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 맛, 향기, 빛깔에 스며든 인문주의의 역사
권은중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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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2005년에 기자 생활을 그만둔 권은중 작가는 이탈리아로 날아간다. 기자직에 있을 때에는 주말은커녕 추석과 설날 같은 명절에도 당일 하루 밖에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잦은 야근과 술자리는 말해 뭣하랴.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싶었지만 나이 마흔쯤 되니 만사가 피곤한 거다. 어쩌다 쉬는 날이면 끼니 때울 생각으로 요리를 만들었다. 조물조물 주물주물 만두도 빚고 생면도 친다. 남들은 요리가 귀찮다는데 작가님은 하나둘씩 하다 보니 오히려 재미가 난다. 바닷가나 숲길을 걷는 것마냥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도 같다. 나한텐 요리가 일종의 심리 치료구나, 미라클!!! 깨달음을 얻은 작가님은 날아간다. 어디로? 이탈리아 피에몬테로!!!

당황하지 말자. 제목은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이지만 실상 작가가 요리 유학을 간 곳은 피에몬테다. 유학이 끝나고 실습을 한 곳이 볼로냐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인턴 생활은 또 토리노에서 했다. 그럼 볼로냐엔 왜 갔느냐. 여행하러 ㅋㅋㅋ 공부하러 간 곳 말고 일하러 간 곳 말고 여행하러 간 곳이 운명처럼 좋았다는 이야기에 시작부터 호감 퐁퐁. 내 호감과는 별개로 물론 작가님은 매우 걱정 중이다. 모교의 동기들이나 교수님들이 이 책을 보면 어쩐담. "너는 피에몬테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배웠는데 볼로냐 책부터 쓰냐?"(p319) 허물없이 지청구를 놓는대도 어쩔 수 없지. 미식의 수도, 현자의 도시, 미녀의 도시 볼로냐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으니 말이다.


1. 미식의 도시 볼로냐

치즈, 파스타(생면), 돼지, 포도주, 기타등등. 미식의 도시 볼로냐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토르텔리니에 이야기였다. 토르텔리니에는 아주 작게 빚은 만두형 파스타인데 이 음식에 얽힌 이야기가 아주 재미났던 것이다. 인간 여인으로 변신한 비너스가 카스텔프랑코 에밀리아라는 작은 도시의 여관에 묵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여인이 너무나 아름답다보니 여관 주인이 욕망을 참지 못하고 열쇠 구멍으로 여신을 훔쳐보는데 어쩌다 그의 눈에 딱 들어온 여신의 배꼽이 (당연한 얘기지만) 감탄이 나올만큼 어여뻤다는 것이다. 이에 여관 주인이 여인의 아름다운 배꼽을 떠올리며 파스타를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토르텔리니란다. 중세 시대 인세 유람을 나왔다 배꼽을 들킨 여신이라니 ㅋㅋㅋㅋ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지만 만두 요리 하나에도 여신을 불러들이는 이탈리아인들의 스케일에 빵 터졌다고나 할까. 참고로 이 전설을 두고 볼로냐와 모데나가 한때 서로가 토르텔리니의 원조라고 다툰 적도 있다고 한다.

+ 뜬금포 이야기지만 토마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이탈리아지만 토마토 생산량 1위는 중국이라고 한다. 믿을 수 없어, 미국 아니야???

2. 지식의 도시 볼로냐

이탈리아의 지리적 중심에 위치한 볼로냐는 긴 세월 외세의 침략에 맞서야 했다.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교황과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에 끊임없이 수탈 당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며 지치거나 포기하거나 복종할 법도 했건만 볼로냐인들은 포기를 몰랐던 것 같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공동체적 대학을 만들었으며, 유럽 최초로 자유도시를 건설했고, 노예제를 거부하며 자유정신을 지켜나간다. 볼로냐 대학교의 교호가 "모든 대학의 모교"인 것은 사유재산과 공화정이라는 틀이 볼로냐의 대학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근대의학지식 또한 다름아닌 볼로냐의 대학에서 불을 밝히는데 그 유명한 해부학 극장이 여전히 볼로냐 시립 도서관에 남아있다. 대학이라는 뜻의 유니버시티의 기원이 그 시절 학생들이 자신의 모임을 부르던 유니베르시타스(공동체)에 기원한 것이라는데 명망있는 교수를 고용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먹고 자고 공부했던 볼로냐의 옛 학생들을 상상하니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다. 물론 실제의 대학 생활에는 왕과 교황과 지식인들의 다툼으로 인한 피바람이 예고되지만 말이다. 법의 부활은 종교가 아닌 세속의 권리에 차츰 힘을 부여하고 이는 근세를 밝히는 한 줄기 여명이 된다. 그 여명의 중심에 볼로냐의 대학이 있다고 생각하면 와.. 이거 정말 멋진데?? 참고로 르네상스와 함께 근대로 넘어가는 효시가 되는 작품 신곡의 작가 단테도 볼로냐 대학 출신이다. 졸업은 못한 모양이라는데 맞나?? 아닌가?? 긴가민가;;

3. 미녀의 도시 볼로냐

1897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은 여성의 학위를 반대하는 남학생과 졸업생들의 시위에 직면한다. 프랑스의 남자 과학자들은 노벨 수상자 마리 퀴리의 과학아카데미 입성을 막기 위해 분투했고 (불행히도) 성공한다. 반면 볼로냐는 13세기에 여성 박사와 여성 교수가 사회에 진출해 이름을 떨쳤다. (서프라이즈!!) 베티시아 고차디니는 1236년 볼로냐 법대를 졸업해 강의를 했다. 맨처음에는 남장을 하고 수업을 했다지만 시기를 생각하면 이는 얼마나 급진적인 일인가. 안나 만졸리니는 18세기에 볼로냐 대학을 졸업했고 누구 보란듯이 (정확히는 남자 과학자?) 남성 생식기를 해부하고 연구한다. 세계 최초의 여성 물리학자 라우라와 여성 최초로 여성 누드를 그린 라비니아 폰타나 등도 모두 볼로냐 대학을 졸업했다. 남녀 차별 및 외국인 차별을 최대한 배제한 볼로냐의 대학들이 배출한 거출한 여인들의 존재가 볼로냐를 미녀들의 도시, 아니,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로 각인시킨다+ 라우나 폰타나는 여성이면서 여성의 누드를 그렸다고 비판 받았단다. 뭔 개소리인가 싶지만 시대 감안 이해를 해야겠지??

요리를 배우러 떠난 이탈리아에서 요리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고 느끼고 돌아온 권은중 작가. 코로나로 인해 막힌 하늘길을 뚫고 다시금 이탈리아로 날아갈 날을 꿈꾼다. 너무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 요리사의 길에서 잠깐 물러나 이번엔 와인에 대한 꿈을 구상 중이다. 그와 함께 돌아올 또다른 볼로냐, 어쩌면 그보다 영역을 넓힌 이탈리아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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