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제일 처음 사라진 아이는 바하두르였어요. 말을 더듬는 바하두르는 곧잘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친구였는데 술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일하러 가면 유령시장에 숨곤 했어요. 악마의 입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는 유령시장의 골목이 무섭긴해도 눈에 멍이 들만큼 바하두르를 떼리는 아버지는 더 무서운걸요. 수리점 하킴 아저씨가 유령시장에 사는 정령은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도 했구요. 저벅저벅이었을까요? 바하두르에게 다가오던 그 소리는? 무서운 건 정령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셨으면서 더 무서워해야 할 존재가 사람이라는 건 왜 알려주지 않으셨을까요? 바하두르가 사라졌지만 동네가 발칵 뒤집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바하두르의 엄마가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잿밥에만 관심을 둔 경찰은 바하두르 엄마의 금목걸이만 받아들고서 냉큼 돌아가버려요. 아줌마들은 바하두르 엄마를 안타까워 하면서도 어째서 경찰에 신고해 일을 크게 만드냐며 불평을 해요. 경찰들이 불도저로 빈민가를 밀어버릴까봐서요. 아홉살 자이는 이제야 말로 자신이 나설 때라고 생각합니다. "경찰순찰대"와 "범죄의 도시"에서 그간 배워온 탐정기법들을 이용해 바하두르를 찾아낼 계획이에요. 자이의 조사단이 출범됐으니 바하두르를 잡아간 그 녀석 이제 꼼짝마라일까요?
아무래도 바하두르는 정령에게 납치됐을 가능성이 제일 커요. 경찰에게도 그렇게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더라구요. 칫, 재미없게. 자이는 가장 친한 친구들인 파리와 파이즈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조사원이 되서 바하두르 실종 관계자들을 탐문해 달라 이거죠. 공부대장 파리도 향기나는 비누를 사려고 열심히 알바 중인 파리즈도 조사원이 되기를 거부하지만 자이가 누군가요. 공부는 못하지만 필요할 땐 떼쓰기 대장인걸요. 어린이 탐정단이 최고의 쾌거를 올린 것 같습니다. 자이는 바하두르가 평소 가출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엄마의 비상금에 손대기로 해요. 보라선 열차를 타려면 돈이 필수니까요. 에헴, 어린이 탐정단의 대장으로써 엄마에게 매 맞을 각오는 되어있다구요. 후들후들, 자이의 다리가 떨리는 건 착각이니까 다들 모르는 척 모르는 척. 어째 대장인 자이보다 어쩔 수 없이 조사원이 된 파리의 수사와 탐문이 더 정확한 것 같지만 그것도 모르는 척 모르는 척. 조사단을 위해 떡 하니 저축한 돈을 내어놓는 파이즈도 정말 의리있는 친구에요. 보라선 열차에 올라탄 친구들! 번쩍반짝 처음으로 마주한 열차와 열차 밖 시내의 모습, 여긴 정말 별세계군요!
거대한 고층 아파트와 자이가 사는 뒷골목의 빈민가는 완전히 대조적이에요. 돈을 주고 사용해야 하는 공중 변소, 공중 변소를 이용할 수 없을 때는 집 앞 골목 아무 곳에나 소변을 지리는 사람들, 수도시설은 꿈도 꿀 수 없고 한겨울에도 찬물 한 바가지로 몸을 씻어요. 엄마는 부자집의 식모로 아빠도 큰 공사장의 인부로 열심히 일하는데 자이와 누나 루누가 제대로 먹는 식사는 저녁 한 끼 뿐입니다. 학교에서 먹는 공짜 점심이 아니면 하루를 버티기가 정말 힘들지만 그거 아세요? 인도의 어느 학교에서는 급식을 먹고 사망한 아이들도 있다는걸요. 멀건 죽 같이 뭣도 없는 걸 자이와 친구들은 목숨 걸고 먹고 있는 거에요. 그마저도 벌을 받아 학교에서 내쫓기는 날이면 배가 고파 찔끔 눈물이 납니다. 매케하고 뿌연 스모그는 24시간 365일 이 도시의 배경으로 깔려있어요. 파리즈의 천식은 아마 이 스모그 때문이겠죠. 빈민가의 범죄 앞에 무사태평한 경찰들은 소년이 사라지면 가출이고요. 소녀가 사라지면 남자랑 눈 맞아 도망친 거래요. 늙은 무슬림 남자, 이 한 마디만 던져놓으면 피해자 가족들은 명예가 훼손될까봐 쉬쉬 입닫기 바쁘고 동네 사람들은 수군수군, 아무도 경찰의 무능을 손가락질 하지 않으니까요.
자이와 친구들의 눈에 보여지는 인도 빈민가의 참상은 뭄바이와 델리 등 인도의 다양한 도시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작가의 풍부한 경험과 조사의 축적이에요. 아이들이 자라기에는 너무나 경악스러운 환경과 활기차고 순수하고 까불거리고 에너지 넘치는 자이와 친구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지나친 간극 때문에 독자는 눈물이 나고 맙니다. 아이들의 바램처럼 마지막까지 정령의 짓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법 같은 힘이 원인이면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을거라 믿었나봐요. 2021 에드거 상 수상작이구요. 뛰어난 데뷔작이라는 멋진 칭찬과 평론가와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이끌어낸 소설이에요. 메탈이라는 정령은 빈민가의 아이들을 돌봐주고요. 교차로의 여왕은 남자들에게 쫓기는 여자들을 보호해준대요. 인도의 소외된 많은 아이들과 여자들이 정령이 아닌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그날이 언젠가는 오게 될까요?
<북로드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