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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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책들 지원 도서입니다.


기사 돈키호테의 본명은 키하다 또는 케사다인데요. 라만차 지역 어느 이름 모를 마을의 이달고였답니다. 이달고는 하급 귀족 비스무리한 신분을 이르는 말인데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그를 키하나 님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키하나 님이 언제부터 기사 소설에 빠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홀몸으로 조카를 키우며 사냥도 꽤 좋아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책에만 갇혀 다른 아무 일에도 관심이 없어요. 기사들의 활극을 보느라 밤을 지새우기 일쑤구요. 허름한 살림에 많지도 않은 밭까지 팔아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죠. 조카와 가정부는 저놈의 책들 불싸질러버려야 한다고 야단이지만 어디 말을 들어 먹어야 말이죠.

책만 읽는 바보, 에스파냐의 간서치는 나이 쉰에 편력 기사가 되겠다며 모두가 잠든 새벽녘 집을 나섭니다. 나이 쉰이면 그 시절엔 영감님 중의 영감님인데 젊은이마냥 열정에 휩싸여 눈에 뵈는 게 없어져 버린 거에요. 기사들의 끝없는 모험, 귀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 차곡차곡 모욕을 쳐부수며 쌓아가는 명예가 시골 영감님의 상상력을 부추기다 못해 만년서생의 팔에 활기찬 힘을 불어넣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힘세고 튼튼한 사나이라네~ 말도 안되는 착각에 빠진 키하나 님은 아버지도 아니고 할아버지도 아니고 자그마치 증조 할아버지의 곰팡이 핀 무구들을 손에 쥐고서 로시난테라 이름 붙인 삐쩍 마른 말에 올라 길을 떠나요.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이때랍니다. 귀족을 뜻하는 돈에 허벅지 근육에 대는 갑옷의 명칭을 합쳐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만들었는데 일설에는 풀이 죽지 않는 거시기라는 뜻도 있다고 해요.

돈키호테의 모험은 객줏집 주인으로부터 서품식을 받는 요상괴랄한 모양새로 시작을 합니다. 아무 죄없는 마부들을 두들겨 팰 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돈키호테는 이틀을 못가 집으로 실려오는데요. 둘도 없는 사랑 둘시네아 아씨의 미모를 인정하라며 길가는 상인들을 붙잡고 진상을 떨다 그 집 하인에게 몰매를 맞은거였어요. 거 영감님 좀 살살패지. 전생에 무슨 원한을 졌는지 젊은놈이 끼하나 님 옆구리를 냅다 둘러차고 창으로 구석구석 때려서 맷돌에 갈린 밀처럼 갈아버렸지 뭔가요. 지나가던 농부가 키하나 님인 줄을 알아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길바닥에서 객사할 뻔 했다니까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신부님과 이발사, 조카와 가정부까지 합세해 기사소설을 화형시켜 버리는 등 대책을 강구하지만 이번에는 순진한 이웃 산초 판사까지 꼬셔서 가출을 단행합니다. 섬도 줄게, 백작 위도 줄게, 내 종자가 되어다오! 정신 나간 영감님의 프로포즈에 홀딱 넘어간 산초 판사는 집안의 가장 큰 재산인 당나귀에 먹을 거리를 잔뜩 싣고서 희희낙락 밤의 문을 열어요.

옛기사들의 잊혀진 모험에 도전하는 편력 기사 돈키호테와 그의 종자 산초 판사! 이들과 함께 하는 모험과 도전의 세계가 까무라치게 웃겨요. 풍차사건만 알면 돈키호테 다 아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요. 마법약물을 만들어 산초를 음독 살해 할 뻔 한다거나 빨래 방망이를 돌리는 물레방앗간 소리를 위험한 모험으로 착각해 유언을 남긴다거나 죄인들을 풀어줬다가 그 죄인들에게 폭행강도를 당한다거나 양떼에게 달려들었다가 양치기들에게 맞아 건치 세 개를 제외하고 우수수 이가 빠지는 걸 보면 풍차로 돌진하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싶어집니다. 사랑에 빠진 미치광이가 되겠다며 알몸으로 산속에서 물구나무를 설 때에는 앜 내 눈!!! ◑﹏◐ 엉망진창, 귀엽고 짠하고 아찔하고 엉뚱한 돈키호테를 보고 있노라면 400년이라는 머나먼 시간과 에스페냐와 한국이라는 이국의 거리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에요.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한순간 책 속에 갇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소설! 벽돌이라는 두려움은 탈탈 털어버리고 얼른 시작해 보세요. 돈키호테와 산초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여러분의 용기를 북돋워 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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