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소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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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나는 강렬한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넘쳐흐르는 육체적 직관. 언젠가는 내가 죽게 될 거라는, 크롬으로 된 이 전축 가장자리에 내 손이 더 이상 올려지지 않을 거라는, 내 눈 속에 이 햇빛을 더는 담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_p11

"사는 것, 사실 그것은 가능한 만족스럽기 위해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쉽지 않다."_p19

"절반의 연극 속에서 사는 모든 사람처럼, 나도 나에 의해 쓰인 연극만을 나 혼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p39

"난 이게 멋지다고 생각되는 걸요. 이런 가느다란 선들로 이루어진 두 개의 근육을 갖기 위해 그 모든 밤, 그 모든 고장, 그 모든 얼굴이 필요했잖아요. 당신은 이것들을 쟁취한 거에요. 그것 때문에 활력 있어 보이고요.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나는 이것들이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하고, 사람의 마음을 끈다고 생각해요. 주름 없는 매끈한 얼굴은 무서워요." _p67

"말하자면, 우리는 기가 꺾인 채 파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꽤 기분 좋았다. 왜냐하면 우리 두 사람 모두 기가 꺾였고, 권태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상대방에게 매달릴 필요도 생겼던 것이다. 나와 같은 상태인 상대방에게."_p135

"나는 우리가 이 조그만 모험을 잘 치러냈다고, 우리는 정말로 문명화되고 합리적인 성인들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나 자신에 대해 일종의 분노와 함께 끔찍이도 굴욕적인 기분을 느꼈다."_p136


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다. 젊은 여자애가 남자친구의 외삼촌과 사랑에 빠진다. 젊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애라고 말하는 이유는 늙은남자와 늙은남자의 아내가 도미니크를 '내 가여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내 가엾고 착한 아기'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최초에는 열렬한 감정이 아니었으나 가랑비에 옷 젖듯 도미니크는 늙은남자, 슬픈 지식인, 처음 만난 자리에서 조카의 여자친구를 단숨에 유혹하고 마는 뤽을 원하게 된다. 뤽은 말한다. 자신에게는 아내, 프랑수아즈보다 중요한 존재는 없다고. 그러나 너와 연애는 하고 싶다고. 늙은남자의 염치없음을 어떻게 매력으로 느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도미니크는 괴랄하게도 그 순간 그와의 연애를 결심한다.

"내가 프랑수아즈에게 돌아간 후엔 넌 어떤 위험을 무릅쓰게 될까? 나에게 집착하고, 괴로워하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하지만 지루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거야. 너는 더 많이 사랑할 거고, 아무 일도 없는 것보다는 더 행복했다가 더 불행해질 거야."_p82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던 사강. 나를 파괴하기엔 너무 겁이 많고 남을 파괴하기엔 구시대적이고 초보적인 윤리관의 독자에겐 사강을 닮은 것처럼 보이는 도미니크의 『어떤 미소』가 시작부터 끝까지 얼떨떨하게 읽힌다. 특히나 프랑수아즈의 존재가 그렇다. 뤽의 아내는 막장의 파도에 올라타려던 남자와 여자를 잔잔히 이끌어 항구에 정박시킨다. 외투를 사입히고 식사에 초대하고 여행을 함께 하며 도미니크를 딸처럼 예뻐했던 프랑수아즈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도미니크의 머리카락 한 줌 쥐어뜯지 않고 외려 이 어린애를 가여워하고 더는 젊지 않은 육체를 아주 조금 한탄하다가 도미니크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남편과 내가 너를 행복한 표정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며 미안해하고 조금쯤 웃어 보인다. 설령 그 말과 미소가 백프로 진심은 아닐지라도 도미니크와 뤽의 비극적 시그널은 그 순간 막장의 의의를 잃는다. 다 지나갈, 진정하고 보면 별 것도 아닐, 인생의 작은 고장, 훗날 얼굴의 선 하나로 남게 될 그저 그런 일. 그걸 깨달은 어느 아침 도미니크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난다는 한 편의 성장기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혼자라는 것. 나는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혼자, 혼자라고. 그러나 결국 그게 어떻단 말인가? 나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였다.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_p200

+소담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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