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양장) 명화로 보는 시리즈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이선종 편역 / 미래타임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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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나이 서른다섯.

그 시절 서른다섯이란 나이가 가졌던 의의를

신곡의 첫문장으로 체감한다.

"인생길 반고비에서 정도를 벗어났다"고 말하는 그는

1300년, 부활절을 사흘 앞둔 금요일 저녁에

어두운 숲을 헤매고 있었다.

두려움에 덜덜 떨다가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선 단테는

표범(정욕), 사자(교만), 늑대(탐욕)에게

위협을 당하며 정신을 잃는다.

단테가 깨어났을 때 그의 앞에는 낯선 남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였다.

하느님의 사자로 단테를 찾아온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지옥과 연옥, 천국의 문 앞까지 인도한다.

제일 첫 방문지는 지옥.

신곡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지옥은 위에서 아래로 점점 좁아지는 9개의 원의 형태로

지하로 내려갈 수록 죄가 더욱 중해진다.

기독교의 사후세계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인만큼

성경 속의 인물이 대거 등장할 것 같지만

성경은 안읽고 그리스 로마 신화만 줄창 읽은 독자의 눈에는

온통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인물과 괴물, 신들만 보인다.

지옥문의 수장을 서는 자도 심판자들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익숙한 인물들이다.

카론, 미노스, 케르베로스, 하데스, 플레기아스, 미노스,

메두사와 알렉토, 티시포네 같은 복수의 여신들, 미노타우로스,

켄타우로스, 케이론, 하르피아, 안타이오스 등등.

암캐와 타락천사, 루시퍼 정도가 신화와는 별개의 존재일까?

교황파인 겔프당의 지도자였던 단테였기에

단테의 지옥에는 황제파인 기벨린당 소속 인물이 유독 많다.

그중 인상 깊은 인물은 9옥에서 먹고 먹히는 죄를

받고 있는 중인 우골리노 백작과 루지에르 대주교다.

기벨린당 소속이면서 겔프당의 피사 정복을 도왔던 백작은

훗날 기벨린당 소속의 루지에리의 포로가 된다.

백작과 세 아들은 감옥에 갇힌 채 굶주리는데

배고픔을 참지 못한 백작이 아들의 시신을 먹는다.

허나 이는 그 혼자의 죄로 볼 수 없음이니

원흉 루지에리 대주교 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고

그들은 서로의 살을 뜯고 먹히며 고통을 받는다.

그밖의 기벨린당 인물들은 별 볼 일 없는 죄로

공감도 가지 않고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

단테는 절친한 친구였던 구이도의 아버지도 무덤의 망령으로 등장시키고 (싸웠나?)

트로이에서 로마의 시조 아이네이아스와 싸운 오디세우스도 불지옥에 빠트린다.

마호메트는 턱부터 항문까지 갈라진 채로 등장하는데

이슬람 국가에서 단테의 신곡은 혹시 금서일까나?

판매량은 어쨌든 바닥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자도 지옥벌을 받는데

읽다 보면 자기 원수나 맘에 안드는 인물은 죄다 지옥에 갖다박은 느낌이다.

사심작렬 양심무엇 ㅋㅋ 하고 최초에는 웃었지만

가만 생각하면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 이름 내걸고 너네 모조리 지옥행이라며

교황 누구누구씨들과 정치가 누구누구씨들도 대놓고 저격한 거니까.

제노바와 고향 피렌체 등 아예 도시 자체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하는데

피렌체 밖에서 망명 중이었다곤 해도 나라면 못했다.

베아트리체를 첫사랑이라는 이유로 천사로 만들거나

자신의 시로 작곡한 찐친과는 연옥에서 재회하는 것만 봐도

보통 사사로운 양반이 아닌데

그런 점이 정감도 가고 재미있게도 느껴진 건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이 완역본이 아니어서인 것 같다.

완역본에서는 모르는 인물로 마구마구 페이지를 채우는

단테 때문에 짜증 대폭발, 옹졸하다 비난하며 몇 번이고 포기각을 세웠기에;;

이점은 편역본의 강점인 게 분명하다.

지상에서도 게을렀던 단테의 친구이자 악기제작자인 모씨는

연옥에서도 허랑방탕하게 까부러져 누워있다.

신곡 안에서도 제일 귀여운 장면이랄까?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는 아가리에 세 영혼을 문 대마왕 루시퍼가 있다.

정적과 기타 민간인(?)들을 사심 가득 등장시켰던 단테도

9지옥에서만큼은 세계인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공인(?)을 대면하게 한다.

예수를 은화 30냥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

카이사를 암살한 브루투스.

브루투스를 도운 카시우스.

반가운 마음 반 의아한 마음 반이다.

유다야 그렇다쳐도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그 정도의 죄인이라고??

참고로 카이사르는 제 1지옥 림보의 정원에서 유유자적 산책 중이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을 탈출할 때 루시퍼의 수북한

겨드랑이 털에 매달려 거꾸로 올라간다는 설정이... 살짝 충격이었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가로지를 정도로 겨털이 그렇게 긴 거야??

민음사판 읽을 때는 털사다리에 대해 읽고도 이해를 못했었나 보다.

북반구엔 땅이 있지만 남반구의 땅은 바닷속으로 파고 들어갔거나

북반구로 달아나 땅이 비어있다고 말하는 중세 세계관도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미래타임즈 출판사의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은

나로써는 두 번째로 만나는 신곡이다.

민음사의 박상진 역자 번역의 완역본이 첫회독이었는데

희곡어투에 대한 이질감이 큰 독자의 경우

역자를 가리지 않고 완역본은 읽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신곡의 원제목이 "Commedia", 희곡 또는 희극인 걸 잊어선 안되겠다.

완역본 신곡을 읽다 보면 나 돌대가리인가 라는 비애에 빠지기도 십상인데

장면이 잘 그려지지도 않을 뿐더러 모르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단테가 살았던 당시의 피렌체의 정세 등도 주석 없이는 파악이 안된다.

편역본에는 당연하지만 이런 함정이 없다.

완역본을 읽으려는 독자를 말리려는 생각은 없지만

편역본의 장점도 분명하기에 아직 신곡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나

완독에 급급해 내용 파악이 힘들었던 독자에게

이선종 편역자의 <명화로 읽는 단테의 신곡>을 추천한다.

주석없이 딱 한 권으로 신곡을 파악할 수 있게끔 압축 정리해 놓은데다

구스타브 도레, 윌리엄 블레이크, 아돌프 부그로 등

유명 화가의 삽화를 300점이나 실어 이해를 돕는다.

삽화 덕분인지 신곡의 내용이 더욱 명료하고 인상 깊게 머릿속에 남아

완역본을 다시 읽을 용기도 생겼다❤

리뷰가 넘나 길어져서 연옥, 천국편 얘기는 생략.

독서에 계절감도 무시 못할 요소인 걸 확실하게 느낀 게

6월 초여름에 읽는 민음사의 신곡은 불지옥이 지독했는데

1월 한겨울에 읽는 미래타임즈의 신곡에서는 얼음지옥이 한층 살벌하다.

불지옥과 얼음지옥 중 더 실감나게 만나고 싶은 곳을 찾아

계절을 따라가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미래타임즈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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