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유키의 자살 후 고스케는 종종 악몽을 꿉니다.
자살방지센터 레테를 운영하며 최선을 다해 상담에 응하지만
죽음으로 온마음이 향하는 사람의 목덜미를 부여잡고
삶으로 다시금 끌어올리는 마법 같은 말은 존재하지 않기에
때때로 실패하고 소명과는 별개로 마음이 무력해집니다.
히로유키의 자살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을까요?
코스케는 사망자의 누나 미오를 만난 후로 의문의 VR 게임에 집착하게 되요.
미오의 말에 따르면 히로유키는 호텔에서 뛰어내리기 직전까지
가상현실게임 "은빛 나라"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서 한 장 발견되지 않은 호텔을 덩그러니 지키고 있던 고글.
게임에 빠져 퇴사를 하고 집안에 틀어박혔던 동생을 떠올린 미오는 생각합니다.
혹시 이 게임이 동생을 자살로 이끈 장치인 게 아닐까?
고스케는 곧장 러시아의 "푸른 고래" 게임을 떠올립니다.
자살커뮤니티를 운영하던 마스터가 50여가지의 미션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희생자를 압박한 후 끝내 자살에 이르게 만들었던 게임인데요.
반년 동안 130명의 희생자가 나왔던만큼 후폭풍이 큰 사건이었어요.
체포된 마스터는 "쓰레기들을 사회에서 제거했을 뿐"이라며 뻔뻔했는데요.
설정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 검색했던 저는 아주 식겁했습니다.
실제 사건으로 피해자가 자해 미션을 수행한 사진이 같이 떠요.
가급적 보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ㅠ.ㅠ
원격조작으로 데이터가 모조리 삭제된 고글이 낳은 의심.
고스케는 게임 전문가인 추의 도움을 받아 은빛 나라를 추적하다
미키오라는 게임 개발자와 화가 와쿠가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개발자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들 또한 범죄의 희생양이었던 거에요.
그러나 누구라서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를 믿어줄까요?
경찰은 물론이고 동료마저 비난하며 고스케에게서 등을 돌립니다.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자살게임을 만들었을까?
초반의 주요한 호기심은 개발자에 국한되지만 미스터리는 실로 복잡해서요.
"은빛 나라"를 통해 자살 교사를 이루려는 범인과
"은빛 나라"로 달아나 현실을 잊고 가상세계에 몰두하는 이용자와
"은빛 나라"를 폐쇄시키려는 고스케의 추적과 대결을 숨죽이며 지켜보게 되요.
가독성이 뛰어나 숨이 꺼지기 전에 끝을 볼 수 있으니 무척 다행이지요?
뭣보다 나약한 것 같지만 실은 너무 착하기만 한 사람들,
은빛 나라의 희생자들이 인상 깊게 다가오는 책이었어요.
저도 어떤 일에 실패하면 나 대체 왜 이러냐 자기비하도 하고 자책감에도 빠져요.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 적 있는데 내가 죽어야지, 죽고 싶다 이런 말은 안하거든요.
시오리와 구루미는 시험에 떨어지고 애인과 헤어지고 가족과 갈등을 겪고 사기를 당하면
상대를 죽이고 싶다가 아니라 세상이 왜 이러냐가 아니라 "죽고 싶다"고 생각하며 자해를 해요.
처음부터 죽으려던 것도 아니었어요, 쇼도 당연 아니구요.
자해도, 게임도, 그들 나름으로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발버둥이었던 거에요.
연약한 사람들도 상처 입지 않는 뾰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건 너무 동화 같은 바람이겠죠?
사람에게 상처받아 은빛 나라로 도망친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에게 하트를 날려준 세계의 등장인물들도 모두 사람이었음을,
시오리와 구루미가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