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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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잘한다, 모! 지금의 삶을 즐기고, 사랑해. 잘해 봐. 제대로!"

_한순간에 p376


눈발이 휘날리는 그런 밤엔 외출을 하면 안됐어요. 텅빈 도로, 폭포처럼 떨어져내리는 눈이 도로를 담요처럼 덮었는걸요. 몸서리쳐지는 추위, 엄마는 집에서 저녁을 해결하자고 했지만 아빠의 팬케이크와 줄줄이 소시지에 대한 열정을 엄마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핀 가족의 전통인걸요. 눈발을 해치며 조심조심 나아가던 캠핑카의 앞으로 웬 사슴 한 마리가 뛰어듭니다. 놀란 아빠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자동차는 뱅글뱅글 회전했지만 다행히 가드레일을 받고 멈춰서요. 조수석에 앉아있던 핀은 가드레일을 설치한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만 가드레일을 잡고 있던 막대들이 뽑혀나가며 차는 속절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집니다. 핀은 이제 추위를 느끼지 않습니다. 눈의 축축함, 중력, 공기도 핀을 빗겨가요. 핀은 생각합니다. "나는 죽었다."(p65)

이 책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열여섯살 소녀 핀의 목격기입니다. 엑셀이 아닌 브레이크를 밝아버린 아빠의 피치 못한 선택이 가져온 의도치 못한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에요. 캠핑카에는 총 열한 명의 인원이 있었습니다. 핀과 아빠, 엄마와 이십년 우정을 쌓아오고 있는 캐런 이모, 이모의 남편이며 엄마에게 미묘한 애정을 드러내는 밥 삼촌, 두 사람의 딸 내털리, 엄마와 원수처럼 지내는 둘째 언니 클로이와 클로이의 남자친구 밴스, 핀의 베프 모, 핀 가족의 막내이자 부부 갈등의 원인인 지체장애아 오즈, 길에서 자동차가 퍼지는 바람에 우연히 합승하게 된 카일까지. 한밤중 산중에서의 조난은 시시각각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어요. 밴스가 제일 먼저 손을 듭니다. "길을 찾아 구조를 요청하겠어요. 위로만 올라가면 되잖아요!" 아빠와 엄마가 이를 말리지만 반항심 깃든 소년은 어른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클로이까지 데리고 길을 떠나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에서 위로만 올라가면 된다는 벤스의 생각은 과연 옳았을까요?

차에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미묘하게 편이 갈립니다. 엄마가 핀의 옷과 부츠를 벗겨 보호자 없이 여행에 동참한 모에게 입힌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캐런 이모는 핀의 부츠를 내털리에게 주길 바랐지만 엄마가 모를 선택한거죠. 그 순간 우정은 사라지고 캐런 이모의 마음엔 친구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다음 날 구조요청을 위해 다친 남편과 자식을 두고 길을 떠나는 엄마에게 모가 부츠를 도로 내어준 것도 안중에 없었죠. 밥 삼촌은 오즈의 장갑을 뺏으려다 실패하기도 합니다. 오즈는 13살 밖에 안된 어린아이지만 키가 크고 기운이 장사거든요. 현명한 모가 오만과 편견으로 불을 피워 물을 만들어냈을 때 이들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는데 오즈가 강아지 빙고에게 물을 먹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쟤 때문에 우리가 죽겠어."(p112) 어떻게든 오즈의 장갑을 빼앗고 싶었던 밥 삼촌에게 아내의 말은 기폭제가 됩니다. 오즈의 시선을 돌린다는 핑계로 차 밖으로 데리고 나간 그는 크래커 두 봉지와 오즈의 장갑을 교환한 후 엄마를 찾아오라며 오즈를 눈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 모든 일을 목격하며 핀은 절망에 휩싸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한순간에>를 읽는 내내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많은 선택의 순간을 목격하는데 그 모든 선택에 걸린 것이 나의 생존 혹은 내 가족의 생존이라면 현명하게, 신중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못할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조금의 손해에도 눈을 희게 뜨는 평소 제 성격상 그들 부끄러운 선택과 결과가 모두 제 몫으로 돌아왔을 거에요.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여겨지지 않는 때가 오더라도 당장은 죽음이 너무너무 무서웠을테니까요. 사는 내내 절대 이런 순간에 처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작가는 어릴 때 당한 조난의 경험으로 이 책을 썼는데요. 아빠의 절친이었던 삼촌은 아빠가 구조를 요청하러 간 사이 오로지 삼촌네 아이들만 보호하며 체온을 유지시키고 작가와 작가의 오빠를 방치합니다. 냉담하고 무정했던 그에 대한 기억이 밥 삼촌과 캐런 이모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킨 거더라구요. 이후에도 삼촌이 아버지의 절친으로 남았다는 사실에 찐소름, 덜덜덜 떨었습니다. 아참, 핀을 제외한 남은 열 명의 생존 유무를 안알려드렸네요. 읍읍... 읍읍읍....미리니름이 될까봐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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