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메로네 - 테일 오브 테일스
잠바티스타 바실레 지음, 정진영 옮김 / 책세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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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대담한 입담꾼들이 '둥근 들판' 왕궁으로 모여들었다. 임신한 왕자비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왕자 타데오가 이야기꾼들을 소집하여 연회를 연 까닭이다. 지난 날 요정의 저주로 무덤에 묻혔던 왕자 타데오가 왕자의 저주를 푼 노예 왕자비와 함께 이야기꾼들을 독려하는 가운데 그들 이야기꾼 사이로 '울창한 계곡'의 공주 초차가 숨어든다. 노래하는 난장이와 황금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 금실을 잣는 인형으로 왕자비를 유혹하여 이 이야기의 장을 꾸린 장본인인 초차와 유부남의 신분에도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 타데오 왕자, 뱃속의 왕손을 때려 죽이겠다 왕자를 협박하면서도 탐욕스럽게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노예 왕자비. 세 명의 욕망이 꿈틀꿈틀 술렁이는 와중에 아라비안나이트의 밤이 열리듯 초차를 포함한 열 명의 이야기꾼들은 쉰 가지의 이야기로 닷새의 신비로운 날들을 채워나간다.

 

동화라기엔 지나치게 탐미적이고 야설이라기엔 순수하게 환상적인 17세기의 신비로운 이야기집 펜타메로네를 만났다. "요술과 마술, 요정과 용, 괴물 오그르와 오그레스, 노파와 마녀, 공주와 왕자, 미녀와 야수, 추남과 추녀, 금은보화와 약탈, 사랑과 배덕, 강간과 근친상간"의 고전적 욕망을 만날 수 있는 잔혹동화가 이 책 펜타메로네가 처음은 아니지만 중세를 배경으로 한 기괴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특히나 이번에 출간된 펜타메로네는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라푼젤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헨젤과 그레텔, 당나귀 가죽, 장화 신은 고양이와 미르테 나무의 요정 등 샤를 페로와 그림형제, 안데르센의 동화로 만났던 익숙한 이야기들을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보여주다보니 흥미가 배는 높았던 것 같다. 빨간망토로 차림한 매혹적인 표지와 잔인하고, 문란하고, 퇴폐적이고, 사악하고, 어두운 동시에 아주 근사한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어찌나 반갑고 흥미진진하던지. 아무래도 가장 날 것의 이야기, 가장 가지치기가 덜 된 형태의 이야기이다 보니 오늘 날의 막장 드라마는 막장 축에도 못끼겠다 싶은 이야기들이 책 속 도처에 깔려있는데 순수한 동화만을 보아왔던 사람이라면 깜짝 놀라 책을 덮게 될지도 모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와는 전혀 반대로 근래 읽은 동화 완역본들 중에서 가장 수월하게 읽고 끝 페이지까지 마무리 할 수 있었는데 동화라는 장르와 옛스러운 비유 자체가 취향이기도 했지만 번역 자체가 워낙에 매끄러웠던 탓이다. (앞으로 정진영 역자분의 책은 무조건 믿고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래로부터 막장 이야기 앞에서는 도끼 자루 썩는 줄을 모른다고 한번 잡고 읽다 보면 백 페이지든 이백 페이지든 훌쩍훌쩍 넘어가는 이야기 속 친숙한 동화 주인공들이 반갑다가도 해괴한 과정과 끔찍한 결말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잠든 채로 강간 당해 아이를 가진다고 생각해 보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얘기들, 이를 테면 미모를 위해 면도칼로 자신의 살가죽을 벗기는 노파와의 만남은 지나치게 징그러워 심장이 콩콩 뛰기도 했다. 흔하진 않지만 간간히 튀어나오는 빼어나게 순수하고 재미난 상상들은 할로윈데이 캔디처럼 달콤했고 말이다. 남편감을 아몬드 반죽과 진주알, 사파이어와 루비, 석류와 사향과 향수로 빚어 결혼을 완성하는 핀토 스마우토 이야기가 특히나 재미났는데 내 남자를 내 손으로, 그것도 아몬드 반죽으로 빚어 탄생시킨다는 상상이 낭만적이고 고소하게 느껴졌다. 쿠키 같은 몸통에 석류즙이 피처럼 흐르는 남자라니 이건 뭐 평범한 여성이라도 흡혈 욕구가 생길만한 존재이지 않은가 싶어서 킬킬킬. 노파의 얘기랑 연결시키면 왕이 그랬듯 손가락을 맛보다 그 맛에 미혹되어 하나하나 뜯어 먹고 흘러내리는 석류즙 같은 피까지 핥아먹고 이래야 진짜 잔혹동화인데 참고로 핀토 스마우토는 끝까지 해피엔딩이다. 베르타 아가씨 완전 부러움!! 피그말리온과 유사하지만 훨씬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아무래도 남녀가 뒤바뀐 탓이려니) 이런 소재의 동화가 더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베르타 아가씨 같은 여자 어디 또 없나? 잔혹 동화의 또다른 버전까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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