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강아지
케르스틴 에크만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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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언제 시작하는 것일까? 그 앞에는 항상 다른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똑똑 떨어진 물방울이 작은 개울이 되고, 작은 개울이 시냇물을 이루고, 빗물이 습지의 수위를 상승시키던 어느 날처럼 말이다. _p4

아직 젖 냄새도 가시지 않았을 조막만한 강아지가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낚시하러 가는 주인의 뒤를 쫓아 달리는 어미 개의 뒤를 녀석은 허락도 받지 않고 뒤따릅니다.

어미 개는 작게 종종걸음치며 달려오는 녀석의 냄새를 눈치 챘지만 주인은 이를 알지 못했고

결국 눈보라가 소용돌이 치는 호숫가에 강아지만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가버립니다.

주인과 함께 웬종일 강아지를 찾던 아내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얘기합니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영영 찾을 수 없을 거야.

지금쯤이면 이미 얼어 죽었을테니까.

 

어미 개의 냄새를 찾던 녀석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가문비나무 뿌리 아래 움푹 패인 굴 속에 들어가 배를 몸을 숨깁니다.

어미의 달콤한 젖으로 배를 채울 수도 없는 밤은 허기지고 외로웠어요.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추위였을텐데 강아지는

저 자신의 온기에 기대어 꼬리에 주둥이를 틀어박고 버텨봅니다.

새하얀 폭설에 묻혀 낑낑대는 녀석의 울음소리가 애처로워요.

햇빛이 눈 위를 환하게 비춘 다음 날 기적처럼 강아지가 눈을 뜹니다.

약간의 얼음을 핥아먹고 그 얼음물에 다시 꽁꽁 어는 몸을 느끼면서도

강아지는 집을 찾기 위해 굴을 떠나 눈밭에 폭폭 발을 담굽니다.

털도 나지 않은 뱃가죽을 뚫고 추위가 가시처럼 강아지를 찌릅니다.

어제 어미를 쫓아 한참을 헤맨 네 다리도 너무 아파요.

강아지는 채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한 채 간신히 가문비나무 아래로 되돌아옵니다.

추위도 배고픔도 어린 것이 버텨내기엔 너무 힘겨운 것이라

이 녀석이 도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한 문장 한 문단 한 페이지가 조마조마했어요.

신기한 건 아무도 보살펴주는 이 없는 숲에서, 누구의 의도도 없이

강아지가 숲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연명하는데 있지 않나 싶어요.

강아지는 무기력한 추위에 꽁꽁 잠기며 영영 눈을 못뜰 뻔 했었지만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까치의 울음소리에 죽음 같은 잠을 이겨냅니다.

제대로 된 먹을거리는 없었지만 땅을 파헤쳐 찾아낸

두 덩이의 여우 똥과 링고베리 열매, 토기 똥 같은 것으로 배를 채울 수도 있었어요.

그 작은 에너지로 며칠 밤을 버틴 강아지는 바람이 잠잠해진 어느 아침부터는

먹이를 찾아 드디어 가문비나무 굴도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이후로는 끈기있게 먹을거리를 찾아 움직이는 매일매일의 여정이 펼쳐져요.

햇빛을 핥고 빨면서 겨울을 지나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로 달려나가다

숲으로 사냥을 나오는 인간들의 무리를 마주치게 되는 그날까지,

계속 가렴, 쉬지 말고 계속 가. (p44)

 

강아지가 살기 위해 겨울의 하루하루를 버티고 이기다

봄이 되어 들쥐로 풍족하게 배를 채우고 바람을 쫓아 신나게 달음박질치고

햇볕에 취해 노곤히 잠드노라면 제가 다 행복한 마음이 들었어요.

올빼미에게 쫓기고 여우에게 먹이를 뺏길 땐 조마조마 속상했구요.

소란스런 숲의 소음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밤엔 짠한 마음이었습니다.

사람 소리가 들릴 땐 너무나 반가웠는데

강아지가 두려움에 피해버리니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구요.

'바보야 도망가지마, 주인일지도 모르는데 얼른 나가봐.'

길 잃은 강아지의 시선으로 보는 험난한 세상살이,

생각했던 그림책은 아니었지만 정말이지 감동이었어요.

혹시 길을 잃어버리셨나요?

주둥이를 몸안으로 밀어 똘똘 말면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을 간직할 수 있대요.

온통 망가지고 누덕누덕해진 잠도 걱정 마세요.

털을 뽀송뽀송 말리고 포만감을 채울 수 있는 봄이 오면 깊은 잠도 되살아날테니까요.

달이 떠올라 얼음 조각이 환히 빛나는 밤엔 누군가가 그리워질 수도 있고

그러다 엉터리 같은 무언가를 내가 그리워하는 이로 착각하는 실수를 할지도 몰라요.

강아지도 은여우를 엄마로 착각해 쫓아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 녀석 어쨌는지 아세요?

엉덩이를 대고 풀썩 주저앉아 뒷다리로 사정없이 귀를 긁었대요.

귀를 긁는 일 외에는 세상에 신경 쓸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요.

그리움도 외로움도 어쩌면 두려움도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쉬이 지나가게 둬 보아요.

태양 하나를 내 품에 담아 두면 어두운 밤에도 서리 내리는 아침에도

강아지처럼 습지로 나가거나 필요한 것을 찾으러 움직일 수 있을텐데 이것만큼은 어렵네요.

제 태양이 뭔지 아직도 도통 모르겠지만 결국은 찾아내게 될 거에요.

끝내 제 집을 찾아낸 길 잃은 강아지처럼요.

잃어버린 강아지를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을 때

강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이야기는 언제 끝이 나는 것일까?

끝날 리는 없다. 그 뒤엔 항상 다른 게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태양과 강한 바람, 그리고 나른한 휴식의 나날이 저물면, 곧 사냥하는 날들이 시작된다. 물푸레나무의 가지를 타고 양철 지붕 위를 두드리는 폭우가 한바탕 지나고 나면 길고도 졸린 나날들이 이어지고, 곧이어 따스한 봄이 찾아와 코와 귀를 간지럽힌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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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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