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을유세계문학전집 116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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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 나이 스물두 살 때 발표한 작품이에요. 폴타바에 있는 엄마와 일가친척들을 독려 혹은 독촉하며 다글다글 끌어모은 우크라이나 각종의 민속 자료에 기반한 창작 설화집입니다. 고골이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를 출간하며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는데 러시아 독자, 당신이란 사람들, 나 정말 무섭다구요. 제가 난생처음 접한 고골 작품이 이 책이었다면 총아는커녕 고골은 문단의 지하세계로 내쫓겼을지도 몰라요. 1부와 2부로 나뉘어 발표된 작품들의 환상성은 분명 놀라울 정도지만 혼을 빼놓는 악마들의 개입 내지는 악마주의가 영 익숙해지지를 않더라구요. 갓 구운 감자나 고구마나 되는 듯이 달을 딴 악마가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뜨거운 달을 옮겨가며 호호 식힌 다음 호주머니에 쏘옥 숨겨 달을 훔치는 장면은 그럼에도 인상적이었지만요.

제게 있어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는 <성 요한제 전야>였습니다. 페트로라는 잘생긴 청년이 주인집 딸 피도르카와 사랑에 빠지는데요. 그는 부모도 일가친척도 없는 천애고아에 가난한 일꾼이었기 때문에 피도르카의 아버지는 결코 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아요. 오히려 폴란드의 부유한 남자에게 얼른 딸을 시집보낼 계획을 세우는데요. 절망감에 빠진 피도르카는 동생 이바시를 시켜 폴란드 남자와 결혼하느니 아주 죽어버리겠다는 결심을 페트로에게 전하게 합니다. 페트로도 꼭 같은 심경이었음은 말해 뭣할까요. 그러니 금식을 해야 하는 성 요한제에 술집에 들어가 취할만큼 잔뜩 퍼마시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거겠죠. 금덩이와 바꾸는 조건으로 그밤의 첫 고사리꽃을 꺾은 페트로는 악마의 꾐에 빠져 이바시까지 죽이는 우를 범해요. 악마의 술수로 지난 밤의 기억을 모조리 잊은 페트로는 피도르카와 혼인하지만 행복은 잠시. 끝내 자신이 한 짓을 기억해낸 후엔 재로 변해 세상에서 사라져버립니다.

사랑을 원만하게 이루는 이야기도 있어요. 난생 처음 시장을 구경가게 된 처녀가 근사한 청년과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데요. 계모에게 옴짝달짝 못하는 아버지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가 계모의 난폭한 반대에 부딪혀 다시 수락을 거부해 버립니다. 청년은 좌절하지 않고 현명하...다기 보다는 영악한 집시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구요. 아버지와 계모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국 결혼에 성공한답니다. 이야기 중간에 유대인과 악마가 등장하는데 유대인의 고릿고릿한 금전감각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일대에서도 유명했나봐요. 많고 많은 슬라브계 종족들을 다 제치고 하필이면 유대인 여관주인이 악마의 옷을 저당 잡아 몰래 팔아치운다니 말예요.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뺏길 뻔한 아들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계모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연못에 몸을 던진 유령 아가씨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 대가로 아버지에게서 연인을 쟁취할 수 있게 됩니다.

디칸카 근교 마을엔 유독 딸만 있는 홀아비, 아들만 있는 과부가 많았는지 과부와 홀아비가 눈 맞아 그들 아들딸들이 결혼을 못하게 하려고 한 경우가 다양하게 등장을 해요. 참 흠칫흠칫한 설정이죠? 젊은이들의 기개로 사랑은 결국 아들딸들의 몫으로 돌아가지만요. 사랑에 좌절한 젊은이들의 비극성은 그들이 악마의 손쉬운 먹이감으로 전락할 때 더 두드러집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랑을 이루고픈 그 열정이 한편으로는 부러웠어요. 고골이 스물두 살이라는 젊고 혈기왕성한 나이였던 탓일까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성별 무관하게 저열하거나 야비하거나 천박하거나 옹졸하거나 쩨쩨하거나 유치하거나 소심하거나 이기적이거나 게으르거나 음란하거나 불결하거나 비겁하거나 신경질적으로 그려져있다는 게 특이점이라면 특이점 같아요. 마법사의 딸인 카테리나와 로마의 예술품처럼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을 제외하곤 여성들의 성격이나 힘이 남편과 아들 찜쪄먹게 강한데 그점은 무척 부럽습니다. 체력과 재력은 인생의 필수품이잖아요.

원체도 유명한 러시아의 어렵고도 낯선 이름들, 시종일관 범상치 않은 전개, 600에 가까운 두꺼운 페이지가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는 책이고 솔직히 읽기 쉬운 책이라고 하기는 힘들어요. 그러나 고골의 손끝에서 새롭게 정렬된 신비롭고 낯선 우크라이나의 옛 설화가 틀림없이 흥미로운 독자도 있으실 겁니다. 고요하거나 혹은 소란스럽게 반짝이는 세상, 늑대의 털처럼 은빛으로 빛나는 강, 꿀꺽 삼켜진 것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달, 도자기 파편이나 호주머니, 어느 아리따운 아가씨의 옷깃과 이야기꾼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악마들,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입고 먹고 살아가며 생경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을 다 만나고 난 뒤엔 성급히 쫓아낸 고골의 손끝을 잡아끌며 사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 좀 더 해주세요 하고 말이죠. 참고로 우크라이나는 연인을 부르는 애칭마저도 이렇게나 뜻밖이에요. "내 가슴, 내 물고기, 목걸이야! 내 아름다운 백당나무야!" 이상 도대체가 여자친구를 뭣 때문에 물고기라 부르는지 이해 못하는 독자 1인의 리뷰였습니다.








먹는 모습을 보고 우크라이나 참외는 한국 참외랑 아주 비슷하겠구나 생각했어요.

찾아 보니 꼭 닮은 모습이더라구요.



모두가 결혼을 당연하게만 생각했을 것 같은 시대인데

그 시절에도 결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 을유문화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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