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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평점 :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우리 가족 말이에요.
남의 눈에는 가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싸구려 패키지 같은 그런 가족이었다고요."(p304)
계승 여행사 신입 손승욱은 8만원짜리 싸구려 패키지 상품의 담당 가이드가 됩니다. 여자친구인 미나는 그딴 여행을 누가 가냐고 비하하지만 정원 스무명을 모두 채운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중인걸요. 싸구려 패키지여행에도 나름의 행복이 있는 법이니까요. 청량리역을 출발해 휴게소마다 갖춰 놓은 특산물 시장을 돌고 돌아 대마도로 가는 배를 탈 지루한 일정을 되새김질 하던 그는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버스 시간을 지연시키며 뒤늦게 탑승했던 무뚝뚝한 얼굴의 김석일과 그의 아들 김도현이 한 명은 도망자로 버스에서 사라지고 한 명은 시체가 되어 버스 짐칸에 실려있을 줄을 말이죠. 싸구려 패키지 여행은 첫번째 방문지였던 건어물 시장에서 김도현의 사체가 실린 가방이 발견되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맙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와 <지금 죽으러 갑니다>를 쓴 정해연 작가의 신작 스릴러 소설입니다. 관광버스 짐칸에서 발견된 토막난 아이의 시체. 살인범은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탔던 아이의 친부 김석일입니다. 도대체 아이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컸던 걸까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뭉개놓고 절단한 살인의 수법도 놀랍지만 몸 곳곳에 남아있는 학대의 여러 흔적들이 강력계 형사 박상하를 괴롭게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아서, 기타 등등 아내의 정신병을 외면했던 그는 사흘의 잠복수사 후 들어간 집에서 아내에게 폭행 당한 아들을 보게 되거든요. 당시의 폭행으로 정신적 장애를 앓게 된 아들과 사망자 김도현이 자꾸만 겹쳐보여 죄책감과 울분이 그의 가슴을 채웁니다. 도피 중 어떤 남자를 이십차례 넘게 찔러 사망 직전에 이르게 만든 김석일이 체포되고 그의 전처가 일본에서 돌아와 아들의 시체를 확인합니다. 아들 앞에서 오열하는 정지원의 모습과 모정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던 아내를 비교하며 정지원에 대한 박상하의 동정심이 커져가는 가운데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친아들 김도현을 지속적으로 학대하다 끝내 살인까지 저지른 부친 김석일, 김도현이 학대받는 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한 채 아들과 손주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던 김석일의 모친, 폭행에 무감한 도현의 행동을 학대에 의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한 차례 부모 상담 외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은 담임 선생, 남편의 폭력을 피해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친모 정지원, 도현과 관계된 어른들을 한 명 한 명 조사하면서 박상하는 생각하게 됩니다. 도현을 죽인 가해자는 정말로 김석일 한 명 뿐인가. 한 편의 가족 비극으로 반전을 모색하며 흥미진진함을 더하면서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의 책임을 사회와 국가 무엇보다 우리 어른들에게 묻게 하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