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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평점 :

푸른숲 지원 도서입니다
개꿈, 개떡, 개망나니, 개수작... 이런 단어들 앞에 붙은 개는 멍멍 짖는 개가 아니래요. "야생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이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 개래요. 저는 저 "개"가 멍멍 "개"랑 다른 줄을 모르고 왜 죄없는 개를 비하의 의미로 쓰냐며 분노했다니까요. 개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어느 티비 프로그램 이름처럼 개는 훌륭한데, 괜히 개한테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개 어쩌고 하는 요즘 청소년들의 말버릇도 참 싫어했는데요. 그 개가 아니라니 오해해서 미안해요.
오늘 만난 개 보리는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많은 개 같아요. 내가 사람이고 보리가 개라서 일면식도 없지만 괜히 미안해지는 그런 훌륭한 개 있잖아요. 보리는 진돗개구요, 수놈이에요. 개로 태어나서 고향 이름은 모르지만 그곳 흙냄새와 햇볕 냄새, 엄마와 형제들의 젖냄새는 기억한대요. 보리네 엄마는 다섯 마리 새끼를 낳고 얼마 안되서 주인 할머니한테 매를 엄청 맞았어요. 보리 엄마가 새끼를 처음 낳아서 미숙한데가 많다 보니 첫째를 깔고 앉았는데요. 그 바람에 다리가 부러진 약한 녀석은 비실비실 앓았고 보다 못한 보리 엄마가 새끼를 삼키거든요. 할머니는 제 새끼 잡아먹는다고 몹쓸 똥개놈 아주 죽어라고 타작을 했지만 보리는 생각이 달라요. 엄마가 맏형을 삼킨 건 맏형을 세상에 내보내기엔 너무 일러서였다고, 아니면 내보낸 것이 잘못이거나요. 개의 한 세상을 약한 몸으로 비비면서 살아갈 게 가여워서 엄마는 엄마 뱃속으로 맏형을 다시 품은 거래요. 진실이야 뭐 누가 알겠나요. 확실한 건 그 후 엄마와 막내가 개장수 철망에 실려서 팔려 갔다는 거에요. 저는 눈물이 쭐쭐 나서 아주 혼이 났답니다.
보리의 고향땅이 저수지 수몰 지역이었기 때문에 보리는 할머니의 둘째 아들네로 이사를 가요. 새주인님 집에는 아이가 둘 있었는데요.키가 크고 똑부러지는 5학년 영이와 젖냄새가 달큰하고 똥까지 맛있는(이럴 수가!) 두 돌 영수에요.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사는 건 개들한테 큰 복이라더니 보리는 새집에서 영이의 뒤를 졸졸 쫓아 학교도 다니구요. 영수의 뒤통수 가마에서 나는 햇볕 냄새를 맡으며 아주 행복해해요. 한번은 어부인 주인님 배에 몰래 올라타서 바다에 나가기도 했는데 그 순간의 기쁨은 영영 못잊을 것 같대요. 아이들을 등교시키며 뱀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고 아이들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개와 대결도 벌이는 등 보리의 하루는, 개의 일생은, 우리의 눈 밖에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속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으로 전개되는 거더라구요.
큰 물이 들어온다며 바다에 나간 주인님이 죽어요. 보리네 가족들은 또다시 짐을 꾸리지만 그 가족 안에 보리가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개를 잡아먹고 팔고 남에게 주고 버리는 숱한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보리는 계속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떠나가는 아이들의 뒤를 쫓아 큰길까지 달려나가 인사할 수 있었까요? 정말이지 훌륭한 개 보리를 보며, 부끄러워서 울고 예뻐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그럼에도 대견해서 웃음이 났어요. 이러면 개만 불쌍하냐 소는 안불쌍하고 돼지는 안불쌍하고 닭은 뭐 어쩌라는 거냐 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저도, 네, 그 말씀 아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마음은 그래요.
"사람 곁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개의 고통은 크고 슬픔은 깊다"(p16)고 말하는 보리. 그렇지만 "그 고통과 슬픔보다 개로 태어나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자랑을 먼저 말하려 한다"(p16)는 보리. 보리는 사람들이 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저도 다 못알아들은게 있으면 어쩌나 안절부절해요. 그래서 꼭 한 번 더 재독을 해보려구요. 할 수 있다면 개정 전의 작품으로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여러분들도 어디선가 보리를 만나게 된다면 꼬옥 보리의 말을 들어봐주세요.
한줄평 : 개훌륭한 책! 또 한줄평 : 안읽었으면 개후회할 뻔! 접두사 개 말고 보리 같이 멋진 "개"에요. 듣기에 안고운 말이긴 하지만 멍멍, 오늘은 예쁘게 봐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