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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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지원 도서입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

그리하여 오늘도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린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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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다리가 없었다면 못보고 몰라서 스쳐지나갔을 아픔들, 작가님의 독자여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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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철의 집으로 이사온 원이. 일곱 살 동갑내기 두 아이는 곧잘 마음이 맞아 단짝이 되어 어울립니다. 도원결의까지는 아니어도 처녀들이 빠져 죽었다는 우물가에서 스파이를 작정하는 아이들이 어찌나 진지하던지 살풋 웃음이 났어요. 여섯 살 많은 금철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다 구박이나 받던 은철에게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원이와 어울리는 일이 신세계만 같습니다. 비밀을 알아내는 좋은 간첩이 되기 위해 아이들은 집집마다 쏘다니며 그 집 식구들의 이름을 묻고요. 무슨 일을 하고 누구와 친하고 혹 숨은 사연은 없는지 매의 눈으로 살펴요. 그러나 일곱 살이니까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사정은 영 엉뚱하게만 해석 되거든요. 어른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며 오해를 안고 킥킥 대거나 겁먹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귀엽고도 안타까워서 애가 탔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도무지 따라주지 않는 환경들 때문에 화도 났구요. 삼악산 그늘 밑의 대한민국은 왜 그리 슬픈 모습이어야 했을까요?

산골짜기 아랫 자락으로 쭉쭉 이어지는 산복도로를 따라 들어선 집들 간의 빈부격차를 아이들은 몰라요. 원의 어머니인 새댁네가 부동산 계약서에 멋들어지는 필체로 쓴 한자를 보고 복덕방 할아버지와 은철의 엄마 순분이 놀라 까무러치는 모습도 그저 남의 일만 같지요. 큰애가 열 네살이나 되는데도 원의 어머니가 새댁이라 불리는 이유를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집집마다 여편네 두들겨 패는 남편과 자식들 몽둥이 타작하는 어머니가 즐비한데 그중 눈에 띄게 조용하고 안온한 원의 셋방살이 풍경을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샘낸다는 사실을요. 원의 집에 모여 문을 닫아 걸고 꿍꿍 속내를 나누는 아버지 안덕규씨의 동지들이 아이들의 눈엔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둑만 같아요. 큰아버지 집에 찾아가 봉투 하나를 받아 오면서 비를 맞던 새댁네의 심경은 아랑곳없이 맛있는 국수, 예쁜 단추로 그날의 나들이는 행복했구요. 금철의 장난으로 무릎이 부서져버린 은철의 집에 더는 손님이 없는 이유도 헤아리기 힘들어요. 안덕규씨가 국정원에 끌려가고 원이네가 간첩으로 몰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깜깜한 현실을 일곱 살 어린 시선으로 해석하며 의아해하고 자책하다 울고 이별하는 원과 은철 때문에 마음이 먹먹했어요.

삼벌레고개의 허리쯤에 위치한 우물가의 집. 상상조차 못했던 각종의 사건들로 해체되어 어둡게 굴러떨어지는 영과 은철의 가족사를 통해 그 시절 대한민국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엿봅니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대조되는 어른들의 삭막한 세계 따위 접고 또 접어 내다버리고만 싶은데 틀림없이 그 시절의 누군가는 이런 일을 겪었겠지, 여전한 아픔으로 회상하고 있겠지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어요. 미안해서요. 접힌 곳을 펼치고 구겨진 자리 잘 보이지 않는 글자들도 세세히 헤아려 꾸깃꾸깃한 옛날의 일들 어느 하나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습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알아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구요. 제18회 동리문학상 수상작품으로 14년도에 출간됐던 책인데 유일 단점이던 표지를 벗고 양장판 새표지로 갈아입어 이제는 무흠결의 완전한 책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대출이든 구매든 꼭 만나봐야겠지요? 고통을 다독이며 보듬고 기록하는 권여선 작가의 온기를 올 겨울 따뜻하게 품어가시길. 삼벌레고개를 떠난 은철과 원, 서평에서 다 쓰지 못한 금철과 영, 여러 많은 사람들이 부디 잘 살고 있기를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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