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
찬호께이.미스터 펫 지음, 강초아 옮김 / 알마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연이어 읽은 두 책에 공통된 소재가 등장할 때의 반가움이란!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에서 만난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역학이 또다시 등장하는 책을 만났다. <S.T.E.P. 스텝> 홍콩 작가 찬호께이와 대만 작가 미스터 펫이 교차 집필한 합동소설이 그 주인공이다. 공교롭게도 홍콩도 대만도 아닌 미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2030년대 미국 사법제도에 도입된 사보타주 라는 범죄자 형량평가제도와 관련한 근미래 소설이었다. 근데 이거이거 첫 도입부터가 흥미진진, 이야기가 무척 예사롭지가 않다.

"고마워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그런 과학기술보다... 나 자신을 더 믿거든요."

                                      ㅡS.T.E.P , 료코와 재회한 메이구의 말, p10, 알마

범죄를 예견한다는 소재가 일견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세계관과 유사하다. 하지만 "프리크라임"이 모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예상해 미리 그 대상을 잡아 들여 징벌한다면 사보타주는 수감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재범률을 최소 1만 7000가지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진단하며 형량과 석방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범죄자의 성격, 나이, 성별, 성장환경과 범행수법, 수감 당시의 행동, 기타등등의 정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컴퓨터가 판별하므로 오차 수치도 적고 실제 오류 또한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돼 시스템을 도입했던 오클라호마 주의 범죄율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이 성공적인 수치에 매료된 일본에서도 사보타주를 근간으로 한 사보텐을 만들어내는데 이 완벽한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오류가 발생하게 된 것. 범죄를 일으킬 소지가 없다는 판단 하에 석방한 곤도 미쓰루가 마약을 유통하다 발각되었고 체포 과정 중 시체로 발견돼 관련 기관들이 발칵 뒤집혀졌다. 일본 사법제도의 근간이 흔들린 만한 일이었으므로 정보관리국은 사보텐의 이 치명적인 오류가 내부 인사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 판단하여 보호국 공무원 료코에게 조사를 명명한다. 사건이 외부로 흘러가기 전에 비밀리에 범인을 추적하고 오류를 은폐하라는 것이 요지! 료코는 이 은밀한 수사를 위해 아무리 복잡한 사건이라도 5일이면 해결한다는 천재 사립 탐정 메이구를 찾아가게 되고 정보국 산하 비리를 캐려던 수사는 뜻밖의 국면을 맞이해 혼돈으로 치닫게 되는데......

"전 인공지능을 무척 좋아해요.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류를 관리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시스템에서 오류나 허점을 찾아내는 일만 할 거에요.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그냥 실리콘밸리의 작은 회사나 경영하며 살래요."

                            ㅡ S.T.E.P, p242, 컴퓨터 천재 프랭크가 미 법무부에게, 알마

미국정부가 자국민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한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홍콩으로 망명한 비밀정보요원 스노우든 그리고 반정부-반사보텐단체 인과공진회, 쓰레기 같은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로써 인간 의식의 조작을 목표로 한 실험 프로젝트 HIMICO, 사보타주를 필두로 한 미래예견과 누군가의 지켜져야 할 생존의 권리, 프로그램 사보타주를 공격하는 F.M.G 모듈과 그에 대적하는 에스코트(호위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역학, 1만 7천개 샌드박스 속 가상세계와 차원이동 속 총격과 살인사건들, 이 모든 소재들이 결합된 이야기들을 간략하고도 흥미진진하게 요약할 길이 없으므로 생략! 중요한 건 일견 복잡하게 느껴지는 세계관과 컴퓨터 용어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받은 당일 짬짬이 130 페이지를 읽고 남은 페이지도 어제오늘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완독을 했다. 찬호께이가 써내려가는 미국 배경의 근미래공상과학소설과 미스터 펫이 뽑아낸 일본 배경의 미스터리 판타지 시나리오의 합일이 이렇게나 재미날 줄이야.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새롭게 생겨나는 샌드박스 속 세상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일까 아닐까. 시간의 벽을 타고 천재 컴퓨터 공학자 프랭크와 정직하고 보수적인 관료 키팅, 미스터리에 휩싸인 탐정 메이구와 외롭지만 의로운 여자 료코, 그리고 악독한 살인마 메슈 프레드가 선보이는 교차 속의 비밀은 책을 읽는 어느 시점에서 발견하게 될까. 당신이 아주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라면 찬호께이와 미스터 펫이 숨겨놓은 이 시나리오의 진실을 책의 말미에 가서나 확신하게 될 것이다. 나처럼. 

* 사보텐 : 선인장, 사보타주를 열 번째로 도입한 국가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인데 이를 메이구에게 설명하며 료코가 굉장히 민망해한다. 한껏 고민하다 막판에 마구잡이로 결정한 이름같다나. 기억하기도 좋고 발음하기도 좋아서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어쨌든 내가 받은 표지 속 그림은 선인장의 확대 그림이었다. 아래 다른 표지는 1만 7천개의 샌드박스를 형상화한게 아닌가 싶지만 정답은 알 수 없어 상상하기 나름인 듯. S.T.E.P은 특이하게도 표지가 두 가지이므로 인터넷 주문시 랜덤 발송이 된다. 더 마음에 드는 표지가 있다면 근처 서점에서 직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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