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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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몬과 루쿨루스, 근친상간과 가난, 불륜 중 뭐가 더 추문인거죠?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근친상간이 흠이 아닌 줄로 알았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변신 이야기를 읽으면서 신들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 내 착각이었다. 키몬과 루쿨루스는 근친상간의 추문에 휩싸였는데 정적에 의해 부풀려진 면도 있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정확치가 않다. 공직에서 내려와야 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고 다만 남들 보기에 떳떳하지 않았다는건데 읽다 보면 살짝 헷갈린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키몬의 집은 가난했다. 여동생 엘피니케의 지참금 마련이 어려워 결혼을 못시킬 정도였는데 그런 와중에 키몬과 여동생이 적절하지 않은 관계를 가졌다는(남몰래 산 것이 아니라 대놓고 부부처럼 살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간이 흐른 후 엘피니케에게 반한 남자가 지참금 없이, 도리어 키몬 집안의 벌금을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엘피니케를 데려가는데 민중은 이를 좋게 보지 않아 쑥덕쑥덕. 어쩐지 근친상간보다 지참금도 못주는 가난을 더 비루하게 보는 것 같달까? 루쿨루스의 경우에도 아내가 오빠와 불륜을 맺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근데 여기도 보다보면 알쏭달쏭 하다. 근친이 아니라 불륜에 더 취중한 소문 같은거다. 그리스 로마 시대 사람들에겐 근친상간, 가난, 불륜 중 도대체 뭐가 제일 추문이었을까?

2. 페리클레스는 가화만사성이 제일 어려웠대요

파르테논 신전 건설로 유명한 페리클레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아테네의 전성기를 구가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인데 정작 가정사적으로는 너무나도 고통이 많았다. 규모있는 경제를 꾸리기 좋아하는 그는 아들 며느리로 하여금 매달 생활비를 타쓰게 했는데 원체 사치스런 애들이라 찔끔찔끔 받는 돈에 불만이 많았다. 부부가 합심해서 아버지 몰래 아버지 친구에게 돈을 꾸고는 갚지 않았는데 내심으로는 언젠가 아버지가 갚아줄 줄로만 알았던가 보다. 친구 또한 페리클레스를 보고 빌려준 돈이었던만큼 페리클레스가 갚아주기를 바랬지만 딱 잘라 거절. 아들도 며느리도 친구도 페리클레스의 원수가 됐다. 좀스러운 아버지에게 화가 난 아들 크산티포스가 아버지의 추문을 내고 다녔다. 페리클레스가 자기 아내를 간음했다는 비방부터 친구들과 나눈 좀 말이 안되는 철학적 대화 같은 것을 떠벌리고 다니니 페리클레스가 망신당한 것은 당연지사. 큰아들이 죽는 그날까지도 둘은 화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식복이 얼마나 없는지 남은 자식들도 전염병으로 사망했는데 그때문에 자신이 발의했던 법안 "사생아에게 시민권을 주지 말자"를 철회해달라는 성명을 낸다. 적손이 죽어 혈통이 끊어지게 생겼으니 자존심이고 뭐고 가릴 군번이 아니었던거다. 특이한 건 이에 대한 아테네 시민들의 결정이었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페리클레스가 겪는 고통을 인과응보라 보았는데 부탁을 하는 것도 남자다운 일이고 부탁을 들어주는 일도 남자다운 일이라며 이 청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안타까운건 시민권을 얻은 그의 사생아조차 뒷날 민중의 손에 죽었다는 거 /_ \

3. 화비우스 막시무스, 내향인이지만 성공했습니다

아이가 조심스런 성격에 얌전해서 걱정이라면 화비우스 막시무스를 보자. 그는 어린 시절 행동이 굼뜨고 기가 약해 매번 친구들에게 굽히고 복종하는 바람에 바보라고 놀림받았다. 아참, 공부도 못했단다. (공부를 힘들어했다는 표현을 공부를 못했다로 해석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훗날 그의 성향에 대해 민중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정력이 부족해 보인 것은 격정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었고, 조심스러운 성격은 신중함 때문이었고, 굼뜨고 행동력이 부족한 성향은 그가 일관된 확신 속에서만 움직였기 때문"(p196)이라고. 작은 가슴에 큰 꿈을 키우고 있었던 그 시절의 참된 내향인! 참고로 글레디에이터 막시무스와는 다른 인물이다. 영화 속 막시무스는 마음대로 말을 탈 수 있었지만 화비우스 막시무스는 한니발의 침략 때 독재관으로 임명된 후에도 전쟁에서 말을 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원로원에 요청해야만 했다. 로마의 고대 법령에 따르면 사령관은 말을 타는 게 금지되어 있다나 뭐라나.

4. 니키아스, 후퇴가 먼저냐 제사가 먼저냐 그것이 문제로다

니키아스 편에서는 해방된 노예랑 소크라테스가 받은 예언이 제일 인상 깊다. 니키아스는 웅변술 등 남을 사로잡는 재능은 부족했지만 대신에 돈이 많아서 공연 같은 행사를 많이 여는 것으로 민중들의 환심을 샀는데 이때 그의 노예가 펼친 공연을 보고 아테네 시민들이 엄청 좋아했단다. 노예가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앳되었는데 합창 대회에서 노래도 아주 잘해 니키아스 감탄 또 감탄. "이와 같은 재주를 타고난 사람을 노예로 살게 내버려 두다니 내가 신성을 그르쳤구나."(p246) 라며 니키아스는 노예를 해방시켜준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읽다 보면 느끼는건데 그리스도 로마도 완전 외모지상주의 사회였던 것 같다. 니키아스 편에서 아는 이름이라고 더 반가웠던 소크라테스도 등장한다.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소크라테스는 늘 영험한 예언을 받곤 했는데 니키아스의 시칠리아 전투가 폭망해 아테네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듣고 주위에 소문을 냈다고. 미신에 특히 맹목적인 니키아스는 철수해야 하는 시점에 월식을 보고 제사를 지내야한다며 어영부영 때를 놓쳐버렸고 결국 소크라테스의 예언(?)대로 되고 말았다.

5. 인간 오디오북, 이솝은 암기 천재? 스파르타쿠스도 실존인물?

크라수스에게는 재능 있는 노예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책을 읽어주는 노예도 있었다. 당시 귀족들은 책을 읽기 귀찮아 노예로 하여금 유명한 책을 암기하도록 해서 필요할 때면 암송을 시켰단다. 우리가 잘 아는 이솝(아이소포스)가 바로 그런 책 읽어주는 노예였다. (그가 크라수스의 노예였던 건 아니다;;) 나는 여태 책을 보면서 읽어주는 노예를 상상했는데 알고 보니 이솝은 암기 천재형 인간 오디오북이었던 것! 앞으로 오디오북을 들을 때면 내가 귀족적인 삶을 사는 중이구나 좀 감탄해 주도록 하자. 크라수스는 드라마로도 재현된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을 제압한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는 안봐서 모르겠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스파르타쿠스는 승리에 몰두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노예들을 설득해 얼른 해산하기를 바랬고 아내와 함께 로마를 떠나고 싶어했지만 승리에 도취된 다른 노예들의 협박에 전투를 멈출 수 없었다. 전진 또 전진 승리 또 승리하는 그런 환상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수십 명의 로마 전사에게 둘러싸인 그는 실라루스 강가에서 장렬하게 사망했다.

6. 알키비아데스, 짜릿해, 늘 새로워, 잘 생긴 게 최고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2권을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은 알키비아데스다. 소크라테스의 반려? 연인? 제자? 로 유명한 그는 소년시절, 청년시절, 성년 이후까지 계절마다 피는 꽃처럼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단다. 여자처럼 옷을 입고 혀짤배기소리를 내는데도 매력적이라고 칭송이 (때때로 빈정거림을 동반하긴 했으나) 자자했을 정도. 소크라테스와 함께 전쟁에 나간 적도 있었고 (대박, 소크라테스 쩔어) 젊어서는 창녀의 집을 제 집 드나들듯 해 이혼을 당할 뻔도 했지만 법정에 출두하는 아내를 알키비아데스가 집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이혼은 성립되지 않았다. 당사자가 법정에 안가면 이혼이 안되는 구조였는데 플루타르코스의 말에 따르면 이런 법이 제정된 건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를 붙잡을 기회를 한번 더 주려던 것이라고. 앞서 거론한 니키아스와는 상당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시샘하고 질투하는 사이였는데 이때의 갈등과 암투를 시작으로 알키비아데스의 정치 인생이 복잡다단해진다. 그는 민중으로부터 두 번 버림받았으며 그때마다 스파르타와 그 밖의 나라들 편에 서서 조국에 칼을 들이밀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외모로 주목받고 점수를 땄지만 끝은 좋지 않았다. 스파르타에서도 왕비랑 간통해 애를 낳는 바람에 칼침 맞을 위기에 처했다. 알키비아데스의 죽음에는 30인의 참주들이 보낸 암살자 때문에 사망했다는 썰과 명문가의 딸을 겁탈하는 바람에 오빠들이 밤중에 그의 집에 불을 질러 사망했다는 썰이 있다.

7. 술라, 가난한게 죄야?

로마 시대에는 부모의 재산을 탕진한 자도 비난 받았지만 부모의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된 사람도 비난을 받았다. 술라는 후자였다. 정직한 사람이 어떻게 돈을 모으겠냐는 것인데 평판이야 어찌됐든 술라는 부유한 평민 아내와 계모가 남긴 유산으로 살림이 윤택해졌다. 중국에서는 붉은 얼굴의 관우를 대추 같다고 표현했는데 로마는 술라의 붉은 얼굴을 오디를 박아놓은 것 같다고 표현한다. 로마의 특이한 작명법은 술라에게서도 나타나는데 그 시절에는 마지막 이름 글자에 인물의 외모, 성격, 가정사, 업적 등의 특징적인 내용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단다. 절름발이, 술주정뱅이, 배불뚝이 같은 거? 술라라는 이름에는 얼굴이 붉다 내지는 여드름이 많은 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술라보다 앞에 등장했던 코리올라누스는 코리올리 침략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마지막 이름을 얻었다. 쓰다 보니 오디도 먹고 싶고 사과대추도 먹고 싶고..는 아무말 대잔치 중 ㅋㅋㅋㅋ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무슨 사랑과 전쟁처럼 읽고 있다. 역사책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거야?

사람들은 일시적인 격정이나 그 당시의 정치적 요구 때문에 실수나 잘못된 행동을 한다. 이럴 경우에 우리는 그러한 결함이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난 실수일 뿐이지, 그 인간의 심성 밑바탕에 깔린 천박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우리는 역사를 기술하면서 그런 실수들을 너무 열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필요 없는 이야기까지 덧씌워그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부드럽게 감싸듯이 다루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절대적으로 선량하거나 명백한 덕망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키몬, 2, p18)

플라톤은 키레네처럼 부족함 없이 사는 곳에는 법을 만들어 주기가 매우 어렵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잘 사는 부족에게 법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통치는 없다. 달리 말하면, 불행으로 말미암아 어렵게 살고 있는 종족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루쿨루스, 2, p54)

언젠가 루쿨루스는 혼자서 식사를 하는데, 식사가 한 가지 요리로 간단히 준비되어 있었다. 화가 난 그가 식사를 담당하는 노예를 불러 꾸짖었다. 그러자 노예가 말했다. "별다른 손님이 없을 때도 비싼 요리를 차려야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에 루쿨루스가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너는 오늘 루쿨루스가 루쿨루스를 초대하여 식사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냐?" (루쿨루스, 41 ,118)

신의 존재가 영원하듯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도 영원할 것입니다.

(페리클레스 사모스 전쟁 전몰장병 위령 연설에서, p131)

어떤 작품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고 해서 반드시 그 작가까지 존경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 2, p133)

그가 세운 건물에는 영원히 새롭게만 여겨지는 꽃다움이 있다.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것처럼, 나이를 잊은 영혼의 흔들리지 않는 숨결이 배어 있다. (페리클레스, 13, p153)

나 자신만의 위대한 업적이 무엇이냐고?

그것은 바로 아테네 시민들 가운데 나 때문에 상복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는 점일세. (페리클레스, 38, p190)

죽음이 무섭기야 하지만, 나를 위해 죽어 가는 부하들을 버리고 갈 정도는 아니다. (크라수스, 25, p335 / 크라수스의 아들 푸블리우스가 파르티아와의 전투에서 한 말, 이후 작별인사 없이 부하들과 헤어진 후 경호원에게 자신을 찌르라고 지시를 했다.)

누구도 분노로 말미암아 우아하 대가를 받을 수는 없다.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의 비교, 플라톤의 제자 디온의 말, 2,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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