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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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온건한 사이코패스의 이야기.
내가 편의점 인간을 읽고 받은 첫인상이었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황급히 달래면서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애쓴다.
탁자 위에 케이크를 반으로 자를 때 쓴 작은 칼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울음을 그치게만 하는 거라면 아주 간단한데,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동생은 필사적으로 아기를 부둥켜안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케이크 크림이 묻은 입술을 훔쳤다."
                                                                                                            

 편의점 인간, p71, 살림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즉 사이코패스인 여성이다.  시끄러운 싸움을 멈추게 하기 위해 친구의 머리를 삽으로 후려치거나 흥분한 선생님을 진정시킨다는 이유로 스커트와 팬티를 끌어내리는 장면, 타자의 감정에 동조하지 못하는 모습에서야 조금 평범치 못한 아이 내지는 아스퍼거 증후군인가 생각했던 정도였다면 71 페이지의 이 장면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다.  사이코패스. 그녀가 갓난쟁이를 두고 드러내는 무의식적인 폭력성에 소름이 끼쳐 순간 책을 덮었다가 곧장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면서 생각지 못한 반전에 으스스함을 느꼈다. 처음 책을 펼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 책 <편의점 인간>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일반 루저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던 탓이었다. 심야식당 같이 24시간 편의점을 들고 나는 손님들의 따뜻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했으므로 주인공 후루쿠라의 이러한 성향은 대단히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 것을 잊지만 않았어도 착각하지 않았을텐데, 제목이 참으로 평범해서 책도 평범할 줄로만 알았다. 오판이었다.

후루쿠라 게이코는 사이코패스이지만 악인(惡人)은 아니다. 순간 순간 소름이 돋는 이상 생각을 드러내긴 해도 살인 같은 극단적인 범죄 성향을 표출하진 않는다. 온건한 가정과 체계화 된 교육의 일환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녀가 다른 모든 일들 앞에서 흔히 생각했듯이 그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었다. 어찌됐든 그녀는 마치 영혼의 일부가 사라진 듯 어떤 류의 감정들이 날 때부터 잘려져 있었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고쳐야 한다"는 계속된 주지와 일종의 눈치로 스스로에게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녀가 고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그 결핍에 대해, 그러나 어떤 메꿀 방법을 찾은 것은 그녀의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다른 세계에 잘못 들어와버린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 채(P20) 발견한 편의점 속 세계는 그녀가 여지껏 앵무새 흉내를 내듯 따라했던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을 타자에게 들키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컨베이너 벨트 같은 곳이었다.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자신 앞으로 돌아 오는 나사를 조이는 것 뿐인 "모던 타임즈" 속 공장과 마찬가지로 그 안에 인간성이나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감정은 없다. 거대한 세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연기해내는 것은 힘들지만 편의점이라는 작은 어항 속에서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으므로 그곳은 일종의 안전공간, 패닉 룸이 되는 것이다. 편의점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바코드를 찍고, 매대를 정리하고, 행사 상품을 내걸고, 하다 못해 손님을 접대하는 모든 인사와 응대의 말까지도 지극히 메뉴얼화 되어 있어 그녀 같은 결핍 인간도 순식간에 점원이라는 인간으로 부품화가 가능하다. 함께 하는 직원들, 점장이나 기타 알바생들도 시간 시간 들고 나며 그녀가 18년을 한 매장에서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바뀌어 그녀의 비인간적 모습을 들킬 염려가 없었고, 그들이 바뀔 때마다 후루쿠라는 그들의 행동을 복사하여 평범한 인간 흉내를 내며 살아올 수 있었다. 찰리 채플린과 같은 류의 사람은 기계화, 부속화 되는 노동자의 삶을 비판하고 개탄하지만 후루쿠라 게이코 같은 사람에게는 오로지 그런 기계화 된 사회에서만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재미있는 한편 슬프고 무서운 동시에 좀 가여웠다. 인간과는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그 자신과 유사한 동족적 동질감, 생물에의 가치를 느낀다는 것이 의아하기도 했고 말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인 탓인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배타된 타자로서의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치 어항 앞에서 눈 한 번 깜짝이지 말고 후루쿠라 게이코라는 물고기의 생태를 보고 있으라 명령받은 관람객 같은 기분이랄까. 동시에 무기물인 편의점을 유기체로 간주하여 자신의 손과 발, 고막으로 들어오는 소리와 숨, 몸을 구성하는 수분까지도 그에 맞춰 분화 내지 동화시켜가는 후루쿠라라는 처음 보는 배아세포를 발견한 생물학자가 된 기분이기도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류의 세포분열을 목격한 학자가 느낄 법한 혼란스러움이 내 마음 곳곳에서 일어났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후루쿠라라는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면밀히 알 게 되는 것이 썩 유쾌하진 않은데 도저히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나는 후루쿠라의 이상 생각에 동요하는 여동생에게만 한 순간 감정이입이 되었을 뿐, 지극히 관조적인 입장에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고, 그녀의 생각에 소름끼쳐 하면서도 책장은 순식간에 넘어가 두어시간 남짓만에 끝 페이지를 밟아버렸다. 그 흔한 작가의 말이나 옮긴이의 말도 없이 간결한 이 소설은 대단히 희귀하고 평범치 못하여 이백도 못 채우는 페이지의 짦음이 아쉬운 동시에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재미있고도 기묘한 소설이다. 그렇게밖엔 표현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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