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이소다 가즈이치 그림,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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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이 미스터리 장르에서 은퇴를 고하고나면 떠나는 열차를 바라보듯 꽃다발을 선사하고 약간의 눈물을 글썽이고는 다음 날이면 다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p9)

전 아님! 전 아니에요!! 어떤 독자는 본격추리나 밀실과 안녕하고 싶은지 몰라도 저는 밀실 살인 사건이 가진 낭만성을 포기할 수 없어요.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죄자와 이를 파헤치는 탐정이 있는 그곳이 추리계의 엘도라도다 이 말입니다. 가지 마 밀실아!! 제발!!!......걱정마세요 여러분. 제가 손 꼭 붙들고 밀실 도로 데려왔어요 ㅋㅋ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그만큼 신나서 시작하는, 본격 추리 소설 추천 에세이입니다. 초심자부터 마니아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밀실 안내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입니다.

밀실 트릭을 처음 생각해낸 작가는 누구일까요?

저는 제가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에드거 앨런 포!!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단편선을 읽은 터라 당당하게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을 외쳤습니다만 포의 작품 속엔 밀실은 등장해도 트릭=범인의 간계가 없다는 건 간과했지 뭔가요. 당사자의 주장과 기타 정황에 따라 밀실 트릭을 처음으로 쓴 작가는 이스라엘 장윌로 보여진대요. 이스라엘의 작가 장윌이 아니라 이름이 이스라엘 장윌입니다. 노동 지도자 콘스탄트가 하숙집의 자기 방에서 살해 당하는데 손쓸 길 없는 밀실, 범인은 누구인가로 꽤 화제가 됐었나 봐요. 신문 연재 소설이었는데 한 독자가 범인으로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를 지목하는 편지를 씁니다. 삽화 속 인물의 키를 비교해 부인의 키를 2미터 10센티로 추정한 다음 긴 팔을 굴뚝에 넣어 콘스탄트를 살해했다는 겁니다. 작가는 "삽화가가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든 나와는 상관없다"며 이 주장을 일축하는데요. 제가 독자 or 삽화가였으면 무안 or 뻘쭘해서 울었을 거에요.




다양한 이력을 가진 본격 추리 작가님은 뉴규?

인상적인 사건과 밀실 소개!

읽다 보니 작가님들 이력이 정말 다양하더라구요. 직업이 성직자였던 로널드 A.녹스의 『밀실의 수행자』, 마술사였던 클레이턴 로슨의 『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이타닉 침몰 당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우고 본인은 타이타닉호와 함께 가라앉은 잭 푸트렐의 『13호 독방의 문제』, 점쟁이가 소설 쓰면 성공한다고 해서 3주만에 작품 을 완성한 다카기 아키미쓰의 『문신 살인 사건』, 공학부 조교수로 있으면서 2년만에 10부작 시리즈를 완성한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은 F가 된다』, 기모노 위에 가문의 문장을 새기는 문장화가였던 이와사카 쓰마오의 『호보로의 신』, 수학자이면서 교수로 근무하며 본인 소설을 모두 자비 출간한 아마기 하지메의 『다카마가하라의 범죄』, 1982년 16세의 나이로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이후 12년이 지난 1994년에 이르러서야 동인지로 작품을 출간한 카사와 노리코의 『로웰성의 밀실 』이 기억에 남아요. 내용적으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작가님 개인사에 호기심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밀실이라는 구성에서뿐 아니라 인물 관계의 설정 때문에 꼭 읽고 싶은 작품도 있었어요. 카터 딕슨의 『고블린 숲의 집』에는 조카에게 연인을 뺏길까 겁먹는 이모가 등장해요. 어쩌면 고모일 수도 있지만 책 읽을 때 자연스레 이모를 떠올린 것 같아요. 작품 완성 후까지 작가가 밀실 미스터리인 줄 몰랐다고 하는 토머스 플래너건의 『북이탈리아 이야기』는 독재자가 다스리는 가상의 공화국이 배경인데요. 이런 정치성 속에서도 밀실 살인이 충격적인 사건일지가 궁금하더라구요. SF계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미스터리 소설 『벌거벗은 태양』은 (어떻게 봐도 SF 느낌 철철나는 제목 ㅋㅋ) 둠에서 사망한 우주인 사건을 파헤치는 인간 형사와 로봇 조수가 나오는데요. 읽다 보니 우주인=외계인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작품으로 확인해야겠다 싶었어요. 니시무라 교타로 작 『명탐정이 너무 많다』에는 일본을 방문한 퀸과 푸와로와 매그레 경감이 살인범(으로 추측되는) 뤼팽을 뒤쫓는데 넘나 얼토당토 않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라고 해서 제 머릿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닙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욕조에서 사과를 깨물며 아이디어를 구상했다는 팁을 얻은 건 좋았어요.

"본격" 미스터리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작가 고가 사부로의 거미는 소년 탐정 김전일에서 꼭 본 것만 같은데 확인할 수가 없어 머리에 쥐가 나요. "온갖 종류의 거미들이 한 달 가까이 굴주린 탓에 극도로 여위고 탐욕스러운 눈빛을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누가 잘못 건드렸는지 사육함을 빠져나온 거미들이 천장과 연구실 구석구석을 거미줄로 뒤덮었다. 벽이며 바닥이며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꿈실거리는 모습"(p191), 이상하죠. 이 묘사 넘 익숙하단 말입니다. 김전일에서 이런 사건 보신 독자님의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평범한 저택, 고성, 사무실, 엘리베이터뿐 아니라 화장실, 2인승 리프트, 기도실, 배, 섬, 서커스단의 천막, 일본 전통 가옥의 욕실, 서재, 수용소, 연구실, 둠 등 각종의 밀실이 등장하는데요. 이 모든 배경 속에 숨겨진 트릭을 두고 작가는 걸핏하면 얘기합니다. 이 책에서 트릭을 밝힐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요. 약오르지만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이 추천하는 40편의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모조리 찾아읽는 것!! 한국 독자에겐 미번역작이 많다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으니 주의하세요.

추신 : 이소다 가즈이치님의 밀실 그림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대도감이 될 수 없었을 거에요. 40편의 작품을 모두 읽고 밀실을 그린다니 이건 불가능!! 처음에는 의뢰를 거절했었는데요. 본인을 꼭 만나 부탁하고 싶다는 작가의 청에 마지못해 나간 자리에서 대스타 작가에게 코가 꿰여 6개월쯤 시간을 주시면 어떻게 가능할 것도 같다는 의욕을 불태우게 되셨대요. 당연하게도 6개월로는 불가능한 업무였구요. 추가로 6개월을 더 매달려서 겨우겨우 일러스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소다님 덕분에 더욱 완벽한 밀실 대도감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저도 이렇게 그림으로 리뷰를 쓰고 싶다는 욕망에 이글이글 불탔습니다. 2014년 71세의 일기로 영면하셨다니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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