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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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지원 도서입니다

<어스시의 마법사>, <바람의 열두 방향>,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까지 소장하고 있는 책이 열 권이 넘는데 정작 르 귄의 책을 읽어 본 건 이 책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가 처음이에요. 더 미루지 말고 어떻게든 읽으라고 게으른 독자의 취향을 저격해서 쓴 책만 같은데요. 실은 르 귄이 어딘가에서 말하거나 올리거나 작성한 조각글들을 수집한 산문집이었어요. 문학상을 받을 때엔 수상소감을, 문학제 기념행사에서는 축하연설을, 학교에서는 강연을 하기 위해 글을 썼구요. 출판사에서 의뢰를 받아 쓴 책 서문의 양도 상당했습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르 귄이 개인적으로 읽은 책의 서평들이었어요. 다수 서평이 맨체스터 가디언에 실렸으니 아주 사적인 독서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으나 악평까진 아니어도 어리둥절하거나 취향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가감없이 표현을 했더라구요. 르 귄의 서평을 읽으며 내 서평 구려병에 걸릴 뻔 했는데요. 생각해 보니 글 쓰는 일이 업인 세계적인 작가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게 외려 건방진 일 같더라구요. 저는 아마추어니까요. 못 쓰는 게 당연한 겁니다. 헹!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겠다"는 제목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가 아마 제일 궁금하실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동일한 문장이 "책의 죽음" 편에서 등장하는데요. "우리 손끝에 달린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 읽기를 익힌 고집스럽고 내구력 있는 소수가 오랫동안 그러했듯 앞으로도 계속 책을 읽으리라 믿는다. 종이든 화면이든,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하기에, 그리고 막연하다 해도 그 공유가 중요하다고 느끼기에, 어떻게 해서든 책이 다음 세대에도 존재하도록 만들고야 말 것이다."(p183) 이 주제로는 사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안읽는 사람들이 더 많이 걱정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학생일 때에도 요즘 애들은 책을 안읽는다,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고 염려하는 어른들이 많았어요. 오죽하면 방송국에서 <책을 읽읍시다> 같은 프로그램을 편성해서 전국에 어린이 도서관들을 열어 줄 정도였으니까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하다못해 대학생이 된 후에도 언론의 걱정은 여전했습니다. 거의 매년 설문 조사 결과가 등장하고 이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전문가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독서 인구가 폭발했다는 얘기 같은 건 살아생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남은 인생, 저는 여전하게 책을 읽겠지만 여전하게 많은 사람들이 책의 존재 가능성을 걱정하겠지요? 그런데 르 귄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독서 인구의 문제를 얘기하더라구요.

"왜 지금 우리는 모두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p124)/ "독서가 한물갔다고 독자가 죽을까?"(p174) "읽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파였어요. 엘리트가 아니라, 그냥 소수파에요."(p197) 수월하게 읽고 쓰는 사람들이 지금 시대에나 흔하지 해방 후 대한민국만 해도 문맹률이 얼마나 높았나요. 지금은 아니지만 저희 외할머니도 저 초등학생 때가지만해도 까막눈이셨어요. "책의 세기라고 불렀던 과거, 많은 사람이 소설과 시를 읽고 즐기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때라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졸업 후까지 독서에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낼 수 있었겠는가? 그 시절엔 대부분의 미국인이 힘들게 일했고 오래 일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은 늘 있었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언제나 적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그 숫자를 모르는 건, 그때는 걱정할 설문조사 결과가 없었기 때문이다."(p131) 책을 읽는 사람이 다수였던 시절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는데 전 왜 과거에 더 많은 독자가 더 많은 책들을 섭렵하며 책을 사랑했을 거란 환상을 가졌던걸까요? 모든 학생들이 책 한 권쯤 심장에 품고 사는 그런 시절이 꼭 있었던 것만 같아서 줄어드는 독서 인구를 참 쓸데 없이도 걱정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소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잖아요. 우리 앞으로도 열심히 읽어요! 갖가지 취향의 책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 읽는 독자로 남아봅시다!

+ 르 귄도 저처럼 역사, 철학, 인문서 할 것 없이 모든 책을 소설처럼 읽는대요. 르 귄이 소설처럼 읽는 것과 저의 소설처럼 읽는 일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요. 전 장르불문 책 속에서 인물과 사건과 플롯의 순을 땁니다. 물꽂이 하듯 머릿속에 순을 심고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책을 읽는데 뿌리와 새싹이 넘실넘실 잘 돋아나는 책은 인문서에 두꺼워도 술술 읽구요. 그렇지 않은 책은 소설이라도 영 속도를 못내는 편이에요. 얼마전에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 대표적인 예. 상상의 여지도 없고 사건도 없고 말만 있어서 읽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유익한 책이니 꼭 읽어 보세요!! (나만 괴로울 순 없어 ヾ(≧へ≦)〃)

+ 르 귄이 서문을 쓰는 책, 서평을 쓴 책 중 다수가 미국, 캐나다, 영국의 책들인데 그 중 아시아인 작가의 책은 단 한 권 뿐이더라구요. 장르에 편파적인 여러 시선들, 여성 작가들에 대한 소외와 무관심에 대해 르 귄은 많은 우려를 표현했고 활동하는 내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책에도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정말 많았거든요. 동시에 궁금해지더라구요. 르 귄의 시대에 르 귄과 같은 영미 문화권에서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아시아인들은 없었나요? 백인 남성 작가, 백인 여성 작가 외에는 정말 제대로 쓰는 아시아인 작가가 없었던 게 맞나요? 여러 문학시상식에서 여성 작가가 두드러지지 못한 이유가 문학 원로들의 배척 때문이었다는 르 귄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러 출판사에서 남성 작가들의 책은 재판하면서 여성 작가들의 책은 절판시킨다는 의견도 사실이라면 혹시 아시아인이라 배척받은 작가, 절판 당한 작가도 있지 않았을까.... 과대망상이라면 할 수 없구요.

+르 귄이 추천하는 강추 도서! 눈 먼 자들의 도시, 닥터 지바고, 노변의 피크닉, 타임머신, 완전판 우주만화, 타인들 속에서, 뿔속의 꿀, 점프오브 크리크. 이중 지금 제일 읽고 싶은 책은 타임머신이에요. 그 밖의 서문, 서평들을 차지하는 책은 듣도 보도 못한 장르 작가들과 작품들이라 르 귄의 말처럼 읽다 보면 "어안이 벙벙해"(p493) 질 지경입니다. 우리가 과연, 공통의 문학 문화를 가진 것이 맞나요? 아니면 제가 장르 문학을 아직 영 모르는 걸까요? 낯선 작품들의 서평을 쭈욱 읽다 보니 고전이 등장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허클베리 핀이나 멋진 신세계,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요. 르 귄은 제인 오스틴도 사랑해요. 저도 그렇습니다~ (〃>目<)

+ 안읽는 것만 걱정하던 어른들이 이상한 걸 읽는다는 걱정을 추가했던 때가 한번 있기는 있었네요.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드래곤라자, 묵향, 비뢰도 같은 책들이 인기를 구가하며 학생들이 책방을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하던 때였는데 그땐 되려 책을 읽지 말라고 했었다니까요. 선도부가 학생지도 한다고 소지품 검사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늑대의 유혹이 19금 만화책이랑 같이 압류 당했었어요. 아, 물론 제 얘기는 아닙니다 ( ˘︹˘ ) 맨발의 그녀석,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석이 왜 맨발이냐고 물었던 선생님, 안녕하신가요? 모쪼록 건강하십시오~ 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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