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걷힌 자리엔
홍우림(젤리빈)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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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물에 빠진 아이

두겸은 동네의 우물이 싫다.

귀신 잡아먹는 우물이라며

마을 사람들은 온갖 성치않은 것들,

부정한 것들을 우물에 빠트렸다.

그게 사람일지라도 그랬다.

남편에게 매 맞아 죽은 정이 누님의 꽃신도

말더듬이 섭섭이를 죽인 주인집의 식칼도

몸이 허약했던 하나뿐인 동생과

마을 사람들과 반목하던 두겸 자신도

깊은 우물에 내던져졌다.

귀신들린 것들을 우물에 묻으며

사람들은 죄책감도 함께 묻었을까.

우물 속으로 쾅! 내던져졌으니

사지가 빠그라지고

영혼이 육신을 떠나야 마땅했으나

우물 속에는 그이가 살았다.

치조, 우물에 사는 괴물.

그가 어린 두겸을 살렸다.

"귀신이 정말 있었나..."

"그럼, 있고 말고."

2. 우물에 사는 괴물

'치조, 우물에서 살아주렴.'

비구니가 사정을 하였단다.

'너 하나가 수십수백수천의 목숨을 구할 것이다.'

'나를 용서해다오.'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운 영혼들의 땅.

그 땅을 정화하기 위해 치조는

용이 될 운명을 포기했다.

자발적으로 우물에 몸을 웅크렸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고 나면

자유의 몸이 되리라 생각한 탓이다.

인간을 너무 몰랐다.

원한과 원념으로 가득한

원혼과 물건은 없어지지를 않더라.

치조가 뱀 육신의 거대한 입으로

한도 끝도 없이 집어 삼켜도

매해 새로운 악덕이 태어났고

또 매해 고통받는 영혼들이 생겨났다.

치조는 곡소리 가득한 우물을 떠나고 싶지만

비구니의 강한 주박에 옴싹달싹 못한 채로

오늘도 또 한 영혼을 먹게 생겼다.

치조는 외친다.

누가 내 자유 좀 찾아다오!

어린 영혼의 불행이 어떻게

봉인을 푸는 열쇠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치조는 두겸 덕분에 우물에서 풀려난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은혜를 모르는 영물은 없어서

치조는 죽어가는 두겸의 영혼 자락에

제 조각을 심어 혼을 되살리고

보름의 달이 뜬 우물 위로

치조의 육신을 떠밀어준다.

아이가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잘 살아 있겠지?"

"잘 사고 있는지 궁금한 걸?"

"... 그 아이를 어떻게 찾아낸담?"

3. 우물 밖 세상에서

두겸 ❤ 치조

아이고 우리 뱀신,

치조님을 어쩌면 좋아.

번개를 맞아 온몸이 조각조각난 치조.

육신의 힘이 떨어진 탓인지 뱀의 겉피가 떨어져

글쎄 인간 여자로 바뀌어버렸지 뭔가.

도마뱀, 방울뱀, 구렁이

그 많고 많은 좋은 모양새를 놔두고

지렁이보다 못난 인간이 되어

치조 억울해 죽겠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치조의 조각 중에 인격을 가진 무언가가

원혼들을 이끌어 세상사에 참견하려 한다.

치조가 불현듯 어릴 적 구해준

작은 소년을 떠올린 건

신.의.한.수.

그 쬐끄맣던게 벌써 서른 남짓한 어른이 되어

오월중개소의 중개인이 되어있다.

치조를 만나기 전까진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치조의 조각을 품은 후론 산 것과 죽은 것을

모조리 볼 줄 알게 된 두겸은

도깨비 나라에서도 유명한 귀신 고민 해결사다.

치조는 두겸을 두겸은 치조를 한 눈에 알아본다.

폴인러브까지는 아니었어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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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경성 이야기라길래

빼앗긴 땅이 젤 억울할 줄 알았는데

온갖 불합리한 과거의 흔적들이 튀어나온다.

가난, 신분제, 남녀차별, 폭력, 살인.

사람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던 시절 속 어둑한 자리들.

억울함에 사람 아닌 것이 되어버린 자들의 항변.

두겸과 치조, 오월중개소의 사람들이

경성을 촛불처럼 밝히며 어둠을 물리쳐가는 이야기는

기이한 동시에 사랑스럽고 감동적이다.

드물게 소설이 아닌 웹툰쪽이 원작인 작품인데

돌탑처럼 쌓아올린 이야기의 구조가

다소 어설퍼도 감내가 될 정도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장편소설에 동일 주인공인데도

어딘지 단편 모음집 같은 느낌이 강하달까?

억울한 원혼 하나씩 안고 가는 에피소드는

웹툰에서는 오히려 장점이었을거라 이해는 갔다.

작가님은 웹툰보다 소설 작업을 할 때 더 즐거우셨다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독자는 웹툰의 진행도 넘 궁금해져서

꼭 찾아볼 예정!

부처 머리를 날려버리고

쨍알쨍알 울어대는 담비동자도,

재미삼아 인간의 육신에 들어갔다가

그 육신의 애인에게 반해버린 샘물신도,

여자 따위가 사냥을 했다며 돌팔매질 당한 어정도,

남편 살해범을 죽이고 계곡에 고꾸라져 사망한 고오도

부디 이 다음 생에선 좋은 세상 살으소서.

+ 흐름출판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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