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최석규 지음 / 좋은땅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소설에 관심 있는 분. 합평/독서토론/작법 공부하실 분. 나이/성별/직업 제한 없음. 월 2회 오프라인 모임. 회비..."

술장사, 여자 장사, 하우스 관리, 클럽 기도, 현재의 심부름 센터까지 곰치는 세상의 거친 일들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교도소에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세상 사람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런 그도 한때는 문학 소년이었다. 중고 책방을 풀방구리 드나들 듯 했고 미로 같은 도서관에서 시간을 잃어버리듯 책도 읽었다. 문예반에 들어가 글도 썼다. 그가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는 양장본의 희랍인 조르바는 글짓기 부상으로 받은 책이었다. 일생 처음으로 받아보는 상이었고 물론 마지막 상이기도 했다. 벌써 삼십 년도 더 전의 일로 현재 그는 불륜남녀의 뒤를 캐고 있는 중이지만. 어쩌다 갑자기 책이 생각났는지, 또 어쩌다 갑자기 "넌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으냐?" 던 은사의 질문이 생각났는지, 그 연이은 기억의 물꼬를 트며 곰치는 다시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쓴다. 문학으로 가는 문을 연다. 문학에 젖어가는 곰치를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했다. 새로운 꿈을 꾸기에 남은 시간은 늘 모자라다지만(p23) 그가 발 디딘 세상 말고 꿈꾸는 세상에서 그가 더욱 자유롭기를 바래본다.


할슈타트에서 온 절대 무공

"나"의 유일한 취미는 도참사상을 공부하는 일이다. 말더듬이에 돈도 못벌고 여자친구도 없고 (한 때) 존경했던 형에게는 삥을 뜯기는 인생에 유일한 희망은 <천지량해법>, 도참사상의 바이블이 말하는 대로 끊임없이 쌓은 공덕으로 내 몫의 기를 가진 자를 만나는 일일테다. 그를 만나 두 마음의 합일이 이루어지면 "나"는 다시 태어나 루저 탈출! 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나"는 그 대상이 태권도 하는 동네 형이라고 생각했다. 코나 파고 앉아서 잘 되면 영업 이사 자리 하나 줄게! 호언장담하는 사기꾼 같은 꼬라지를 보면 가당치도 않지만. 쯧쯧, 빚이나 갚을 것이지;; 형에게 돈은 언제 갚을 거냐고 묻다가 된통 무시 당하고 캣맘 혜영과 함께 고양이 뒤치다거리를 하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중 마침내 그의 앞에 절대무공을 지녔다 자부하는 병인신 법사가 나타난다. 도참사상에서 말한 내 반쪽이 틀림없다며 "나"는 병인신 법사를 대신해 쌈짓돈을 풀어 무술대회를 개최하는데... "내" 인생 드디어 서광이 비칠 것인가!! 엉뚱한 시작, 엉뚱한 전개, 엉뚱한 결말인데 이상하게 로맨틱, 성공적이란 말이지. 여덟 개의 단편 중 절대 무공이 곰치 다음으로 마음에 들었다. "나"와 혜영, 고양이들의 밤이 절대 무공 속에 영원히 무사하기를.


회전초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얼마 안되는 돈이라도 벌려던 아내는 갑질하는 손님을 앞에 두고 유산을 했고 정신병을 얻었으며 책을 싸안고 방에 틀어박히는가 싶더니 이제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집을 나간 것이다. 머리 끄덩이만 안잡았지 저주와 다름없는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만정 다 떨어진 줄만 알았는데 사라진 아내는 처음에는 걱정을 그 다음엔 질투를 안겨준다. 바람이 났을지 모른다니. 환락가의 어느 모텔 침대에서 딴놈과 아내가 딴 남자와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니. 아내의 뒤를 캔 심부름센터의 사장 K의 확신 앞에서 그러나 "나"는 담담히 묻는다. "아내를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p97)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예술가를 꿈꿨던 아내. 밤 9시가 다 되도록 소개팅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남자에게 허물없이 당신 덕택에 내 소설의 끝을 낼 수 있었다며 고맙다던 아내. 그 아내가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k는 그런 아내의 모습을 찍어 "나"에게 보내지만 나에게는 이제 아무 말도 의미가 없을 듯 하다. 이태원, 경리단길, 카페 글 쓰기 좋은 날, 어느 밤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여전한 그곳의 풍경. 아내도 집을 나가있는 내내 물었을까? 그이를 언제쯤 볼 수 있겠느냐고? 두 사람의 재회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 서부 영화를 보면 총잡이 뒤에서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먼지 같은 나무뭉치가 있는데 그 식물의 이름이 회전초다. 죽은 나뭇가지가 아니라 씨앗을 품고 번식을 하려는 생명체였단다. 바람에 떠밀리며 공 같은 모양으로 살아가고 굴러가는 정말 우리네 인생 같네. 부평초 같은 인생만 알다가 회전초 같은 인생을 보니 어쩐지 새로웠다.

 

 


 

단편 <할슈타일에서 온 절대무공> 때문에 난 이 책이 일종의 장르문학 계열일거라 생각했었다. 책을 펼치고 곰치의 일생을 보노라니 기대했던 판타지가 어디에도 없어서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완독한지 좀 됐다. 한 두어달쯤??ㅠㅠ) 그러나 생각해 보니 일평생 깡패로 내 인생 남의 인생 깽판이나 치고 살던 남자가 문학으로 회귀한다니 이보다 더 판타지 같은 얘기도 없겠다 싶은거다. 그러면서 곰치의 이야기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어쩐지 다시 읽고파, 단편이기도 해서 재독을 했고 다음 이야기, 또 다음 이야기로 전진하며 계속해 최석규 작가님의 글을 만날 수 있었다. 직장 생활 5년 차, 잔업을 위해 회사로 향하던 늦은 밤에 문득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다는 작가님. 글 쓰는 삶을 시작한 후에도 삼시세끼 글밥을 짓기 위해선 계속해 월급쟁이 생활을 해야만 하신단다. 작가님 글만 쓰실 수 있게 얼른 돈벼락 좀 맞으셔으면. 단편들이 하나 빠짐없이 다 좋아서 또 다 아쉬웠다. 토막토막 여운이 긴 여덟 편의 이야기 말고도 장편소설로도 얼른 작가님을 만나고파서. 살아본 적 없는 삶과 가보지 못한 여러 갈래의 길들을 만날 수 있어 책이 좋다. 같은 이유로 최석규 작가의 책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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