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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을 부탁해
헤이즐 프라이어 지음, 김문주 옮김 / 미래타임즈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미래타임즈 지원 도서입니다
스코틀랜드 에어셔, 발라하이즈. 맥크리디 부인은 지금...
올해 86세가가 된 맥크리디 부인은 티비에서 방영 중인 <곤경에 빠진 펭귄>에 홀딱 빠졌습니다.
"그래, 결심했어! 내 전재산을 펭귄 프로젝트에 물려주는 거야." 부동산 거부였던 바람둥이 남편과 이혼하며 상당한 위자료를 받은데다 그녀 자신도 투자의 귀재였던 탓에 그간 일궈논 재산이 상당합니다. 내 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 하리오. 일가부지 하나 없는 외톨박이인 줄 알았을 땐 떳떳하게도 생각했지만요, 아뿔싸. 어려서 입양 갔다 마흔 줄에 사망한 아들에게 자식이 있었다네요.그래도 핏줄이라는데 찜찜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던 맥크리디 부인은 패트릭이라는 이름의 손자에게 "내가 네 할미다." 편지 한 통 날린 후 만남을 기약하게 되요. 손자가 얼마나 쓰레기통 같은 환경에서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지도 모르고서 말이죠.
영국, 볼턴, 패트릭은 지금...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갔습니다. 패트릭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컸어요. 조금 더 커서는 엄마가 자살을 했구요. 입양 가정을 전전하며 외롭고 자랐는데 다자란 지금 난데없이 할머니가 계시다네요? 양친이 모두 떠난 어렸던 그 시절이면 또 몰라, 인제와서?? 엄마를 버린 원수 같은 남자의 모친, 마지못해 약속을 잡은 패트릭도 할머니에 대한 기대라곤 없었지만요. 첫인상에 대한 실망감은 아마 맥크리디 부인이 더 컸을 거에요. 패트릭이 아주 예의를 모르는 젊은이는 아닌데 하필이면 때가 좋지 않았거든요. 아니 글쎄 할머니를 만나기 직전에 바람난 여친이 새남자친구와 데이트 하는 장면을 목격했지 뭡니까. 멘탈이 나가버린 패트릭은 엉망인 낡고 허름한 아파트를 치울 생각도 안한 채 손님을 맞아요. 그것도 대마초를 뻑뻑 피우면서 말이죠.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내 손주라니..... 이 새끼한텐 단돈 1페니도 남기지 않겠어.' 거대한 실망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 맥크리디 부인은 곧장 남극행을 결정합니다. "곧 그곳을 방문할테니 내 자리를 마련해줘요. 그대들 연구가 마음에 들면 전재산을 기부하겠소." 과학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냐구요? 결.사.반.대. 오지마! 오지마! 기부금만 감사히 받겠나이다~ 라는군요.
남극, 로켓섬, 펭귄연구소는 지금...
소통불가, 고집불통, 맥크리디 부인은 과학자들이야 반대를 하든말든 든든하게 짐을 꾸려 남극으로 떠납니다. 선홍색 다이노썸 재킷에 두번째로 좋아하는 선홍색 핸드백을 들고 남극용 지팡이를 휘두르며 찾아온 맥크리디 부인. 마이크와 테리, 디트리히, 세 명의 과학자들이 얼마나 우왕자왕하고 분노했을지는 말씀 안드려도 아시겠죠? 반면 맥크리디 부인의 만족감은 생에 그 어느 때보다 컸는데요. 생명의 활력으로 넘쳐나는 펭귄 떼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막같은 안구 저 안쪽이 습윤해질 지경이었어요.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냐며 속으로 벅벅 이를 가는 과학자들과 돈 앞에 장사없다는 맥크리디 부인은 그때부터 치열한 대결에 들어갑니다. 맥크리디 부인을 어떻게든 떠나보내려는 과학자 일동 VS 펭귄에 흠뻑 빠져 3주간의 남극 생활을 즐기려는 맥크리디 부인. 과연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동시에 뒤늦게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패트릭에게 도착한 맥크리디 부인의 일기 속엔 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었을까요?
<펭귄을 부탁해> 방긋 짓는 미소 한 번이면 뭇 남자들의 마음을 봄눈처럼 녹일 수 있었던 15세의 소녀가 걍팍하고 메마른 할머니로 나이를 먹고 남극 사나이들의 적의를 대면하는 86세가 되기까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의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부터 2012년 남극의 봄속을 오가는 소동을 벌이기까지.베로니카와 맥크리디 부인이라는 너무 다른 호칭 사이에서 터지는 이야기의 꽃망울이 슬프고 안타깝고 감동적인 책이었어요. 펭귄이 다하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랑스런 펭귄 이상으로 사랑스런 사람들이 많이많이 등장해서 좋았습니다. 가독성이 날아갈 것 같아서 넘어가는 페이지를 꽉 붙들고 읽으셔야해요.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BBC 라디오 북클럽선정도서였다는 게 이해가 됩니다. 무더워진 여름에 걸맞는 남극의 풍경 속에서 펭귄을 보며 시원한 독서해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