이 아니라 일본 박사의 연구 실적이었다고 한다. 농민들이 우장춘 박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그가 주는 씨앗 등을 잘 사용하지 않으려 하자 농민들의 관심을 끌고 화제를 만들기 위해 씨없는 수박을 이용하셨다고. 지금의 귤과 배추, 무 등이 모두 우장춘 박사의 실적이며 그 전까진 이렇게 아삭하고 달고 맛있는 품종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새삼 재미있게 느껴졌다. 물론 그의 부친이 명성황후 시해의 가담자라는 것은 경악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부친이 매국노인 줄은 알았어도 단순 친일 부역자인 줄로 알았지 명성황후와의 연계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서 조금 떫떠름하긴 했지만 연좌제로 이어 붙일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털어버렸다. 부친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고 해방 후 한국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신 분이니 그저 감사하기도 했고 말이다. 1920년대 삐삐의 나라 스웨덴에서 유학하고도 조선땅으로 돌아온 뒤 가판에서 콩나물 같은 채소를 팔다 돌아가신 최영숙 박사님 이야기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매일의 일기를 쓰신 정조 임금님, 몇 번이나 위치를 바꿔가며 새로 지어지다 결국엔 허물어져 지금 우리 돈으로 오백 만원 정도에 낙찰되어 팔린 돈의문 등 처음 들어 본 이름과 처음 들어본 이야기도 참 많았다. 정조 임금님 머무시는 궁궐 가까이 세워져 그 문소리의 소란스러움을 극복하는 과제까지 떠안아야 했던 임금님의 고충을 토로하는 이야기나 돈의문을 의인화한 신문기사처럼 유머와 해학이 곁들여지는 이야기들은 역사 인문서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즐겁게 페이지를 넘길 만한 매력으로 충분함이 넘쳤다. 화제의 드라마 "도깨비"로 새삼 관심사가 되고 있는 조선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도 경각심을 주었는데 시뻘건 얼굴에 뿔, 아랫도리 너덜너덜 걸레짝 같은 천만 두른 도깨비는 우리나라 도깨비가 아니라 왜의 도깨비라고 한다. 왜의 색이 일제시대를 거쳐 너무나 짙게 우리 문화로 침투해 정작 우리 도깨비 본연의 모습은 잊혀지고 말았다고. 점잖은 우리 도깨비는 홑고의에 잠뱅이도 걸치고 머리에는 패랭이까지 쓰고 다니며 뿔도 없고 낯색도 사람과 다를 바 없어 어찌 보면 사람 같고 어찌 보면 귀신 같지만 사람을 좋아하여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 다정한 요정들이었다. 악한의 매력이 있는 왜의 도깨비에 비교해 이야기로 만들기엔 매력이 덜할지 몰라도 우리 도깨비가 왜의 도깨비에 잡아 먹힌 지금의 상황은 좀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주시경 선생님 혼자 펴낸 줄 알았던 우리 말 큰사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 선생님과 학자들이 참여하여 고초를 겪었는지도 알게 되었고 얼마나 많은 조선술이 사장되었는지 또 주막과 같은 좋은 전통문화가 있었는지를 재미있고 쉽고 간결하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분명 우리의 역사일진데 돈의문이 말하는 것처럼 매번 새것처럼 느껴지는 낯선 역사들에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찌나 죄송스럽던지 조금 반성하는 기분도 들었고 말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항해의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 역사가 헐려가고 뭉그러지고 연신이 끊겨 잊혀지지 않도록 이 감구지회가 그저 단발이 되지 않도록 한국사에도 지속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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