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이아 을유세계문학전집 118
에우리피데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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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

인상적인 명화를 표지로 하고 있다.

쫓기는 듯 뒤를 돌아보는 여인의 어두운 표정.

꽉 쥐고 있는 칼자루에서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철모르고 몸부림 치는 아이가 안타깝고

다급한 와중에도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여인의 두 팔과 헐벗은 상반신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그녀가 두 아이를 데리고 달아날 수 있을까?

.

.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명화 속의 인물이 다름아닌

메데이아이기 때문이다.

메데이아.

남자에게 빠져 아버지를 배신했고

조국에서 달아나기 위해 납치한 동생을

토막내어 바다에 던졌다.

절절했던 사랑이 배신으로 돌아오자

메데이아는 그 손에 다시 한번

피를 묻히기로 한다.

남편 이아손의 피가 아니라

이아손의 아들들의 피를.

그들은 또한 메데이아가

제 배로 낳은 자식들이기도 하다.

코린토스 왕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들에게 더 나은 환경과

더 많은 형제를 제공할 생각이었다는

이아손의 개소리를

메데이아는 거침없이 비웃는다.

이아손의 외도에 침묵할 생각이 없는

메데이아의 독백과 외침, 저주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메데이아의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란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작가가 작품 곳곳에 뿌려놓은

페미니즘적 예언에는

심장을 울렁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이게 정말 기원전 작품이라고?!

여태 악녀를 손가락질 하기 위한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웬걸.

에우리피데스는 편견 없이

메데이아의 분노와 바람을 들려준다.

소리내지 못한 인물들은

인성 파타난 부모 밑에서 태어난 두 아들뿐.

아들들의 복수는 운명이 대신하지만

그들이 과연 부모의 결말에 통쾌해했을까?

"날 사자라고 불러라, 그토록 원한다면."

_어디에 있던 문장인지 체크가 안됨ㅠㅡㅠ

"남자들은, 우리가 가정에서

위험 없는 삶을 산다고 말합니다.

한편 남자들은 창으로 싸운다고 분별없이 떠벌리지요.

난 아이를 한 번 낳느니 전장에서 세 번이라도

방패 들고 맞설 마음 있어요."

_248-251절

"네가 할 수 있는 어느 것도 아끼지 마라,

메데이아여, 계획을 세우고 계략을 짜내라.

사투를 벌여라. 지금부턴 담력의 싸움이다."

_402-403절

"신성한 강의 흐름이 거꾸로 돌아 흘러가고

정의와 만물의 질서가 다시 뒤집히는구나.

남자의 계획이 기만적이니 신들의 이름으로

맺은 멩세는 더는 확고하지 않다네.

세상의 풍문이 바뀌게 되니

여자의 일생이 명성을 얻으리라.

여자의 종족에게 명예가 다가가고 있으니

더는 사악한 평판이 여자 종족을 휘어잡지 못하리라.

_410-420, 코러스 중

[알케스티스]

"포이보스여,

당신은 부자를 위한

법을 만드려는 거요.

가진 자는 늙어서 죽는 것을

사들일 수 있을거네."

_56, 59절, 타나토스의 대사

알케스티스.

페라이의 왕비.

아드메토스의 아내.

처음 알케스티스를 만났을 땐

정신나간 여편네라 생각했다.

자기 살자고 남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남자를 위해 자식까지 두고 자진하다니.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 말하고

본인도 현모양처인냥 꾸미고 있지만

이건 그냥 돌아이가 아닌가.

살다 보니 어쨌거나 부럽다고

내심 감상이 바뀌어버렸다.

목숨 바쳐 사랑한다를

온몸으로 실천한 여인이라서.

상대가 그 값어치를 하느냐는 차치하고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갖지 못할

절절함이라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심경.

여전히 미친 짓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저 죽을 생각은 안하는

아드메토스는 가증스러워도

알케스티스의 죽음을 초월한 사랑

찐광기만큼은 높이 산다.

아드메토스는 열녀비라도 세울 듯이

아내 찬양을 엄청나게 해서 살짝 코웃음 났다.

저 대신 죽어준다는데 그깟 부둥부둥도 안하면

그게 인간이냐 같잖아서 진짜.

찐으로 이 표정으로 읽음;;

알케스티스를 칭송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거?

후대 사람들이 그녀의 지고지순함을

찬양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시아버지 페레스의 말 속에서

에우리피데스의 가장 강렬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뻔뻔하지 않았지만,

네놈은 그녀의 멍청함을 알아챘지."

_728절

"오, 가장 비겁한 놈아,

너는 여자보다도 열등한 놈이야.

네놈, 젊고 잘생긴 남편 대신 그녀가 죽은 거지.

매번 지금의 아내가 너 대신 죽도록 항상

설득한다면, 영리하게도, 네놈은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겠지. 그런데도 그러길 원치 않는 가족을

이렇게 비난하는 거냐? 자신은 겁쟁이인 주제에."

_697-703절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인 타임"이나

신하균의 "더 게임"처럼

죽음과 시간 혹은 육체를 바꾸는

영화나 창작품의 원조기도 하다.

더욱이 그 작품들보다

이 비극이 훠어어얼씬 재미있다.

"나를 대신해 죽지 말거라,

나도 너를 대신해 죽지 않을 테니.

넌 빛을 보는 걸 즐기겠지.

아비는 즐기지 않는다고 여기느냐?"

_690-692절, 페레스의 대사

"하루하루 자네의 인생만 헤아리게.

모든 게 운수에 달려있으니까."

_689-690절, 헤라클레스의 대사

"인간이라면 인간에 속한 것만 생각해야 하네.

엄숙하고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판단해 보니,

인생은 정말로 인생이 아니라 불행이라네."

_797-802절, 헤라클레스의 대사

"인간의 마음이여.

어디로 향해 가는가?"

_936-937절, 테세우스

테세우스의 후처 파이드라.

그녀는 유명한 여자의 딸이며

거듭 유명한 여자의 자매이다.

어머니 파시파에는 황소를 사랑해

장인이 만든 암소의 인형에 몸을 던졌고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자매인 아리아드네는 어떠했는가.

테세우스에게 반한 아리아드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할 방법을 알려준다.

아리아드네의 실은 테세우스의 운명은

태양 아래로 이끌어주었지만

아리아드네의 운명은 낙소스에

홀로 버려지게 만들었다.

언니를 버린 이제는 늙어버린

남자 테세우스의 후처가 된 파이드라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매가 그러하였듯이

사랑해서는 안될 존재

의붓아들 힙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힙폴리토스를 향한

여신 아르테미스의 저주였다.

장차 인간이 받을 고통보다

자신이 당한 수모가 훨씬 뼈아팠던 여신의

현명하지도 적절치도 못한 안배.

어쩌면 그런 것이 운명이고 인생인가 보지.

꼭 여자를 통해 아이를

낳게 할 필요가 있었느냐며

아이가 제 값 주고 사올 수 있는

종자 같은 것이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신을 원망하는 순결한 힙폴리토스는

그냥 너무 애 같아서 할 말이 없다.

"누가 순결할 줄 아는 방법을

저들에게 가르치게 하거나

아니면 내가 항상 저들을

짓밟아 버리는 걸 허락하여라."

이건 과연 누구의 입에서 나와야 할 대사였을까?

딸 같이 키운 파이드라의 짝사랑을

보다 못한 유모가 그 마음을 전하였기로서니

말로 온갖 모욕을 가할 자격이 그에게 있었냔 말이다.

그들이 힙폴리토스를 내다팔거나 겁탈이라도 했기에?

정작 애욕의 신이라며 아프로디테를

무시한 건 힙폴리토스가 아닌가.

딸을 정략의 재물로써 내어주고

딸뻘의 어린 여자를 정략의 증거로써 눕힌 건

미노스 왕과 테세우스가 아니었는가 말이다.

저 두 아비와 저 광오한 아들이 없었다면

하늘 아래 둘은 만날 일조차 없었을지 모르는데.

의심의 증거를 뿌리고 자살한 이는 파이드라이나

최소한의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아들에게 포세이돈의 저주를 뿌린 이 또한

아비 테세우스이건만

누가 누굴 짓밟아야 한다고?

제목은 힙폴리토스지만

극은 어디까지나 파이드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스로마 신화로 이야기를 접했을 때와는 달리

파이드라도 메데이아와 마찬가지로

아주 악녀처럼은 느껴지지가 않았다.

알케스티스도 헌신의 화신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는

이런 점이 함정이라면 함정인데

그 함정 빠져빠져 모두 빠져버려.

매우 매력적이니까.

헤라의 열 두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길을 지나다가 아드메토스의 집에 들린

헤라클레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화관을 머리에 쓰고

흥청망청 술을 마시느라 정신이 없다.

술 마시고 처자식 다 죽이더니

잘하는 짓이라고

누군가는 비꼴 수도 있겠으나

비극인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끔은 내 머리를 꽃밭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꽃 같은 낙관, 웃음 한 송이도 없이

이 험난한 인생과 운명을 어떻게 버텨내겠는가.

헤라클레스가 그랬듯이 우리도 가끔은

술잔을 들고 화환을 쓰자.

죽음이란 항구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 을유문화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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