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 소설입니다. 자폐라는 병이 획기적인 치료법을 갖게 된 시대의 이야기죠. 루는 근소한 차이로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에 태어났습니다. 자폐를 가진 마지막 세대의 일원이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군요. 초기개입과 감각 훈련을 통해 루는 얼핏 정산인들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는 직업이 있고 집과 차를 소유했으며 상담의사에게는 비밀이지만 펜싱 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도 있습니다. 펜싱 동호회에서 만난 마저리라는 여성에게 애뜻한 마음도 품고 있어요. 결코 고백을 하거나 데이트 신청을 하겠단 생각은 하지 않지만요. 지능이나 어떤 특정 감각에 있어서는 정상인을 상회하지만 그럼에도 정상인과 분명한 차이는 있습니다. 의사소통. 루는 말에 얹혀진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표정과 태도와 상황이 가지는 의미는 언제나 그를 어지럽혀요. 사람들이 동일한 뜻으로만 단어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간극이 루와 세상 사이에는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전반적으로 평화로웠던 루의 삶이 뜻밖의 변화를 맞이한 건 두 남자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남자 크렌쇼. 루가 근무하는 제약 회사의 새 관리자로 들어온 그는 경쟁자보다 돋보이기 위해 루가 소속된 자폐인팀을 해체하려고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패턴과 숫자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 팀은 특별한 성과만큼이나 특별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정신적 육체적 안정을 위한 체육관과 놀이기구,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설장치. 크렌쇼는 이런 점이 아주 거슬립니다. 그들 제약회사가 사들인 자폐증을 역진시키는 실험으로 루와 동료들이 자폐를 지우고 기존의 기능을 온전히 유지한 정상인이 된다면 사측의 경제성은 훨씬 높아질 거라는 게 크렌쇼의 생각이에요. 크렌쇼는 자폐인팀의 실험참여를 강요합니다. 참여하지 않는다면 실직. 이미 서른 다섯인 루는 직장을 잃는 일이 두려워요. 자폐인인 자신의 취직은 정상인들보다 훨씬 어려울 테지요.
두 번째 남자 돈. 루, 마저리와 함께 펜싱 동호회 활동을 하던 친구입니다. 직업도 변변찮고 태도나 예의도 엉망진창이고 이성에게 호감도 받지 못하는 남자의 질투는 무척이나 추하고 위험합니다. 돈은 루의 차를 망가뜨리는데서 그치지 않고 결국 루에게 총까지 들이밀거든요. 장애인인데, 자폐인인데, 겉보기는 멀쩡해 보여도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하고 강박증까지 있는데 어째서 네가 나보다 더 좋은 직업, 더 좋은 여자, 더 좋은 차를 모느냐 이겁니다. 자신의 실패를 루의 탓으로 떠민 돈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루는 돈이 처벌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확히는 돈의 뇌에 폭력성을 억제하는 칩을 심는 일이 싫습니다. 칩을 심는 일로 돈이 돈이 아니게 되는 일이 그 자신의 일처럼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폐를 치료하는 이번 치료를 루는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자폐인이 아니게 된 나도 내가 맞을까? 혹시나 기억을 잃게 된다면 어쩌지? 기억을 하더라도 비디오 영상을 보는 것처럼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루가 치료를 받는지, 치료를 받는다면 그가 이전의 루와 같은 모습이었을지 혹은 전혀 다른 루가 되지는 않았는지...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자폐인인 루 본연의 모습에 안주하며 지금처럼 계속해 만족했을런지, 자폐인이라는 차별을 겪고 공포로 식은땀을 흘리게 되는 순간들에 혹시 수술 받지 않은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는지.. 이런 미래의 이야기들은 다른 독자님들의 재미를 위해 꽁꽁 숨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제게는 《어둠의 속도》가 『앨저넌에게 꽃을』과 『이방인』, 『 포레스트 검프』를 합친 작품처럼 느껴졌는데요. 자폐라는 소재, 서로에 대한 몰이해, 단절, 배척, 자폐인 주인공의 어떤 상황과 일에 대한 몰입과 도전 때문이지 않았나 싶어요.
세상이라는 끓는 물에서 자의라곤 한 톨도 없이 춤추는 채소가 된 것 같은 날에 읽어보시길 바래요. ("가끔은 , 바보처럼 춤춰대는 채소들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소설 속 문장을 인용했어요o(* ̄▽ ̄*)ブ) 소설은 끊임없이 이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제게는 루의 선택과 자기 결정 그리고 용기라는 측면이 더 와닿았거든요. 아이쿠, 뜨겁잖아! 소리치며 냉큼 냄비 밖으로 뛰어나온 채소가 가스렌지 불을 끄는, 어쩌면 뭉근하게 온도를 맞추어가는 것만 같은 이야기입니다. 주어진 역할대로만 살 것 같은 순종적인 녹황색 식물이 난 익혀지기 싫어, 비벼질거야! 하며 초장에 뛰어들 때의 충격, 채소의 빨간맛이 결말에 있으니까요. 중간에 끊지 마시고 꼭 끝까지 읽으시면 좋겠어요. 김초엽 작가님의 강력 추천을 받은 작품인데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이나 감성이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김초엽에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고 엘리자베스 문에겐 "이해가 어둠의 속도로 도착한다면"이 되려나요? ㅎㅎㅎ
+ 이 부분은 쓸까말까 고민을 했는데 혹시나 제 리뷰를 읽고 선뜻 책을 든 독자님이 어둠의 속도 초반에 실망을 하실까봐 덧붙입니다. 루의 성격 탓에 전개가 시종일관 차분하고 느릿느릿한 점, 자폐인인 루가 뜻밖에도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얌전하고 조심스럽고 자주 순진하고 규칙적이고 규율을 잘 지키고 청결하고 질투하지 않고 공정하고 신뢰를 알고 배신하지 않으며 본인의 의도는 아니라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루의 성격은, 아차 마저리에 대한 그의 플라토닉한 사랑까지 포함해서 너무 완벽하거든요. 자폐라는 장애에 좌절하지만 이상하게 루에게서는 해탈한 성자와도 같은 평온함이 있어요. 어쩌면 무미건조하게도 느껴지는 이런 매끄러운 루의 인격이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이고 약육강식적인 정상인의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루에게서 아무 흠결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구태여 루가 치료를 받거나 받지 않는 일에 대해서 독자인 제가 절절 맬 이유가 없어지더라구요. 딱 그만큼 감정적인 거리를 둔 채로 독서를 하게 됐구요. 감정이입 없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목도하는 이런 독서가 제게는 흔치 않아서 초반엔 읽는 일이 좀 어렵게 느껴졌는데요. 책장을 덮고 꽤 길게 여운이 남아서 그제야 아 좋은 책이구나, 내가 이 책을 좋게 읽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호흡을 길게 가지고 찬찬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