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5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평점 :
현대지성 지원 도서입니다
그거 아세요? 고대 그리스에서는요. 아테네식 달력으로 보자면 3일에 한번꼴로 잔치가 열렸대요. 그중 봄에 열리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유명했는데요. 그 이유는 세 명의 극작가를 선발해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풍자극으로 경연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해도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가 디오니소스 축제 때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이피게네이아> 등의 작품을 올리고 상도 받고 그랬대요. 몇날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연극 경연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볼거리였을까요? 3일에 한번씩 놀자판이 벌어진다니 아아 그리스는 역시 천국이었어! 제가 그리스로마 신화에 푹 빠졌던 이유가 있다니까요. 신화 곳곳에서 넘쳐나는 여유로움을 이미 느끼고 있었던거죠!
놀거리로 미어터졌던 그리스에서도 단연코 화제였던 비극과 희극, 서사시, 서정시를 학문이자 철학으로 길어 올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가정교사였던 전설 같은 인물이시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서 "플롯, 스토리텔링, 모방, 비극, 에피소드, 카타르시스" 등을 설명하구요. 비극이 서사시보다 더욱 우월한 이유를 얘기하면서 비극이 비극답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낱낱이 분석하고 알려줍니다. 플라톤과는 반대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우월성을 인정하며 두 작품으로 시학의 사례를 설명할 때가 많아 흥미진진했어요. 그 시절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성경 같은 존재였다는 얘기에 뿌듯뿌듯, 두 작품을 다 좋아하는 독자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호감까지 무한상승하고야 말았습니다.
시학은 비극과 서사시의 1권, 희극의 2권으로 쓰여졌는데 현재는 1권만 전해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책이 아주 얇습니다. 역자 해제를 빼면 116 페이지. 시학이라고 아주 시집 같은 두께에요. 진지하게 농담 중, 웃어주세요 (。・∀・)ノ゙시학과 서사시 중에서는 비극을 중점적으로 해서 설명하는데요. 책의 말미에 가면 어째서 비극을 더 우위에 놓았는지 알게 됩니다. 시는 무엇일까요? 좋은 시가 되려면 어떤 플롯으로 구성을 해야 할까요? 플롯과 에피소드는 어떻게 구분하죠? 어째서 희극은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모방하고 비극은 나은 사람을 모방하게 된 걸까요? 무얼 비극이라 하지요?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과 다른 일 뒤에 일어나는 일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요? 비극적인 결말이 불행하다고 해서 작가를 비난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적합한 결말이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판별하면 좋죠? 비극과 서사시의 고유한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공포와 연민에서 인간은 어떻게 카타르시스를 찾아낼까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어째서 이렇게 재미날까요?!!!
비극 혹은 서사시 뿐만 아니라 문학 전반으로 확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에피소드의 수도 많아졌다. 그 밖의 것들과 그것들이 더해진 과정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버거운 일이기 때문에 읽은 것으로 해두자."(p22)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지만요. 안타깝게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사람들이 보거나 들었던 비극과 서사시가 우리한테는 익숙하지 않잖아요. 정말로 읽은 것으로만 하고 넘어갔으면 도대체 내가 뭘 읽는 건지를 몰라서 많이 해맸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역자님께서 각종 상세한 주석으로 비극과 서사시의 내용을 알려주셔서 읽은 것으로 두지 않고 읽은 상태로 만든 후에 넘어갈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본문보다 주석의 글자 수가 더 많은 것 같다는 함정만 감수한다면 그리스로마 신화의 바탕이 된 이야기들을 이불처럼 깔아둔 책이라 의외로 포근(?) 익숙(?) 따뜻한(?) 감상 시간을 가지실 수 있을 거에요. 우리 다 그리스로마 신화 한 권 정도는 읽었잖아요. 뒤돌아보지 말라는 약속 하나를 어겨서 영영 아내를 잃어버릴 뻔한 오르페우스, 아가멤논의 딸로 아르테미스의 제물로 바쳐진 이피케네이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아이깁토스의 아들들을 죽인 다나오스의 딸들 등등. 것봐요. 다 아는 인물들이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전설 같은 시대에 쓰인 책을, 2021년의 제가 읽었고 소개하고 있단 사실이 신기하고 두근두근 합니다. 고전을 만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감정이지만 요. 이런 순간이 참 경이롭잖아요. 올해도 제 고전 사랑은 쭈욱 계속됩니다. (^∀^●)ノ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