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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
발레리나였던 유안.
모종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기계의족을 통한 성공적인 재활은 유안에게 명성을 안긴다.
장애를 극복하고 다시금 무대에 선 발레리나!
의족을 끼고 도약하는 그의 모습에 박수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유안의 애인은 의족을 대고 움직이느라
짓무르고 피가 나는 허벅지에 키스하며 유안을 찬미한다.
"당신은 아름다워요.
당신은 강인해요.
당신의 움직임이 나에게 영감을 줘요."
(p168)
하지만 유안은 의족을 뽑고 싶다.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잃어버린 다리의 그림자 위로
의족을 잇고 춤추는 건 고통스럽다.
생동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채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정적이고 고정된 세계에 묶여 장애를 극복한다는 의식없이 살면 왜 안 돼?
애인에게 이와 같은 생각을 고백했을 때
맞부딪힌 저항이 유안에겐 충격이다.
"제발 죽지는 마.
살아 있어.
어딘가에 살아 있으란 말이야."
(p172)
한 번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간절하게 고통없는 생을 욕망하는 중인데
다만 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자 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걸 죽음이라고 말한다.
연인과 헤어지고 무대에서 내려온 유안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모든 과정은 생략된 채로 유안은 의족을 차고 여행길에 올랐다.
생화학 무기 공장의 화제로 폐허가 되어버린 램차카의 땅.
강제이주로 고향을 떠났던 이르슐의 주민들이
잃어버린 땅으로 되돌아와 만들었다는 마을.
오래도록 문을 닫아걸었던 그곳이 최초로 공개되는 날에
낯설고 정재되지 않은 비극을 쫓는 6인의 관광객과 함께
유안은 므레모사에 발을 디딘다.
누군가는 므레모사의 귀환자들이 좀비 같은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느리고 기이하고 뒤틀린 귀환자들이 나무처럼 서있는 걸 보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생사를 걸어 벗어나야 할 비극이었던 므네모사의 진실이
한쪽 다리가 없는 유안에게는 괴로움도 고통도 없는
자유의 세계처럼 비춰진다는 사실 하나로 소설 므레모사는 가치있다.
느슨한 개연성, 허술한 설정, 존재감 1도 없는 4명의 관광객들도 잊게 한다.
"당신들처럼 되고 싶어요.
부디 나를 받아주세요."
(p183)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므레모사를 향한
유안의 외침을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했다.
"유안, 잘 안 돼서 답답하지.
그래도 결국은 우리의 회복력을 믿어야 해.
인간이 매 순간 배우고 적응하는 존재라는 걸,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걸 믿어야 해."
(p166)
유안을 향한 정상인(이라 생각하는) 우리의 외침
그리고 응원이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해의 실패로부터 발생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김초엽의 세계가 좋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개념에 혼란을 야기하는 김초엽의 의문과 선택도 좋다.
믿고 읽을 수 있는 부지런한 소설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김초엽 작가의 목표는 응원해도 괜찮은걸까?
기대가 부담이 될까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