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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평점 :
현대문학 지원 도서입니다
뭐죠? 뭐 이렇게 끝내주는 책이 다 있죠. 고전 속 다양한 의미로 괴물 같은 캐릭터들을 재조명하는 책인데요. 이 책을 쓴 작가 본인부터가 워낙 괴물 같은 독자다 보니 해석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조명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각양각색의 인물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멀 지경이었어요. 주인공으로 오래오래 사랑 받아온 캐릭터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알베르토 망겔의 조명 밑이 아니었다면 제가 끝내 놓치고 갔을 조연들도 많았습니다. 알았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전혀 다른 모습을 포착할 때나 주인공의 짙은 그늘에 묻힌 조연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어안이 벙벙해졌어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책장 앞을 서성이기도 했구요. 책장에 손을 뻗었다가 몇 차례 접기도 했습니다. 끝내주는 괴물들 속 고전을 꺼내고 싶어져서요.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고 난 내 눈에 그들의 이야기가 다르게 읽힐지 궁금해서요. 그렇지만 끝내주는 괴물들부터 먼저 완독하고 싶어서요.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는 동안이 올 들어 고전이 최고로 땡겼던 밤이었네요 ㅋㅋ
1. 이건 어린이야! 오늘 막 발견했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모두 완독했지만요. 사실 만족할만큼의 재미는 느끼지 못했어요. 말장난도 유머도 도통 뭐가 웃기다는 건지를 모르겠고 시는 이해가 안가구요. 캐릭터들은 귀엽다기보다 기괴해서 매력을 느끼기 이전에 무서웠어요. 모조리 다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잖아요. 초중등 아이들도 즐겁게 완독하는 책인데 참 이상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앨리스는 "우리는 모두 미쳤다는 진실을 깨우쳐주는"(p55) 책이 래요. "우리는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눈물 속에 자신과 남들을 모두 익사시킬 위험을 감수한다. 도도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달리는지, 얼마나 가망이 없는지 따지지도 않고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될 것이고 상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흰 토끼처럼 남들이 우리를 영광스레 받들어야 할 의무라도 있는 양 이리저리 명령을 내리고 다닌다. 애벌레처럼 다른 동족들의 정체를 따져 물으면서 정작 우리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심지어는 정체성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까지 한다. 공작 부인처럼 신경에 거슬리는 행위를 하는 젊은이들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믿지만 그들의 행동 이면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모자 장수처럼 여러 사람을 위해 차려진 음식과 음료를 독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목마르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갖고 있지도 않은 와인을 마시라고 하거나, 오늘만 빼고 다른 날에만 있는 잼을 권하기도 한다."( p56) 그 뒤로도 쭉쭉 이어지는 앨리스가 알려주는 우리의 미친 짓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후들후들 떨었던 거 안비밀입니다. 알베르토 망겔은 햄릿 속 인물과 앨리스를 비교하기도 하는데요. 앨리스가 "나를 마셔요"라고 적힌 유리병을 잡고 제일 먼저 확인한 게 "독"의 표시 유무였대요. "이런저런 불쾌한 일을 당한 아이들에 관한 짧고 훌륭한 이야기를 몇 편 읽은"(p58) 앨리스가 위험을 회피하는 모습이 덴마크 왕자보다 훨씬 합리적이라나요?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으며 전 오늘 막 앨리스를 발견한 느낌이었구요. 월요일부터 곧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을 생각입니다.
2. 도대체 거트루드는 누구인가?
햄릿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챕터 6의 제목 "거트루드"를 보고 이 양반이 도대체 누구지?? 하는 의문을 품은 독자가 혹시 저 뿐일까요? 아니, 제발, 안 돼, 다들 몰랐다고 해주세요. 보바리 씨, 빨간 모자, 드라큘라, 앨리스, 파우스트, 모르는 인물 하나 없이 쭈욱 넘어가다가 거투르드가 나와서 저 잠시 당황했단 말입니다. 햄릿을 읽었음에도 햄릿의 어머니인 그녀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어요. 비중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막 넘치는 인물도 아니잖아요. 끝내주는 괴물들 속에 있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않은가 했지만 어이쿠, 알베르토 망겔이 거트루드의 입장에서 쓴 단편소설 같은 글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더군요. 왕궁 생활이 너무 따분해서 음모론에 빠진 것만 같은 아들(=햄릿)을 둔 어머니 거트루드의 속내에 씁쓸한 한편으로 낄낄 웃음이 터져버렸는걸요. "기름때에 전 침대에서 뒹굴며 타락에 팍팍 삶긴 수고양이 같은 클로디어스가, 곰팡이 핀 이삭 같은 남자가 사랑을 위해 살인을 불사하는 걸 상상하다니 아들 제정신이니?" 하는데야 웃음이 안날 수가 없잖아요. 거트루트가 거의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선택한 결말이 전 솔직히 기억이 안나요. 그래서 햄릿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사였다는 (어디까지나 알베르토 망겔 기준) 그녀의 말도 물론 기억하지 못합니다. 햄릿 재독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휴... 그래요, 도전 갑니다. 아잣!!!
3. 로빈슨 크루소는 누가 봐도 영국 신사?
"그나저나 크루소가 신사인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는 영국 국교회를 믿으며(난파선에 카톨릭 서적이 몇 권 남아 있었지만 챙기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은 사람은 모두 야만인이라고(아니면 식인종이나 흑인이라고) 굳게 믿고, 제국의 국경 밖 황무지에 문명을 개척하는 임무를자신만만하게 떠맡는다(그 황무지가 기껏해야 바람에 닮아빠진 바위 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데도)."(p152) 알베르토 망겔은 작가 입장에서 무지하게 삐딱한 독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독자의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그의 삐딱함이 그렇게 웃기고 흥미진진 할 수가 없어요. 루소가 에밀이 밤마다 읽을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선택한 이유마저 아주아주 삐뚤어진 눈으로 추측하는데 왜죠? 왜 때문에 제가 뼈 맞는 것 같죠? 프라이데이와 크루소 사이에 존재했던 불공정의 기술을 저또한 아무 편견 없이 그리고 저항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 앞에 뼈가 얼얼합니다. 반성하겠어요.
4. 비록 괴로움만 쌓일지라도 삶은 내게 소중하고, 나는 그걸 지킬 것이오.
프랑켄슈타인 말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말합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소망이 생명 창조라고만 생각했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여자를 통하지 않고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p241)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성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에도 전 아무 거부감이 없었고요. 여태 그걸 의식도 안했었나봐요. "정자만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연금술사의 목표요, 가부장의 꿈이자,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지향점이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이브, 피그말리온의 상아상 여자, 제페토의 목각 인형 피노키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메리 셸리와 그 주변인들을 강렬히 매료시켰던 자동인형의 발명도 모두, 남자들이 여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상상했던 결과다. 즉 임신할 수 있는 독점적 능력을 여자들에게서 빼앗고자 했던 것이다."(p241) 아, 진짜요?? 난 왜 몰랐지?? 이브는 그럼 인류 최초의 한부모 가정 자손인건가요??? 아담은 인류 최초의 홀아비도 아니고 이게 뭐야? 뭐지??? 뜬금포 물음표를 쌓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알베르토 망겔과 달리 전 정말 쓰잘데기 없는 생각만 하는 망독자인 것 같아요.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으며 돈키호테가 아닌 시데 아메데 베넹헬리(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저자라고 주장하는 아랍인)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구운몽과 서유기가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 독자들에게 읽힌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참고로 알베르토 망겔은 아주 당당하게 팔선녀의 이름자 해석을 틀려서 한국 독자들을 웃겨줍니다. 책벌레라 불리는 카소본 씨와도 인사를 나눴는데요. 그가 한 말은 아니지만 "서로의 애정이 동등할 수 없다면 / 더 사랑하는 사람이 나이기를" 이라는 문구 앞에 가슴이 찡 했습니다. 나이를 먹어 이기적이 된 탓일까요? 이제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너이기를 바라는 나만 남았네요;; 각 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 속 인물로 그 나라를 정의해볼 수 있다는데 저랑 같이 고민 좀 해주시겠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은 동화 속 인물은 대체 누구인가요? 콩쥐?? 가만 생각하면 콩쥐도 엄청 초인 아닌가요??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들에겐 괴물 같은 존재들이 너무나 필요한가 봅니다. 문학 작품 속 이렇게나 많은 괴물들이 존재하는 걸 보면 말예요. 네모 선장은 (저희 세대는 나디아부터 떠올리지만 실은 해저 2만리의 등장인물) 1만 2천권의 장서가 꽂힌 서재에서 정적과 고독이 넘치는 독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하아아안참 못미치지만 대신에 제 책장에는 알베르토 망겔의 <끝내주는 괴물들>이 있다 이겁니다.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저도 소박한 책장 아래 올 여름 고전 속의 괴물 같은 캐릭터들과 재회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