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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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책방 지원 도서입니다

엄마와 엄마와 동거 중인 라일 아저씨는 한 때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먼저 정신을 차린 라일 아저씨의 도움으로 이제는 두 사람 다 마약을 하지 않고 있고요. 대신에 마약 판매일을 합니다. 영화를 보러 간다는 둥 데이트라 애들이랑은 같이 못간다는 둥 애써 숨겨보지만 귀신 같은 엘리의 눈을 속일 수는 없죠. 잔디깎이 풀밭이에 들어 있는 헤로인 봉지쯤 눈치 챈 지 오래라구요. 무엇보다 엘리는 아주 어려서부터 보모인 슬림 할아버지한테 교육 받았는걸요. "세세한 것들을 놓치지 말아라. 그럼 그 시간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다"(p128) 혹은 "꼭 구체적으로 써야 된다.. 상세하게. 구체적인 내용을 전부 다 집어넣어. 일상생활을 시시콜콜하게 적어주면 녀석들이 고마워해, 자기들은 이제 그렇게 못 사니까. 너희 학교에 화끈한 선생님이 있으면, 그 선생의 머리는 어떻고, 다리는 어떻게 생겼는지, 그 선생이 점심으로 뭘 먹는지. 기하학 선생이면, 칠판에 망할 삼각형을 어떻게 그리는지. 어제 과자 사 먹으러 가게에 갔으면, 자전거를 타고 갔는지, 걸어서 갔는지, 가는 길에 무지개를 봤는지. 눈깔 사탕을 샀는지, 아니면 비스킷? 캐러멜? 무슨 소린지 알겠지? 구체적으로 쓰란 말이다."(p109)

슬림 할아버지의 말씀을 습자지처럼 빨아 들인 엘리의 성장기는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두껍습니다. 670 페이지. 거기다 이야기 구석구석 더께가 앉아 가루비누 팍팍 풀어 보글보글 삶고 찌고 방망이로 어지간히 두들겨 햇볕에 널어 말리지 않으면 참 뽀송뽀송해지기가 힘든 류의 책이에요. 엘리의 이웃에 살며 어린 시절부터 보살펴준 슬림 할아버지는 택시 기사를 살해에 감방에 갇혔다가 두 번이나 탈옥한 적이 있는 죄수구요. 아버지는 자식들을 차 뒤에 태우고 달밤에 댐으로 직진했단 말이에요. 덕분에 죽다 살아난 엘리의 형은 선택적 함구증이 와서 일체 말을 안합니다. 엘리는 오로지 자신의 뛰어난 관찰력과 오거스트가 허공에 끄적이는 손가락 메모로 그와 소통하지요. 이후 알콜 중독자의 길로 들어선 아버지는 기운이 있을 땐 책을 읽고 기운이 없을 땐 엎어져 주정하는 삶에 길에 들어서 변기에 대고 오줌도 제대로 못싸요. 남편과 헤어져 새삶을 찾는다는 게 하필이면 마약 중독자와 동거한 엄마는 마약쟁이가 됐구요. 그나마 개과천선한 게 마약판매상이니 제발 좀, 애들은 가라! 이곳이야말로 노키즌 구역이 되어야 마땅할 장소 아닌가요?

애는 애라서 어떻게든 행복할만한 거리들을 찾아 웃으며 살려고 하는데 타이터스 브로즈라고 이름부터가 범죄자 쀨인 양아치가 조폭 같은 부하 하나 달고 와서는 라일 아저씨도 끌고 가고 엘리의 손가락도 잘라 버려요. 뽀송뽀송이 뭔가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수록 더욱 구질구질 해지는 엘리의 삶이 딱하고 짠해서 책을 계속 읽기가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노무 골목, 저노무 인간들 빡빡 빨거나 빡빡 쓸어 버리고 엘리도 오거스트도 그리고 다른 많은 아이들도 평화롭게 살 게 해주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슬럼가 정말 너무 무서움요. 아참. 흥분해서 쓰다 보니 한 가지 빼먹었는데 슬림 할아버지가 말하는 '시시콜콜하게 적어주면 고마워하는 그 녀석들은" 바로 범죄자들입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편지 한 장 못받을 짠한 죄수들의 사정을 알고 있던 슬림 할아버지가 엘리의 펜팔 친구로 교도소 아저씨를 점찍어줬다는 사실! 여기 누가 노키즈존 팻말 좀 붙여줘요. 제발요. 플리즈~ (○` 3′○)

말하기 좋아하는 이야기꾼 엘리, 범죄를 다루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은 엘리, 신경쇠약에 걸린 남자와 마약쟁이와 마약쟁이인데다 배신자이며 가정폭력범이기까지한 남자마저 사랑하는 엄마를 용서하는 엘리, 시간을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특별하고도 신비한 형 오거스트를 사랑하는 엘리, 두 다리를 벌벌 떨며 오줌이라도 지릴 것처럼 겁먹는 와중에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두 팔을 벌리는 엘리, 어른들이 띄엄띄엄 알려주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질려버린 엘리, 그래서 구체적으로 제 소년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엘리, 연상의 기자 케이틀린 스파이스를 사랑해 빅뱅과도 같은 첫키스를 하게 된 엘리. 670 페이지 속 다양한 사건 어쩌면 모험들 속에서 다른 독자들은 또 어떤 엘리를 발견하게 됐을지가 궁금합니다. 저한테는 많은 부분이 오리무중, 수수께기 같았던 책이기도 해서요. 엘리와 오거스트는 정말로 세상 저편의 문을 열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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