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때 읽기에는 지나치게 관능적이긴 했지만 그래서 더 또렷히 기억하는 아름다운 소설 가시나무새의 콜린 맥컬로 작가의 새로운 책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바로바로바로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들!! 작년 고인의 타계 소식과 관련한 뉴스에서 얼핏 로마사 시리즈 얘기가 있었던 것 같긴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뭔가. 홍보의 문제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내가 역사쪽 출간 소식에는 별 관심이 없던 탓이 컸던 듯. 올 11월에야 문학동네 카페에서 교유서가의 신작 출간 소식으로 "카이사르의 여자들", 그리고 이 시리즈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접하게 되었고, 이리저리 검색해 살펴 보니 일찍이 해외에서는 가시나무새 보다 이 로마 시리즈로 더 인정을 받으셨다고 한다. 연애소설가가 아니라 역사소설가로 훨씬 유명하시다고. 역사책임에도 가독성과 재미를 담보하고 갈 뿐만 아니라 철저한 고증, 20년에 걸친 집필 등 문학과 역사의 아름다운 만남(교유서가 포스트) 이라는 소개글에 온통 마음이 쏠려 버렸다. 역사책에서 손 놓고 있은지 꽤 되긴 했지만 11월 간만에 역사추리소설 <시체 읽는 남자>를 완독하여 자신감이 좀 생긴걸까. 구매 의욕이 활활 불탔다. 1부부터 예판을 못했다는 게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십이국기 구매할 때도 경험했듯이 뒷 권 발매시엔 또다른 이벤트들이 함께 하니까 아쉬움을 접고 주문 고고! 기념 주화와 펜트레이, 3부 포르투나의 선택과 같이 보관 가능한 세트박스를 주는데 난 기념주화만 선택. 세트박스도 필수인데 알라딘도 인터파크도 세트박스가 따로 옵션에 뜨지를 않는다. 원래는 선택사항인데 오류로 안뜬걸까봐 우선 문의를 넣어두었다. 십이국기 초판 주문에 책갈피가 빠졌던 적이 있으므로 불안, 초조, 들어간 주문도 다시 보자는 주의라. 아니 아직 3부 주문도 안했으면서 뭔 3, 4부 함께 보관하는 세트박스를 탐내냐고 잠깐 생각도 했지만 본디 이런 건 박스부터 받고 그 다음에 책을 채워넣는거라 배웠습니다. 근데 선착순 늦었다고 안주면 어쩌지? 작가의 명성을 믿고 곧장 주문할 걸 괜히 망설인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근데 함정은 난 가제본부터 받아 1권은 이미 읽었다는 거.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역사를 통틀어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지 않을까 싶은 이 위인이 콜린 매컬로를 만났으니 사실 재미없기가 힘든 책이었다. 카이사르의 그 유명한 "브루투스 너마저!"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같은 간지 철철 넘치는 명언부터 시작해 왕은 아니지만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한 독재자였다는 점. 우수한 육체와 두뇌로 군사와 외교, 정치, 행정, 이번 책을 보니 회계와 연설까지 아주 잡다한 영역을 뛰어나게 아울렀다는 점 (물론 회계를 잘 알았다는 것과 자산 증식 능력이 좋다는 건 별개의 얘기인지 돈에 쪼들리는 얘기가 좀 나온다. 딸의 지참금 얘기나 딸애의 약혼자가 로마 제일가는 유산 상속자가 되자 체면불구하고 날 듯이 기뻐하는 점, 유산 소식 듣고 불륜녀에게 바로 연락하려는 점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더라, 못난 놈. 금전 감각 없는 아들의 행동에 가슴 퍽퍽 치는 카이사르의 어머니의 장면도 대박 웃겼다. 카이사르 엄마랑 우리 엄마랑 자식 벌이로 걱정하는 건 똑같은데?) 거기에 그 연극적인 죽음까지 더하면야 매력이 넘친다는 말 정도로 수식하기엔 조금 민망한 감이 있을 정도다.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이기도 했고 (물론 누가 더 유명한가의 우위를 가릴 수 없는 커플이지만), "카이사르의 여자들" 이라는 제목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그의 화려한 여성편력까지! 노래까지 만들어져 로마 시민들 사이에 불리어졌던 그의 마성에 관련한 이야기들과 노골적인 성애를 나는 날 듯이 읽어나갔다. 마음만은;; 내게 온 가제본 인쇄가 살짝 문제가 있다 보니 눈이 아파 울면서 읽느라 진도가 쬐끔 많이 더뎠다. 훌떡 읽어내리고 싶은데 눈이 따라 주지 못해 낮과 밤 동안 주섬주섬 글자를 줏어 읽느라 고생 꽤나 했다. 집중해서 읽으면 눈이 더 시큰해 아주 환장하는 줄! 근데 어차피 출간본 주문했어서 출판사엔 문의를 안 하고 넘겨버림. 출판사가 날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내가 블랙컨슈머도 아닌데 출판사에 메일 넣거나 전화하는 게 왜 이리 겁나는지. 재미있어 다 읽은 보람이 있었다는 게 위안이 되는 가제본이었지만 그래도 새 책 오면 집중해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역사서라도 마냥 복잡하고 머리 아픈 책 보다는 전기장판에 이불 덮고 누워 귤 하나 까먹어가면서 낄낄 대며 읽을 수 있는 소재의 좀 상업적인 느낌의 책을 원했으므로 카이사르는 그런 내 구미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아예 가볍기만 한 책도 아니고 말이다. 1권이 4부 시리즈의 서두를 여는 편이다 보니 그의 알려진 활약들이 등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신으로 그의 불륜녀이자 브루투스의 어머니 세르빌리아와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 카이사르의 어머니 아우렐리아가 등장해 그의 성격과 앞으로의 계획을 알리는 견인처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나 세르빌리아와 그녀 가문의 사람들, 관련한 사건사고들이 더 뚜렷하게 기억에 남은 것 같은데 이부동생들, 남편, 자녀들과의 얘기가 워낙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편의점인간>의 여주 후루쿠라가 사회적 규범과 도덕의 제한이 없는 속에서 자란다면 딱 이렇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라. 감정결여, 정치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성격과 폭력성, 잔인성, 대범함, 측은지심이나 동정이 없는 가차 없는 성격 등이 대단히 흥미로운 느낌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역사 속 성공한 남자 위인들은 거개 이런 성격인데 여성이라 색다르게 느꼈다는 건 그만큼 여성성에 대한 내 편견이 크고 독서량도 상당히 부족하고 뭐 그런 뜻이겠지. 살짝 반성. 어쨌든 우리 식으로 치자면 사돈양반인 남자와 당당하게 불륜을 저지르고도 아주 떳떳하게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을 몰아주기 위해 이부동생을 살해하는 것, 카이사르의 정치적 행각 등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예측하는 점 등이 그 시절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사내로 났다면 다른 식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김 직도 했겠다는 느낌? 아니면 당당히 카이사르의 파트너로서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도 같고. 정치에 대한 여성 참정권이 있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그 한정된 상황 안에서 더 어떤 활약을 펼칠 것인지가 카이사르 이상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여성이었다. 2권 또는 3권 즈음엔 클레오파트라도 등장할 텐데 그녀와 만날 때에도 세르빌리아와 카이사르가 여전히 내연의 관계였을지 또 그들의 자식인 율리아와 브루투스가 이런 사실을 언제쯤 알 게 될지도 궁금했다. 그 사실을 알 게 됐을 때 어머니에 대한 억압된 분노가 서서히 보이고 있는 브루투스가 어떻게 행동할까, 율리아와 브루투스의 관계는? 글로 쓰니 뭔가 막장 치정극 같은 느낌인데, 이런 부분은 약간 가시나무새 설정과 비슷한 듯도 하고, 근데 소설 속에선 크게 끈적이거나 지저분한 느낌 없이 산뜻하다. 뭔놈의 인물들마다 이부 동생들, 재혼상대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카이사르의 대단한 여성 편력이 큰 흠집은 아니었겠구나 싶은 배경이 펼쳐져서 로마의 난잡함이야 후대에도 유명한 이야기였긴 하지만 다시 읽어도 와~ 장난 아니었다. 그리고 팍스로마나로 가는 길목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드러나는 정치적인 상황들도 허투루 읽히는 것 없이 흥미로웠고 말이다. 역사소설이라도 크게 어렵지 않아요. 그냥 재미난다. 이름만 빼면. 이름들이 아무래도 한국 사람인 나한테는 좀 많이 복잡하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부터가 본인 이름 가이우스에 가문명 율리우스에 카이사르라는 씨족명까지 더해져 징그럽게 긴데 브루투스처럼 입양이라도 되면 이름을 외우는 건 그냥 포기하게 된다. 브루투스는 브루투스일 뿐, 젠장 그깟 이름, 그깟 가문명 따위. "무제한의 임페리움, 무제한의 병력, 무제한의 자금"을 주창한 마그누스 폼페이우스와 그의 지지 세력들이 벌이는 해적 소탕 전쟁이라던가 발암을 일으킨다는 표현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무슨 이런 또라이가 다 있나 싶었던 클로디우스를 비롯해 진한 형제애를 느끼게 해주었던 카토와 카이피오, 재치있는 키케로, 여드름 화산을 폭발시키고 있는 유약한 청소년 브루투스와 그가 반한 여덟 살 숙녀 율리아(열 여덟이 아니라 여덟이다. 헷갈리면 안 된다. 당시 브루투스는 열 다섯 살), 등에서 엉덩이까지 여자의 손톱 자국을 내고 들어온 아들의 상처를 포도주로 소독하는 담대한(?) 어머니 아우렐리아 그리고 노예 시논의 알 수 없는 앞날까지. 사실 난 수천마리 애벌레, 바퀴벌레, 귀뚜라미를 잡아 바치다가 이번에는 독뱀인가 하며 기대하고 겅충겅충 뛰던 노예 시논이 참 맘에 들었는데 다음 역할이 있을까 모르겠다. 노예 시논의 해방기가 어쩐지 이대로 끝날 듯해 좀 아쉬움이 들지만 어쩔 수 없지. 이 책은 카이사르의 여자들이 주제니까.
근데 세르빌리아의 아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가 지목한 "브루투스 너마저!"의 주인공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가 믿고 아끼던 후계자였다는 기억은 나는데 그의 사위였다는 사실은 기억의 미로에 풍덩 빠졌는지 아예 흔적조차 없다 보니 잠깐 머리가 깜깜했다. 돈은 많지만 지나치게 유약한 성격에 병도 있고 카이사르가 크게 눈여겨 볼 법한 인물이 아닌데 말이지. 인터넷에 검색해 볼까도 했으나 그럼 다음 편을 읽는 재미가 줄어들 것 같으므로 패스. 1, 2, 3부 없이 4부부터 시작하는 불안감도 읽고 나니 아무 문제가 안 되서 나도 4부, 5부, 6부, 7부 순으로 사고 그 후에 1-3부를 주문할 생각이다. 교유서가의 덕력을 자극할 이벤트를 믿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