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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 2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송이 옮김 / 현암사 / 2020년 8월
평점 :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한 젊은이가 참지 못하고 밤새도록 그의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
단지 이 사실만으로도, 특히 이것을 위해, 글쓰기는 가치있는 것이 아닌가."(1권 p205)
"정말 좋은 게 뭔지 아시잖아요. 바로 선생님 책입니다. 전 녹초가 됐어요. 읽기 시작하니까 하루 밤낮을 눈도 감지 못하겠더라구요. 단숨에 읽었다니까요. 책을 끝내기 전까지 잘 수가 없었어요."(1권 p205) 레스푸아의 젊은 기자 랑베르의 칭찬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작가 앙리의 모습을 보니 저도 같이 외치고 싶더라구요. '정말 좋은 게 뭐냐구요? 그건 시몬 드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입니다!' 하고요. 프랑스 책은 어렵고 난해하고 이해 불가능한 사유를 담고 있어 제 취향일 수가 없다고 믿어 왔는데 두 번째로 그런 편견이 깨졌어요. 첫 번째는 자기 앞의 생. 그러고 보니 두 권 다 공쿠르 상 수상작이라는 공통점이 있군요? ㅎㅎ
레 망다랭이라는 책을 처음 봤을 땐 제목의 뜻조차 몰라서 검색부터 해야 했습니다. 지식인, 인텔리라는 해석이 보이더라구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작품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고,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지식인들의 혼란을 그리고 있다하니 평소 같았으면 절대 펼치지 않았을 책이에요. 페미니즘 작가에 무관심하기도 하고 제가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결심한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책을 검색하다 눈에 띈 기사에서 세계문학전집에 꼭 들어가야 할 책 중의 하나가 "레 망다랭"이며 그 이유가 "재미있어서"라는 누군가의 답변을 봤거든요. 카뮈와 사르트르의 결별을 각색해 소설화 한 거라는 이야기도 있구요. 두 사람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실존했던 작가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더라구요. 물론 보부아르는 이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지만요. 당시의 많은 독자들이 레 망다랭을 읽고 자연스레 카뮈와 사르트르를 떠올렸다고 하니 전 왠지 독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어요. 다만 저는 책을 읽는 내내 카뮈도 사르트르도 떠올리지 못했다는 거;; 카뮈는 이방인 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고 사르트르는...... 아직은 근처로도 못가겠어요.
종전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의 밤. 독일군을 향한 일천대 비행기의 폭격 소식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희망과 기대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좌파 신문 레스푸아의 사주이자 편집자인 앙리를 위시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앞날이 수정 같이 맑기만 할 것 같았는데 곧 먹구름이 끼고 부슬부슬 배신과 음모, 증오와 복수, 잇다른 좌절과 실패, 무기력이 쏟아지며 그들을 뼛속까지 얼려요. 레지스탕스 운동을 주도하며 좌파 세력을 이끌었던 뒤브레유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설마 종전이 자신들의 마지막 승리가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거에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믿어왔던 이들이 현실에서 글의 무용함을 느끼고 펜을 놓고 시간이 지나 다시 펜을 들고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긴 여정이 자그마치 1권 634 페이지, 2권 593 페이지에 달해서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조차 제게는 어려웠습니다. 앙리, 뒤브뢰유와 같은 남성들은 정치와 이념, 문학에 대해 전투적으로 고민하며 정신없이 달려 나아가고 후퇴하기를 반복합니다. 그 와중에 여러 여성들에게 호감, 욕망 또는 사랑을 느끼지만 어떤 여성도 그들 인생의 주체로 떠오르는 일은 없으며 그저 사소한 고민거리로 치부될 뿐이에요.
반면 안과 폴, 나딘과 같은 여성 주인공들의 고뇌와 삶은 굉장히 남성 종속적이라 당시에도 말이 좀 있었던가 봐요. 작가인 남편과 작가인 미국인 소설가와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나이듦"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좌절하는 안, 앙리에 집착하다 끝내 미쳐버리는 폴, 이 남자 저 남자를 육체적으로 헤매는 것으로 자유를 표출하고 생을 주장하는 나딘의 이미지가 페미니스트였던 작가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인 건 사실이거든요. 역자 후기를 보니 이런 불만들에 대해서 보부아르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여성들을 그대로 묘사한 것"(p597)이라고 답변하구요. 역자는 "프랑스의 가부장적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들을 소설에서 제시함으로써 1944년에야 처음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을 폭로"(p597) 한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작가님의 목격담이든 역자님의 해석대로이든 씁쓸한 건 매한가지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용한 정치 다툼과 전쟁으로 인류를 피흘리게 하느니 사랑에 몫매다 홀로 죽든 살든 하겠다는 쪽이 더 낫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평 쓰는 재주가 부족해 다른 독자를 유혹하지 못할까봐 걱정됩니다. 정말 무조건, 무조오오오건 읽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책이거든요. 왜? 재밌으니까요!! 이 책을 세계문학전집에 올려야 한다고 강추했던 그 이유에 대해 저는 백프로 공감합니다. 죽음이 누구의 소유인지, 좌절한 인간이 다시금 행복해질 수 있는지, 행복해진다면 어떻게 행복을 되찾는건지, 우리는 어째서 소설을 읽으며 또 누군가는 어째서 글을 쓰는지,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살아가며, 산다는 게 무얼 증명하는지, 내가 나이기가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무수한 질문을 책과 함께 주고 받다 보면 1,233 페이지가 가뿐하다 못해 아쉽고 짧아 속상하리라 장담합니다. 1940년대의 이념 갈등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어디나 비슷했던건지 프랑스가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같이 읽힌다는 점도 뜻밖의 묘미로 다가올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