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서점에서 레누와 니노가 재회한다. "릴라는 문제가 있어. 성관계도 그랬어."(p40) 임신한 릴라를 두고 뻔뻔하게 도망쳤던 니노는 몇 년만에 재회한 레누에게 릴라와의 관계를 변명한다. 레누는 당혹스럽다. 그의 표현이 주는 불쾌감은 말할 것도 없고 니노가 말하는 잘못된 성관계로 인해 태어난 생명, 어린 젠나로를 생각하면 니노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릴라는 너 때문에 신세를 망쳤어!" 꼭 이 말을 해줘야겠다고 다짐하는 레누. 허나 니노의 얼굴을 보기만해도 설렘으로 벅차 릴라에 대해서도 젠나로에 대해서도 하다못해 약혼자인 피에트로에 관해서도 잊어 버리고 만다. 첫사랑의 위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걸까. 작가로서의 성공도 피에트로의 정중한 청혼도 니노와의 재회 앞에서는 빛이 바래는 것만 같다.
반면 릴라는 더이상 니노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사랑에 눈 멀어 있기엔 어머니라는 위치가 가진 책임감이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젠나로를 출산하며 스테파노와 재결합한 릴라는 아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가정에 충실하려 애쓴다. 스테파노의 변심과 불륜마저 무시한다. 허나 스테파노의 애인인 아다는 릴라의 존재를 참을 생각이 없다. 스테파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릴라의 신혼집으로 쳐들어 온 아다는 도나토 사라토레 때문에 미쳐버린 그녀 어머니 멜리나처럼 정신적 불안 증세를 보인다. 아다의 임신 사실까지 알게 된 릴라는 자신을 사랑하는 또다른 남자 엔초와 함께 고향을 떠나 동거를 시작한다. 육체적 관계 없이 존중과 신뢰, 호감이라는 정신적인 교류로 유지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혹 연인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내일이라도 헤어짐을 요구하지는 않을까? 릴라는 엔초의 늦은 귀가 때마다 두려워 하지만 쉽사리 그의 방문을 열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 레누.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우리는 모두 동파된 수도관 같아.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머리를 가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야."(p493) 스테파노의 아내로 부유한 삶을 살았던 릴라는 이제 햄공장의 노동자로 새벽 다섯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노동에 시달린다. 사장 브루노의 농간에 분노하면서도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 몸을 사리기도 한다. 이웃 여자에게 맡긴 젠나로는 더는 어렸을 적의 똑똑한 아이가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 시달린 탓일까. 릴라는 점점 타협을 배워간다. 한때 원수처럼 여기며 저주했던 미켈레와도 사업적으로 손을 잡는다. 릴라가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때 일견 평온해 보였던 레누의 삶에도 변화가 온다. 두 딸의 출산과 양육이 주는 부담감, 작가로서의 자신감 상실, 가부장적인 피에트로와의 갈등과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 속으로 성큼 니노가 걸어 들어온 것이다. 수면제를 먹고 잠든 남편을 두고 손님방으로 니노를 찾아간 레누는 이후 그를 향한 모든 욕망을 폭발시킨다. 두 딸도 남편도 안중에 없이 이혼을 감행한다.
떠나간 자 레누와 머무른 자 릴라. 등지고 걸어가는 두 여성의 삶의 이정이 표지 이상으로 멀게 느껴졌던 3권이다. 1, 2권에서도 존재감이 옅지 않았던 니노였지만 3권에 이르러 레누의 삶까지 어지럽히는 모습에 화가 났다. 피에트로와 레누의 둘도 없는 친구인냥 행세하던 니노가 피에트로의 존재감을 지우고 소외시키며 뻐꾸기처럼 둥지를 가로채는 모습에는 소름이 덜덜. 도나토 사라토레와는 또다른 종류의 여성 편집증, 정신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된다. 도대체 니노의 뭘 믿고 사랑을 맹세하는지. 도대체 어쩌자고 니노를 쫓아 집을 나갈 수 있는지. 어떻게 두 딸마저 내버려 둔 채로 니노의 출장길에 동반하는지 리뷰를 쓰면서도 정말이지 레누가 이해가 안된다. 눈이 멀었다고 밖엔 볼 수가 없다. 레누는 이혼을 작정했지만 니노도 과연 부자에 권력이 넘치는 젊은 아내 대신 레누를 선택할까? 릴라 또한 걱정되기는 매한가지다. 엔초와 미켈레에게 지성과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 하지만 릴라는 고향도 가족과의 인연도 끊지 못한다. 가장 노릇을 다시금 시작해 주머니를 연다. 문제의 근원과 떨어질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이다. 불안하기만 한 3권의 끝, 도대체 어디쯤에 이르러야 두 주인공을 안심하고 지켜볼 수 있을까? 4권의 제목이 하필이면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라서 더욱 초조하다. 누구의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것인지. 릴라, 레누, 이제 좀 편해지면 안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