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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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장르에 취약한 제가 유일하게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분야가 독서 에세이입니다. 유명 작가와 편집인, 영화감독, 교수, 여행가 등이 종종 도전하는 이 분야의 책은 기회가 닿으면 가급적 만나려고 해요. 성격의 편협함을 드러내듯 독서 취향마저 간장 종지만하다보니 매번 비슷한 장르의 책만 읽는대요. 독서 에세이를 보면 기분 전환도 되고 자극도 받고 몰랐던 책을 알게 된다는 기쁨과 더불어 여러 책을 읽은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서 뿌듯해져요. 아는 책이 나오면 성공한(?) 독자가 된 기분으로 으쓱하구요. 읽은 책이 분명한데 영 이야기가 엉뚱하다 싶으면 영문을 몰라 문제의 책을 꺼내서 뜻밖의 독서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이번엔 설국이 그랬어요. 아예 모르는 책은 세상에 이런 책도 있구나 놀라고, 알지만 안 읽은 책은 언젠가는 읽어야지 기약없는 결심도 해요. 군것질이나 디저트 같은 느낌으로 가볍고 군침이 도는 장르에요.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는 번역가이자 출판사 편집자인 이수은 작가님의 두 번째 독서 에세이래요. 표지가 장난 아니죠? 베스트셀러 책들을 쭈욱 훑다가 언제 이렇게 예쁜 책이 출간됐냐며 놀라서 들여다 봤어요. 표지가 다하는 책이면 어쩌냐는 걱정과 이 정도 표지면 표지로 다해도 되겠다는 위안으로 책을 선택했는데 어이쿠, 이 책 왜 이리 웃기고 재미있고 신통방통 하지요? "억눌렸던 화가 점층법으로 폭발해 내면의 야수가 풀려나려는 그런 때"(p14), "나를 함부로 후려치는 누군가에게 방긋 웃으며 '무지개 반사!를 외칠 수 있는 순발력"(p66)을 기르고 싶을 때, "꼭 해야 하는 어떤 일이 있는데, 딱 그게 하기가 싫어서 슬금슬금 미루다 포기할까 할 때"(p91) 등 현실이 귀찮고 번거롭고 짜증나고 열받고 벅차고 울적하고 외롭고 슬플 때 책으로부터 힘을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맞침맞춤한 책들을 골라줘요. 거의 북 내비게이션급! 저는 언제 이렇게 추천책들을 팍팍 날릴 수 있는 경지에 오를까요??

이 책을 읽고 내년 봄이 되기 전에, 정확히는 사표 쓰고 싶은 성수기 전에, 월급 따박따박 들어올 때 책 한 질 꼬옥 들여놓으리라 작정도 했습니다. 책 좀 읽는다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사표 써서 사무실 책상 서랍에 넣어둘 것이 아니라 저도 레미제라블을 읽어야겠더라구요. "워낙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고 있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하고, 포인트는 이거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면 결심해 보자. 나는 <레미제라블>을 다 읽은 다음 날 사표를 낸다. 이 책을 못 끝내면 퇴사도 없다! 퇴사를 하려면 이 정도 기개는 가져야..."(p30) "얼어붙은 심장을 깨부수는 대포와 같은 문장들"(p31)이 매해 느끼는 사직에의 욕구를 드높일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더 열심히 현실에 전념하게 할지 정말이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마지막 인사가 인상적이라 서평에도 고스란히 옮겨써봐요. "계속 읽다가 어디선가 또 마주칩시다!"(p259) 작가님의 전작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로 얼른 만나러 갈게요! (헐크, 내 띠지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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