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눈을 떴더니 지구에 남은 인간이라고는 나 하나 뿐이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두려울까, 얼마나 막막할까 걱정했는데요.
무척이나 기우였습니다.
에리타는 아주 씩씩하고 건강한 어린이거든요.
뭣보다 아빠 에드먼 박사가 남겨준 무적의 만능 로봇 가온이 있으니까요.
세상 무엇에도 겁먹지 않은 채로 박사가 말한 그날을 기다릴 거에요.
박사는 믿었습니다.
인류보다 훨씬 성숙한 외계생명체가 언젠가는 지구를 발견할테구요.
마지막 인류인 에리타를 꼬옥 구하러 와줄거라구요.
에리타와 가온은 매일매일 지구의 대기와 일상을 기록하구요.
외계를 향해 sos를 던져 지구에 생존자가 있음을 알립니다.
그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하는 "에리타".
그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에리타"를 살려야 하는 가온.
지구에서 살아나가는 일은 험난해도요.
인간과 인공지능로봇의 관계는 무척 단순하리라 생각했어요.
쉘터 안에 또다른 "에리타"가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 말이죠.
시리즈의 1부에서는 말하는 돼지 데이빗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인간처럼 말도 하고 생각도 하는 돼지 데이빗.
그를 돼지로 볼 것인가 사람으로 볼 것인가 화두를 던졌던 d몬 작가님은
이번엔 아예 어린아이의 "진짜" 몸을 지닌 인공지능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에리타는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졌어요.
박사는 에리타를 살리고 성장시키기 위해 아이의 뇌와 육신을 분리합니다.
외계의 우수한 기술이 에리타의 뇌와 육신을 이어줄 그날을 믿으면서요.
동시에 가온에게 "에리타"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프로세스를 입력하는데요.
다만 어느 "에리타"를 선택할지는 가온의 자유의지로 남겨둡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꿈을 꾸고 키가 크고 다치기도 하는 에리타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거나 또다른 에리타의 대체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가온과 이름이 같은, 기계몸을 지닌 또다른 "가온"을 만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은 에리타이지만 실은 진짜 인간인 에리타는 아니라는걸요.
에리타 : 인간의 몸 + 인공지능
로봇 가온 : 로봇 몸 + 인공지능
군인 가온 : 한 때는 인간, 현재는 로봇 몸 + 기존기억 + 인공지능
또다른 에리타 : 몸은 없이 뇌만 남아 이식을 기다리는 중
종말의 지구, 종말의 인류.
최우선으로 가치를 두고 지켜내야 하는 건 누구일까요?
세 사람, 아니 세 인공지능, 아니 세..... 하여튼 인물들은 고민합니다.
살아남아야 하는 마지막 인류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살려야 하는 마지막 인류로 누구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에리타? 또다른 에리타? 누가 진짜 "인간"인가요?
1부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도 재미까지 야무지게 잡은 작품이에요.
캐릭터 어느 한 명 빠짐없이 다 매력적이라 팬심 폭발.
저는 이러나 저러나 박사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요.
제가 박사라면 애초에 뇌사에 빠진 딸을 (가온이 있다지만)
저 홀로 살아남으라고 멸망한 지구에 남겨놓진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떤 모습으로라두요.
누구를 사람으로, 어디까지를 사람으로 느껴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차피 파괴된 지구인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남은 모두를 지구의 마지막 종으로 인정하고픈 마음이 제일 컸습니다.
인류 3부작 시리즈를 끝까지 달린 후에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겠어요.
것보다 외계인은 도대체 언제 옵니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날아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