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미우라 시온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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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제목을 보고 궁금해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요? 그 집에 사는 네 여자는 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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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독립,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에 대한 희생으로 모두가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한다."(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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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외곽에 위치한 백오십 평 대지 위의 2층 양옥집. 동네 아이들이 귀신의 집이라 부르는 마키다가(家) 낡은 대저택에서 소설은 문을 엽니다. 대를 이어 집을 물려받은 쓰루요씨는 일흔 평생 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유한마담입니다. 조부의 유산인 부동산과 거품경제 때 손에 쥔 목돈으로 남은 평생 무위도식할 팔자라니 속물인 저는 쓰루요씨의 사정을 알자마자 부러워서 배를 잡고 뜅굴뜅굴 굴렀습니다. 잊을만 하면 로또를 사는데 꼭 당첨이 되서 저도 쓰루요씨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노동하지 않는 삶, 동경합니다. 태평한 성격에 소녀 같은 면모를 지닌 쓰루요씨는 백화점 가는 날이면 엔돌핀이 뿜뿜 솟구치나봐요. 백화점 개장이 10시 30분인데 9시도 전에 집을 나서는 귀염둥이라니. 역시 부럽잖아요.

서른 일곱살 자수작가 사치는 쓰루요씨의 무남독녀 외동딸인데요. 아버지 얼굴도 못보고 자랐다기에 유복자인가 했더니 알고 보니 아주 엄청난 아버지를 둔 아가씨더라구요. 아버지의 미스테리를 딸인 사치는 모른다는 게 함정이지만 독자는 모조리 파헤칠 수 있는 함정이라는 게 무척 재미납니다. 연애와는 영 인연이 없는 줄만 알았더니 누수로 엉망이 된 방에 벽지를 바르러 온 인테리어 사장님 가지씨에게 한눈에 반한 상태입니다. 두근두근, 조마조마, 설렘 폭발, 이런 긴장감이 얼마만인지 사치는 무릎이 다 후들거릴 정도인데 가지씨의 조카가 숙모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은 반나절만에 푸쉬쉬 김새 버려요. 물론 그 "숙모"라는 존재에도 비밀이 있다는 건 안비밀. 사치의 연애 행방에 제가 다 조마조마 했어요. 연애 소설이 아닌데 왜 연애 소설 보다 더 떨리는거뉘?

마치다가에는 쓰루요씨와 사치 외에도 두 명의 하숙생이 더 기거 중인데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치와 통성명을 넘어 동거까지 하게 된 유키노는 남자에게는 영 무관심한 모양이에요. 연애세포가 완전소멸 상태랄까요? 사치와 같은 서른 일곱살이지만 딱히 솔로탈출을 꿈꾸지는 않고요. 열심히 요가하고 직장생활 하면서 일상을 잘 꾸리는 게 목표인 것 같습니다. 개성없는 외모와 겉보기엔 조용해 보이는 성격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마치다가의 나날들을 읽다 보면 결코 무존재감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요. 40년 가까이 잠겨 있던 방의 봉인(?)을 풀어 갓파 미라를 발견한 사람도 유키다구요. 사치 대신 사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욕망하며 파헤치는 계기를 만든 이도 유키다에요. 사치와 가지씨가 만난 것도 크게 보면 다 유키다 때문이라며 저는 유키다 영물론을 펼쳐봅니다. 본인은 가는 곳마다 물재난을 만나 고난이라지만 유키다의 물재난 후에는 꼭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소개할 친구는 다에미! 전남친의 스토킹에 시달리다 마치다가에 들어오게 된 유키노의 직장 후배입니다. 직장 생활을 좋아하는 능력녀에 현실적인 성격이다보니 자신과 반대되는 꿈이 크고 원대한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해요. 그러다 보니 어째 꼬이는 놈이 죄 백수건달과? 기둥서방류? 일할 생각 없이 여자 등쳐먹으면서 말만 번지르르한 남자더라구요. 먼데 사는 언니지만 좀 걱정이 됐습니다. 다에미, 남자 보는 눈 좀 바꾸자. 너 그러다 평생 등골 뽑혀! 정신 차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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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남자나 가족 제도 따위가 아니라,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느슨한 연대, 왜 같이 사는지조차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금 우리 같은 생활 내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수 실보다 가늘고 미덥지 못한 연결 안에 말이다. 외로움이라는 지옥, 그런데 이때까지 인간이 천국에서 살던 시대가 있긴 했던가?"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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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인 쓰루요와 사치는 그렇다 치지만 유키노에 이은 다에미와의 인연은 정말이지 엉뚱해서요. 네 여자의 동거라니 이거 과연 괜찮을까 싶었는데 벌써 일 년도 넘게 활기차게 살아가는 네 사람의 엉뚱발랄 + 코믹해피 + 판타지한 힐링 이야기를 아주 행복한 기분으로 감상했습니다. 언젠가는 끝날 인연이라는 걸 친구들 모두가 알고 있어요. 결혼을 할 수도 있구요. 직장인인만큼 이직을 해서 마키다가와의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죠. 연애로 인한 번잡함 등으로 독립에 대한 열망이 생길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친구들끼리 다퉈 관계의 끝을 보게 될지도 몰라요. 네 사람이 뭉쳐 사는 지금이 정말 좋아서 사치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싶다가도 덜컥덜컥 겁이 나는 거에요. 하지만 사치는 겁쟁이가 아니니까요. 얼른 마음을 추스립니다. "언젠가라는 미래를 두려워해 꿈꾸는 것을 그만둔다면 동화가 현실이 되는 길은 막히고 만다."(p279) 꿈꾸는 바보가 되어 북적북적한 여자들끼리의 우정을 즐기는 사치와 친구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이야기가 영 엉뚱한 길로 빠질 때면 장르가 판타지라는 걸 떠올려 주세요. 혼자 헤쳐가는 인생에 부쩍 외로운 날 <그 집에 사는 네 여자>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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