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 - 벽 뒤의 남자
윌 엘즈워스-존스 지음, 이연식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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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가 익명성을 유지해온 솜씨는 흥미롭다.

설령 뱅크시가 스스로 정체를 밝히거나 다른 사실이 폭로되더라도, 

리는 계속 궁금해할 것이다. 궁금한 것은 흥미롭기 때문이다." 

(p31, 에덤 클라크 에스테스)


데이비드 새뮤얼이 말했대요. "그래피티의 세계는 백만 가지 법칙이 있는 무법 활동"(p39)이라고요. 완성품을 판매와 동시에 파괴하는 것도 그런 무법활동 중의 하나인가 봅니다. 제가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를 알게 된 건 그가 자신의 작품에 자행한 파괴 행위 때문이었거든요. 소더비 경매장에서 100만 파운드(한화 15억!)에 낙찰된 <풍선과 소녀>는 낙찰이 선언된 순간 금색 프레임에 설치된 파쇄기에 드르륵 갈려나갔습니다. 뉴스에서 마주한 그 순간의 소란이 아직까지도 생생한데요.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생쇼한 쇼였기 때문일 거에요. 그런 퍼포먼스까지 예술로써 인정받는다는 걸 당시에는 몰랐던 터라 소더비 어떡해! 구매자 어떡해!! 라는 하등 쓸모없는 걱정까지 했다니까요. 에베레스트 능선마냥 가파르게 솟아오를 가격과 영상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간 작품을 보기 위해 구름 같이 몰려들 관객을 예상하지 못한 탓이죠. 이 바보!! 그림 전부를 모조리 파쇄할 계획이었다는 건 이 책 『뱅크시_벽 뒤의 남자』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실패한 파쇄쇼로 작품은 <사랑은 쓰레기통에> 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붙었다나요. 어쩔시구!



『뱅크시_벽 뒤의 남자』는 엄청난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니 더더욱 신비주의를 고수 중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삶과 작품을 뒤쫓는 책이에요. 1990년대부터 대략 2020년까지 그를 알고 있는 사람과 그의 작품이 시작된 곳과 그의 작품이 남거나 그의 작품이 사라지거나 그의 작품으로 시끄러워진 곳을 하나하나 찾고 뒤져가며 뱅크시를 기록하고 있어요. 작가 윌 엘즈워스-존스는 「선데이 타임스」의 뉴욕 특파원이자 수석기자를 지냈는데요. 그래서인지 뱅크시와 관련한 조각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설명하는 중에도 드라마틱한 서사로 재미를 만들기보단 사실의 전달에 취중합니다. 알려진 서사가 진실이 아닌 듯 하다고 푹푹 찌르는 경우도 있었어요. 자신의 태그에 흥미와 관심, 화제성을 끼얹을 줄 아는 성공한 연출가 뱅크시의 과거가 어느 정도는 이미지 메이킹 같다는 거죠. 그가 자비로 발간한 책과 지금보다 덜 신비주의이던 시절 진행한 인터뷰로 알린 공립학교 생활이나 부모님과의 관계, 거리의 삶 같은 거 말예요. 작가의 사생활이나 성장, 고난, 좌절의 서사없이도 책은 정말이지 재미난데요. 뱅크시는 경찰, 갤러리, 자본주의에 힘껏 반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은 경찰과 당국의 보호를 받구요. 자의로 유명 갤러리에서 수차례 전시를 했으며, 경매에 올려진 작품들은 엄청난 값에 팔려나가고 있어요. 그의 이상과 그의 현실이 주는 괴리가 그 어떤 작품보다 반전이더라구요.



어마어마한 유명세만큼 어마어마해진 그림값 탓에 미용실에서 머리칼을 자른 값으로 준 그림마저 경매에 출몰 중이래요. 껌종이에 그려줘도 마냥 감사할텐데 저는 왜 영국에서 미용실을 하지 않았을까요? 벽을 통째로 떼서 경매에 부치는 소유주도 있구요. 벽을 떼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수리 중이던 벽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기도 했대요. 호텔에서 도둑 맞은 어떤 그림은 경매에 나오는데까진 성공했지만 너무나 유명한 탓에 장물인 걸 곧장 들켰다지 뭔가요. 21세기에도 이런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게 정말이지 놀랍지 않나요? 저작권을 따지지 않는 태도(세상에 이런 일이!), 다양한 정치 사회적 기부 행위(기부는 언제나 존경!), 경영난으로 폐업을 앞둔 클럽에 그래피티를 남겨 그곳을 살리는 등(마케팅 천재 아닙니까?) 그의 기행은 현재 진행중입니다. 이미 전설이 된 예술가의,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유명인의 업적을 글로 읽고 그림으로써 감상하는 건 정말이지 신나는 일이었어요. 많은 팬들이 끝끝내 그를 수수께끼로 남기고자 하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습니다. 다 알면 재미없잖아요. 뱅크시의 조직 페스트 컨트롤은 그의 서사를 보호하기 위해 이 책이 "비공식적인 책"임을 표기하게 합니다. 여러분, 우린 지금 비공식적인 책을 읽고 있는 거에요! (공식적인 책은 그럼 언제 나오나요? ㅋㅋㅋ)


<미술문화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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